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노년을 바라보다, 내 시간을 마주하다.
병원 복도를 걸으며,
나는 나무가 아닌 사람에게서 계절을 보았다.
접수창구는 분주하다.
“번호표부터 뽑으세요.”
“이거 이렇게 뽑으면 되니껴?”
“네.”
순서가 뒤로 밀릴까 마음은 바쁘지만, 무엇 하나 쉽지 않은 듯 어르신들의 표정은 조금 서툴다.
진료실 앞. 처음 마주한 사이임에도 누가 더 불편해 보이는지 살피며 더 가까운 자리를 서로 양보한다.
“오랜만이시더~”
“잘 지냈니껴~”
“여, 앉으소.”
복도에는 요양보호사가 휠체어를 이끌고 두 분, 세 분 어르신들이 지나간다.
휠체어 위의 어르신들은 새하얀 짧은 머리를 하고 계셨다. 손목은 가늘고, 피부는 창백하다.
이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늘 자상하게 어르신들을 대하시고, 간호사 선생님 역시 바쁜 와중에도 다정하다.
진료실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간호사는 바삐 움직인다.
마음이 급한 어르신들은 그 간호사를 붙잡고 묻는다.
“아직 멀었니껴?”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니껴?”
그럴 때마다 간호사는 다정하게 말한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어르신들은 왜 그렇게 마음이 급하실까. 병원 진료를 빨리 보고 어디를 가시려는 걸까. 도시에서 사는 자식
들이 오늘 집에 오는 날이라서일까.
옹기종기 앉아 진료를 기다리며 옆 사람, 앞 사람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눈다. 건너 건너 아는 사이들인지도
모른다.
“거는 3년 누워 있다가 죽었니더.”
“이제 뭐, 죽을 일밖에 더 있니껴?”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도 평온하게 오가는지 문득 낯설면서도 마음 한쪽이 묵직해졌다.
그런데도 어르신들의 표정은 왜 그렇게 밝을까. 심지어 목소리도 크고 힘이 있다. 아마도 한 계절 한 계절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그럴 것이다.
아빠와 함께 걷는 이 복도에서 나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언젠가의 나를 보게 된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 순간만은 잠시 유예된 듯 잊고 살아간다.
시골 병원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저 누군가의 시간을 보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마주할 나의 삶을 조용
히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