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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를 타다

이상한 기분

by 까멜리아 Sep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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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난 병원이다. 신호등 앞에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뒤에서 ''하고 부딪혔다. 마치 내 뒤통수를 과격한 것처럼. 지난날 차 사고 났던 것들이 쓰나미처럼 몰려든 것 같은 현상은 무엇일까? 혹시 내가 박았나 싶어 앞을 보았다. 차는 없없었고 저 멀리 신호등을 건너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안전하게 내 앞을 지나가며 힐끔힐끔 처다본다. 한참 멍하니 그렇게 앉아 있으니 사고낸 차주도 한참 후  내려와서 나를 확인했다.  웃옷을 걸치고 차에서 내렸는데 순간 어지럽고 구토가 나는 것을 꾸역꾸역 참고 차를 둘러 본 후 많이 부딪힌걸 확인 하고 다시 차로 가서  앉아버렸다.  진정한 후 다시 나왔는데 다리가 휘청거려 도로가로 가서 무조건 앉아있는데 어지럽고 구토가 나려했다. 차주가 "정말 미안하다 뭐든지 다 해드릴게요 ~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제가 정신이 없었습니다. 녹음하셔도 좋습니다"며 다급한 것 같아 '빨리 가보시라'고 해야 되는데 그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도 않고 멍하기만 했다. 어디에 전화해야 되지, 보험사? 신랑? 어떻게 해야 될지 판단이 써질 않았다.


차를 안전한 곳으로 빼 줘야 되는데 운전을 못 할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는데 잘 들리지도 않았다.

멍한 나에게 119 불러 드릴까요? 했다.

(내가 119 타고 갈 만큼 응급상태인가?)

좀 진정되겠지 싶었는데 계속 구토가 나려했다.

"아.. 저기..  119 좀 불러주세요"

잠시 후 119 도 왔고 부축받아 구급차에 누웠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였고 배드 채로 내려 드릴까요?묻길래  괜찮다고 했더니 휠체어를 가지고 오셔서 나를 부축해서 휠체어에 태웠다.  어지러웠다. 구토가 자꾸 나왔다. 그런 나를 보고는 검은 비닐봉지도 주셨다.  접수 후 에도 응급 환자들 때문에 오랫동안 기다렸다.  1시가 지났고 구조대원은 접수가 완료되니 인사를 하고 갔다. 한참 후에 병실로 갔다. 담당 의사는 한 분이다.  X-ray.CT 결과 뇌진탕도 아니고 금 간 곳도 없고 정상이다. 울렁거리니까 안정제 등 링거를 꼽아야 하는데 ㆍㆍㆍ

아! 간호사는 혈관을 한 번에 찾았다. 링거 정말 맞기 싫은데 - 간호사는 손등을 멍들게 했고 나는 수간호사를 찾았다. 간호사는 미안하다 사과를 한 후 수간호사를 데리고 왔고 팔에 링거를 꼽았다.  약이 들어가면 좀 아프고 속이 안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춥고 어지러운데 속까지 메슥거려 속이 뒤틀려 참다 참다 도저히 참지를 못하고 링거를 뽑아 달라고 했다.

약을 받아 병원을 나왔다.


전화를 몇 번이나 해도 신랑은 통화 중이다.

배가 너무 고파서 쓰러질 것 같았다. 아침도 점심도 안 먹고 그 시간까지 있었으니...

눈앞에 보이는 곳이 삼계탕 고디탕집이었다.

힘들게 문을 여는 순간 찬기운이 들고 텅 비어있어 "영업해요?"란 의심의 질문을 한 후 영업한다는 말에 텅 빈자리 한 곳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5분이 50분 같았다. 내 앞에 고디국이 도착했는데. 어, 색깔이 이게 뭐지? 아닐까 다를까 국물은 이상한 곰국 맛에 그렇게 좋아하는 고디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났다. 시계가 2시 25분이었으니 손님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맛은 내가 먹은 식당 중 최악이었다. 웬만하면 음식을 남기지 않는 내가 배가 고파서 두 그릇이나 먹을 수 있는 태세인데 아~배는 고픈데 허기를 면하고자 시래기만 몇 건져먹고 냄새나는 고디지만 몇 안 되는 고디를 보물 찾 듯 건져먹었다.  밥도 그의 못 먹고 그대로 나와 만원을 결재하였다.  예전 같으면 맛이 원래 곰국맛 나는지 고디는...물어보았을 테지만 워낙 연로하신 분이고 혼자서 운영하는 것 같아 도저히 입이 열리지도 않았고 말할 힘도 없다.


