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목동의 절망에 찬 시들과 예기치 않았던 다른 사건들에 대하여
대단한 장례식장에 도착!
서른 살 정도의 '그리소스토모'는 짝사랑했던 그녀를 처음 만난 장소에 묻어주고 그동안 썼던 글을 다 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무덤을 파는 동안 죽기 전에 쓴 그의 마지막 시를 읽어보았다.
사자의 부르짖음, 사나운 늑대의 무서운 외침, 어느 괴물의 절규,
이미 쓰러진 소의 누그러뜨릴 수 없는 울음소리, 홀로 된 산비둘기 암놈의 애끓는 소리,
어두운 지옥에 우글대는 군상들의 통곡 소리여
이 아픈 영혼과 함께 밖으로 나오라
매정함은 사람을 죽이고, 인내는 두려움을 주니 질투는 가장 참혹하게 사람을 죽인다.
오래 보지 못하면 인생은 엉망이 된다.
잊힐까 두려운 마음이 행운의 확실한 희망을 이용하지 못한다.
인정머리 없는 죽음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나는 믿기지 않는 기적으로 살아남아
내가 죽지 않았나 하는 의혹 속에서 버림받은 몸으로 부재자로 열심히 살아간다.
그녀가 나를 잊어도 나는 그녀에게 나의 불을 지피고
그 많은 고통 속에서 나의 눈길은 어둠 속에 잠겨 끝내 희망을 보지 못하여
이제 나도 절망하여 희망조차 찾으려 하지 않으니
아예 불평이나 하면서 그녀 없이 영원히 살 것을 맹세하노라
탄탈로스는 그대 목마름을 가지고 심연으로부터 오라.
시시포스는 그대 노래의 엄청난 무게를 지고 오라.
티티오스는 그대 매를 데리고 오라.
익시온은 그대 바퀴를 멈추지 말라.
죽어라 일하는 자매들도 일을 멈추지 말라.
이 모든 이들이여, 그대들의 치명적인 아픔들을 나의 가슴에 옮겨 놓기를 원하노라.
(185~191p.)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건 이런 것일까? 짝사랑하다 지치고 쓰러진다는 건 이런 심정일까? 상대를 아름답게 느끼고 갈망하던 시기는 지나가고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기에 원망과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옥의 고통받는 모든 자들의 아픔을 자기 가슴에 옮겨놓고자 하는 글에서 절절함이 느껴진다.
PS.
* 탄탈로스 형벌 : 신의 비밀을 누설하고 신의 재능을 시험해보는 오만함에 대한 벌로 지옥에서 먹을 것이 가까이 있지만 결코 먹고 마실수 없는 형벌을 받았다. 영원한 기아와 갈증을 느껴야 한다.
* 시시포스 형벌 : 본인은 꾀가 많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속임수와 약은 행동으로 신의 노여움을 사 지옥에서 큰 바위를 산 꼭대기에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산 정상에 바위를 밀어 올려도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려 희망 없는 일을 무수히 반복해야 한다.
* 티티오스 형벌 : 제우스의 여자 레토 여신을 겁탈하려다 들켜 지옥에서 바위에 묶인 채 두 마리의 대머리 독수리에게 매일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절제되지 않는 욕망을 끊임없이 없애야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VS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기 때문에, 코카서스 산에서 이틀에 한 번씩 찾아오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다. 나중에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자유를 찾는다.
* 익시온 형벌 : 최초의 친족 살해자로 결혼하기 전 약속했던 예물이 주기 싫어 장인을 살해한 자다. 영원히 멈추지 않는 불타는 수레바퀴에 묶여 있는 형벌을 받았다.
* 죽어라 일하는 자매들 : 지옥에서 밑 빠진 용기에 물을 채우는 형벌이다.
죽은 '그리소스토모'에게도 절친이 있다. 우정이 깊었던 '암브로시오'는 친구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마르셀라'를 원망했다.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증오를 받았고, 존경했지만 멸시를 받았습니다. 맹수에게 구애했고 대리석에게 정을 구했으며 바람을 좇아 달렸고 고독에게 외쳤으며 배은망덕한 자를 섬겼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얻은 것은 한창나이에 죽음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와 친구의 말에 사람들이 점점 동요되고 있을 때 즈음
무덤을 파고 있던 바위 꼭대기에서 갑자기 아름다움이 뚝뚝 떨어지는 여자 목동 '마르셀라'가 나타났다.
* 암브로시오 : 마르셀라!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다 와?!

* 마르셀라 : 여러분, 저는 억울합니다.
하늘은 저를 아름답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이는 하늘이 베풀어 준 은혜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랑해 달라 하지 않아도 저의 아름다움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사랑하면 저도 여러분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나요?
아름답다고 다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아름다움은 눈을 기쁘게 하지만 마음까지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만일 아름답다고 다 사랑하게 된다면, 어느 쪽에 마음을 둘지 몰라 헤매고 다닐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수없이 많으니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수없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못생겼다면, 저는 여러분들이 저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해도 되는 건가요?
독사가 독을 갖고 있어서 그 독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연이 준 것이니 죄가 되지 않듯이 저 역시 아름답다 해서 비난받을 까닭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희망으로 지탱된다면, 저는 그리소스토모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희망을 준 적이 없으므로 저의 무정함보다도 오히려 그분의 집념이 그분을 죽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의 생각만 순결하고, 그래서 제가 그분의 생각에 응해야 한다고 짐 지우지 마십시오.
저는 처음부터 혼자 살고 싶다고 의사표현을 분명히 했습니다. 제가 분명히 거절했는데도 단념하지 않고, 제가 증오하지 않았는데도 혼자 절망한 건데 그분의 고통이 저의 잘못인가요? 제가 여지를 주지도 않았고 속이지도 않았고 받아들이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잔인하다느니 살인자라느니 하는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소스토모를 죽인 것은 그의 초조함과 무모한 욕망 때문이지 저의 정결한 행동과 신중함이 죄는 아닙니다.
저는 자유롭게 살고 싶고 누군가에게 구속되는 것이 싫습니다. 저는 하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산과 들을 친구로 삼아 지내고 싶습니다.

>> 역시 사람 말은 양쪽을 다 들어봐야 한다. 그리소스토모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이리 잘생기고 똑똑하며 순정파인 남자를 왜 그리 모른척했나 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더랬다. 나중에 싫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인지 좀 만나보고 결정하지 아예 보아주질 않으니 얼마나 애절했겠나 싶어서.
그런데 '마르셀라'의 똑부러지는 말에 고개가 숙여진다. 미모에다 재산도 넉넉하고 교육도 잘 받은 그녀에게 남자가 뭐 그리 아쉬우리. 능력 있는 여자는 예나 지금이나 혼자 살아도 아무 문제없다. 사랑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듯 지금의 '마르셀라'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리소스토모가 더 깊이 사랑할 줄 알았더라면 그녀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을 텐데 그가 너무 젊었던 것이 아쉽다. 젊음이란 그런 것이지. 열정에 불타오르고,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맹렬함조차 아름답게 보일 때이다. 하지만 언젠가 '마르셀라'도 허전함을 느끼고 사랑을 하고 싶어질 때가 올 것인데, 그리소스토모, 그대가 성급했어.
자기 할 말을 다 한 '마르셀라'는 그대로 뒤돌아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사람들은 무덤에 비석을 세우고 떠났으며, 돈키호테는 '마르셀라'를 도와주고 싶었다.
..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