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올리브
무언가 기억에 남는다면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감정을 자극할 만큼 감동적이었던지, 최악이었던지. 아니면 둘 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복잡 미묘하게 경험했다.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 일은 첫 마감 때다. 입사한 지 고작 일주일을 넘기고 그다음 주는 마감 주였다. 사실 인쇄소에 파일을 넘기는 날이 오늘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때였다. 오후 늦게 보내주신 사진들을 글귀와 이리저리 배치해야 했고 대표님의 컨펌과 무한 수정의 굴레에 빠져있었다. 설상가상으로 3교와 pc교가 엎치락뒤치락,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표지는 파일을 넘기기 직전에 바뀌었고 제목도 미정이었으니까.
때는 장마로, 바깥은 우렁차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감 날을 귀신같이 아는지 오늘따라 컴퓨터도 멈칫거렸다. 프로그램을 돌리는 와중에 버벅거리다가 멈추기도 했고 저장을 미처 못했는데 다운되기도 했다. 불안했는데 천둥이 크게 치더니 갑자기 회사 전기가 전부 나갔다. 정말 화면이 새카맸다. 이럴 수가 있다고? 모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컴퓨터는 회사 창립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십여 년 된 아이맥이었다. 컴퓨터를 종료했다가 실행하게 되면 유료 폰트가 설치되는 시간이 있어서 재부팅에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이유로 평소에도 시스템 종료는 하지 않고 잠자기 기능을 활용했었다. 그런데 이 바쁜 와중에 강제 종료라니. 인디자인 프로그램은 자동저장 기능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 저장이 됐을지도 모르고 고화질의 사진과 글로 빽빽한 마감 날의 파일은 고용량의 파일이라 쉽게 열리지 않는다.
자연스레 우린 야근을 자처했고 밤새 비는 멈출 줄을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나갔던 전기는 돌아왔고 컴퓨터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 켜졌다. 자동저장은 잘 돼 있었고 사진도 유실된 건 없었다. 마음을 졸이며 손에 땀을 쥐었던 시간이었다. 나의 구멍은 대표님이 아는 선에서 살짝 메꿔주셨고 에디터들은 울상인 나를 토닥여줬다. 컴퓨터가 재부팅되는 막막한 시간 동안 친절한 팀원들은 저녁으로 시킨 떡볶이를 그릇에 예쁘게 덜어 내 자리까지 배달해 줬다. 에디터들도 늦은 시간까지 최종파일 교정을 보고 퇴근했다. 파프리카는 퇴근하면서도 혼자 남은 내가 걱정되었는지 힘내라며 귀여운 간식을 남겨 놓고 떠났다.
처음 마감이라 모든 게 새롭고 낯선 데다가 날씨까지 애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파일을 매만져 최종마감을 이뤄냈다. 결국 막차가 끊겼고 택시를 타고 집에 귀가했지만, 돌아가는 택시에서 서울의 밤 풍경을 넋 놓고 쳐다봤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폭우가 쏟아졌는데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고요했고 아무도 없었다. 다 울고 허한 마음처럼 깨끗한 밤이었다.
출판사에서 마감이란 시험 종료음이 울리고 끝내 고민하다 제출한 답지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그런 존재다. 집에 와서도 편히 잠들 수가 없었다. 고단한 건 둘째치고 제대로 마감을 한 게 맞는지 너무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에 파일을 넘기고 보이는 작은 실수들이 눈에 아른거렸고 마감 날이 하루만 더 있었으면 실수를 최소화하고 더 잘 해냈을 거란 생각에 아쉬움만 가득했다. 그래도 이미 파일은 내 손을 떠났고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마음의 짐을 함께 나눠 짊어 준 팀원들과 답답했을 텐데 처음이라고 넘어가 주신 부분에서 대표님께 배려받았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았다.
어리숙한 실수를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운 점들은 메모장에 기록했다. 그 결과 다음 작업을 할 때는 좀 더 수월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감을 앞두고 누군가가 나를 타박하거나 몰아갔다면 다음 작업까지 성실하게 준비할 수 있었을까. 아마 회사에 대한 분노만 쌓였겠지. 물론 체계적으로 마감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다음 시간까지 기다려준 모두에게 고마움이 남았다. 처음 호흡을 맞추는 것이었고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완성도 있게 마무리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아주셨다. 최악과 감동의 상황이 뒤죽박죽이었던 나의 첫 마감은 그렇게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