신랑이 태우러 왔고 한의원에 가서 물리치료 좀 받아보라고 해서  근처 한의원에 다. 한의사는 아주 젊었고 사고난 자동차를 보더니 "아이고 이정도면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여러가지 문진 증세를 이야기 하니 입원 하셔서 치료 받는 것도 좋을거라고? 입원도 되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하셨다. 이것 저것 상황을 보고 입원을 바로 했다.

물리치료, 뜸, 추나도 받았다. 월. 화요일 수업이 잡혀 일요일 퇴원 하려고 했지만 이런 몸으로 퇴원하면 수업도 제대로 못 할 것 같고 더군다나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교수님께 사고 소식을 전하고 강사 대체를 해 주셨는데 어렵게 일정을 맞추었기 때문에 화요일 대체 강사가 없어 다른 방법으로 입원확인서를 결국 떼드리고 나만 수업날짜를 바꿀지 어떻게 할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사고 당시를 떠 올려본다.


우회전을 하는데 저 건너편에서 사람이 걸어오고 있고 난 정지했고. "꽝"


<눈물이 났고 무섭고 두렵고 떨려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

차량을 끌고 가야 해서 부를 사람 없나고 해서 신랑한테 전화를 걸어주었다.

119 구조대원이 신랑과 통화 후 신랑이 근처라면서 오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난 위급환자가 아니라는 생각에ㆍㆍㆍ

구조대원은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환자분 안정이 최우선입니다.  교통사고 나서 많이 놀랐을 텐데 긴장푸시고 편안하게 누워계시면 조금 좋아지실 겁니다." 아~~ 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따듯한지!

7년 전

아버지도 119 응급차를 타셨다.  췌장암 수술 후 연세에 비해 회복이 빨랐다. 퇴원 후 검사를 하다가 대장 쪽에도 암세포가 전이되었다고 해서 몇 달 되지 않아 또 수술을 셨다.  82세 나이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데도 잘 견뎌주셨다.  무릎연골이 다 닳아 삐걱삐걱 소리 나도 무서워서 수술도 못 하셨는데.. 아버지는 이제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  계속 누워 만 계셨고 죽도 겨우 드셨다 그러던 어느 주말, 식구들 모두 모여 잘 놀다가 집으로 갔다.  그날 주무시다가 갑자기 숨을 헐떡헐 떡 거리시면서 식음을 전폐하셔서  한겨울 내복바람으로 119에 올랐다.  가족 중 아무도 타지 않고 혼자서...  (그날 친정에서 잤더라면...)


얼마나 추우셨을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또 얼마나 무서웠을까? 의식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고 없고 응급차 안의 온도는 분명 달랐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시는 구조대원이 안에서 지켜주고 계셨다는 생각에 걱정이 들었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응급차에 가족 중 아무도 없었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후 응급차가 지나갈 때마다 저 차에는 또 누가 타고 있을까?  아버지처럼 위독하신 분이 타고 계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응급차만 보이면 홀로 계셨던  7년 전  그날이 생각나서 혼자 눈물을 흘렸다.


119 응급차를 타본  경험도 없었고 응급차 안에는 무서울 것이란 막연하 생각 때문이었다.


의식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119 응급차에 실려서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했다.   친정에서 병원까지는 새벽이라 차가 안 막혀도 최소 15분이다.  15분까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했단다.  응급차에서 내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버지의 옷은 너덜너덜 다 찢겨있었고 가슴은 온통 멍덜었고 뇌사 상태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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