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요가, 즐거운 수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가끔 선생님과 나, 둘만 수련을 하는 날이 생긴다. 지난 금요일이 그랬다.
우리 요가반 총 수련인원은 여섯 명 정도다. 화목반, 수금반, 한 명은 화수목금반. 나는 수금 반이다.
수강료도 저렴해, 한 달에 입주민은 4만 원, 다른 단지에서 올 경우 5만 5천 원이라,
하루 강습을 빠져도 타격감이 적다. 바쁜 일이 생기면 다른 요일에 와서 수련을 해도 된다.
그냥 알아서 한 달의 여덟 번 강습을 채우면 되는 것이다. 물론 안 채워도 상관없다.
나도 이번 주엔 수요일 급한 일이 생겨 수련을 못했다. 목금으로 이틀 강습에 가려고 했더니,
목요일은 공휴일이라 다음 주에 보강을 들으라 하신다.
여섯 명의 수강생이 내는 총수강료를 생각해 보면,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요가반이다.
심지어 총수강료의 20% 인지 30% 인지는 장소사용료로 내는 걸로 알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일주일 만에 가는 거라 전날부터 마음이 설렜다. 물론 일상 속에서도 나 혼자 요가를 즐긴다. TV를 볼 땐 몸을 'ㄴ'으로 만들어 버티는 단다 아사나를 하거나, 나무 서기를 하기를 하고, 몸이 무겁거나 마음에 불안이 찾아오면 차라리 몸에 집중하자! 외치고, 아쉬탕가 동작 중 수리아라마스카나 A, 또는 B를 한다. 침대 옆, 거실 한쪽 작은 공간이라도 매트만 펴면 할 수 있다. 나 혼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하지만 함께 하는 수련에 더 큰 성취가 따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 단 1초라도 더 버티기 위해 힘을 짜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바로 함께하는 요가의 묘미다.
"지원님! 일주일 만이죠?"
"그러니까요! 몸이 뻣뻣해요. 잘 지내셨어요? 요가도 그리웠지만, 선생님과의 스몰토크... 너무 그리웠어요!"
"저도요! 바쁜 일들은 다 처리하셨어요?"
"네 뭐... 그럭저럭요. 바쁜 일이라고 해봐야, 큰애가 안경이 부러져서 고치러 오는 바람에 그거 고쳐서 보내느라... 아시죠?"
선생님이 공감하며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사실 우리가 나누는 "아시죠?"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선생님과 나는 이십 대 중반의 딸을 키우고 있는데, 두 아이의 상황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아직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 종종 힘든 마음을 들어줘야 하고, 뒤치다꺼리도 해줘야 한다. 딸이 없는 엄마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딸이랑 놀아서 좋겠다며 부러워도 한다. 물론 좋은 날도 있지만, 그렇다고 늘 웃음꽃이 만발하는 것도 아니라 우리는 종종 딸 때문에 신경 쓴 걸 살짝 스몰토크로 풀었다. 구구절절 다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냥 몇 마디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예전에 나눈 대화인데,
"딸이 시간이 나서 집에 나흘 와 있었거든요, 삼일동안 잘 지내다가 마지막 날에... "
"아~~ 알죠 그거 뭔지! 저도..."
딸이 성인이 되고 나면 많은 것이 달라지는데, 특히 밖에 나가 흉을 보는 게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래 본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그렇다. 중년이 되면서 입이 무거워지고 싶다고 자주 생각하는데, 아직은 철이 부족한지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고 후회하는 일도 생겨난다. 말이라는 게 한번 시작되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경향이 있어 시작을 말아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되는 일도 아니고, 어떤 자리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돌아온 날은 후련한 기분도 있지만, 큰길에 나가 벌거벗고 춤을 춘 듯한 민망함이 몰려온다. 그런 면에서 요가 선생님과의 스몰토크는 나에게 아주 안전한 느낌이다.
"지원님, 부장가아사나(일명 코브라 자세) 힘들어하시잖아요"
"네.. 전 후굴이 무서워요. 허리가 똑 부러질 거 같아요!"
"저도 그랬어요!! 저는 일자 허리라"
선생님은 준비한 수업 내용을 벗어나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로 하셨나 보다.
"선생님, 왠지... 선생님한테 우연이한테 수학문제 풀라고 하는 제 모습이 보여요."
"네? 아~ 호호호호"
부장가아사나에 이어 말라아사나, 그리고 머리서기까지 선생님의 강행군이 이어지며 나는 온몸이 뜨끈뜨끈해졌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반사판이 들어온 듯 환해지고, 마음속 깊은 심연에 자리 잡은 두려움, 걱정들이 다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내 뜻대로 되는 거 없었잖아! 계획대로 다 됐다면,
내가 왜 늦둥이 육아를 하고 있겠어, 갑자기 고시생 수발은 무슨 일이야?
"선생님, 큰애가 기숙사 신청을 안 했데요. 칠팔월에 집에 와서 공부하겠다고..."
"아... 요가 오실 때 쉬러 온다고 생각하세요."
선생님은 많은 걸 이해하신 듯 웃었고, 나도 함께 웃었다. 요가를 하며 나눈 단 몇 마디 대화로 가슴속 응어리가 풀린다는 게 신기하다.
"한 달.. 강습해 봐야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무용한 걸 위해 애쓰시니 정말 대단하세요!"
"지원님, 저 너무 행복해요! 지원님도 도전해 보세요. 저 마흔아홉에 2단지 커뮤니티에서 요가 시작해서
지도자과정까지 했잖아요."
"아직 그 정도 아니에요. 저 제 엉덩이 못 들어요. 아시잖아요!"
우리는 깔깔 웃으며 헤어진다. 오랜만에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편안했다.
곧 숙제가 많은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그 여름 메인 테마곡의 제목은 '중학생과 고시생',
키워드는 엄마의 갱년기, 사춘기의 반항, 이십 대의 취업난.
누구라도 '파국'을 예상하겠지만, 요가를 벗 삼아 몸에 집중한다면 평정심 유지할 수 있을 지도,
어쩌면 가능할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