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과 노년이 함께 하는 아파트 커뮤니티 오전 요가반
우리 아파트 커뮤니티 요가반은 평균 연령이 매우 높은 편이다.
중년 초입부터 백발 노년의 여성이 함께 수련한다. 강사님도 중년이라 그런 지
수련의 목적이 '외적인 예쁨'보다 '마음의 안정', '몸의 건강'에 집중되는 느낌이다.
솔직히 중년이 되고 내 몸의 노화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노년은 오죽할까?
우리의 스몰토크에 단골로 등장하는 내용은 주로 불면의 고통, 관절의 불편이다.
나 역시 불면의 고통을 자주 이야기 하는데, 강습 시간이 오전 9시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며칠 전, '구들장 언니'가 날 붙들고 하소연을 시작한다.
새벽 4시 반까지 잠 못 들고 있다가 얼핏 잠이 들었는데, 9시 반에 잠이 깨는 바람에
지난 요가 강습에 나오지 못했다는 거다. 세상에... 새벽 4시 반까지 잠 못 든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아우, 어떡해요... 얼마나 힘들어요. 말이 새벽 4시 반이지... "
며칠 후, 나도 삼일 연속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늦게 잠들었는데, 새벽에 눈을 뜬 것이다. 몸이 천근만근,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엇보다 다음 날 아침 9시 요가 강습에 갈 수 있나? 걱정이 돼 마음이 힘들었다.
다행히 출근하는 남편과 등교하는 막내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컨디션이 조금 돌아와
얼른 매트를 챙겨 커뮤니티로 갔다.
강사님의 싱잉볼 소리에 맞춰 명상을 하는데 여기 앉은 이 순간이 감사하다, 싶으면서도 또 왠지 쓸쓸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낄 때, 난 왠지 쓸쓸해진다. 젊음이 만발했던 그 시절을 지나 결혼하고,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제 쉰이란다.
서른이 되고, 드디어 이제 잔치는 끝났구나! 하면서 기가 한 번 꺾였지만
아직은 젊고 자신감도 있어서였는지 큰 타격감이 없었던 거 같다.
그러니까 잔치가 끝났다는 말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러다 마흔이 되면서 이 나이는 뭐지? 혼란스러웠는데,
그럼에도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리고, 쉰.
쉰이 불안한 건, 십 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는 세월이라는 걸 알아버렸다는 거.
십 년이 휘리릭 지나고 나면... 예순. 이건 아직 좀 감당하기 힘들겠는데, 싶어지는 거다. 불안한데? 쩝.
하지만 내 옆에 노년의 언니들이 계시니 징징대긴 좀 그렇다.
그레이 헤어의 언니들이 겪었을 고단한 인생의 발자취, 난 상상도 못 하겠다.
지난번 함께 차 마시는 자리에서 베개가 젖도록 눈물을 흘렸다는 왕언니의 고백이 아직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삼십 대의 나도 남편과 다투고 아파트 비상구에 앉아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지,
어떤 날엔 창밖으로 보이는 서쪽의 붉은 해가 다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올 때까지
슬픔에 잠겨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며.
평생 이런저런 고단한 일상을 살다 노년에 이른 언니들을 보면 슬프기도 하지만
너무너무 존경스럽다.
불면의 밤과 관절의 고통을 견디고 우리는 다 같이 이곳에 모여 수련을 한다.
"제가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다니느라 지난번 강습 한 번 못했었잖아요"
"아유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보강도 하면서 뭘 신경 써."
"그때 엄마가 호흡을 밭게 하시니까 산소포화도가 올라가질 않아서 의사가 걱정을 하더라고요."
"아이고 어째..."
"그래서 요가 강사인 제가 엄마한테 코로 호흡하는 걸 알려드렸어요,
코로 들이마시고, 코로 천천히 내뱉고 아시죠? 그랬더니 그렇게 안 올라가던 산소포화도가
금방 확 올라가는 거예요!"
"세상에나!"
나도 한 마디 보탰다.
"우리 막내가 미숙아로 태어나서, 예전에 자주 아플 때...
열이 나다가 애가 갑자기 숨을 못 쉬어서 새벽에 응급실에 갔거든요, 산소포화도가 올라가질 않는 거예요,
그때, 의사가 평생 산소통을 들고 다니면서 호흡해야 한다고 해서 진짜 하늘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근데, 다행히 산소포화도가 올라가서..."
"방학 때 같이 요가한 그 아이?"
"네네"
"다행이네!"
"우리 우연 양, 항상 코로 호흡하라고 하세요!"
"네!"
"요가는 호흡을 코로만 하는 게 원칙이거든요, 요가하실 때 코로 호흡하는 거 연습하시면
나중에 엄청 도움이 되실 거예요, 자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고..."
중년의 우리는 노년을 생각한다. 노년의 언니들은 그다음 어디쯤을 생각한다.
우리는 온전히 코로만 호흡한다. 말도 못 하게, 강렬하게 우리는 집중한다.
건강한 삶을 향한 우리의 열정이 폭발하는 순간, 이 공간을 가득 채운 공기가 달라짐을 느낀다.
우리는 종종 불면의 밤을 지나 새벽을 맞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함께 앉아 수련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자, 이제 나바아사나 하고, 사바아사나 할게요!"
나바아사나는 진짜 너무 힘든 동작이다. 일명 보트자세라고 하는데
앉은 상태에서 다리를 쭉 뻗어 들어 올리고, 상체는 뒤로 가고, 팔은 앞으로 쭉 뻗는 것이다.
오직 엉덩이만 바닥에 닿은 상태로 온몸이 들린 상태.
배에 힘을 엄청 줘야 하고, 등근육을 강렬하게 모아 아래로 아래로 힘을 써야 한다.
허벅지의 힘으로 종아리를 들어 올린다. 중년인 나도 온몸이 덜덜 떨린다. 엄청나게 후달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낸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려고 애를 쓰면 마법 같은 힘이 어디선가 솟아난다.
"등근육 아래로 모아주세요! 하 나! 두 울! 세 엣!...
이제 끝났나 싶은데 선생님의 구령이 다시 시작된다.
... 셋! 둘! 하~~~~~~~~~나! 발 사뿐히 내려놓습니다! 와... 이걸 해내시네요! 정말 대단하세요!!"
내가 봐도 장관이다.
중년 둘, 노년 둘, 총 네 명이 팔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 버티는 순간,
온몸이 덜덜 떨리지만, 호흡은 거칠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코로 호흡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힘을 내고, 사뿐히 발뒤꿈치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선생님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이어지고, 우리 마음속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오른다.
이 정도면, '거의 소녀시대'.
우리의 관절은 또 말썽을 부릴 테고, 불면의 밤도 종종 찾아오겠지만,
이렇게 함께 모여 수련할 수 있다면, 잘 버텨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