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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Jul 02. 2024

샴페인의 주인

아파트 커뮤니티 오전 요가반 2주년 기념일 

 헬스장에서 아침 러닝을 하려고 반바지를 입고, 양말까지 신었는데 

카톡이 하나 도착했다. 


[굿모닝~~ 지원님 너무 이른 시간에 갑작스럽게 연락드려 죄송해요, 

 혹시 괜찮으시면 오늘내일 수업 다 참여하실 수 있는지...] 


요가 강사님이다. 나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요가를 한다. 오늘은 목요일인데, 왜 오라고 하시지?  

지난번 친정어머니와 병원을 가는 스케줄로 딱 한번 휴강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런 비슷한 일정이 생기신 건가? 했는데, 다시 보니 내일 수업도 오라고 하시니 그건 아니고, 

아니 왜? 결국 우리는 잠깐 통화를 했다. 

알고 보니, 오늘이 바로 강사님이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바로 강습을 시작한 지 딱 2년이 되는 날이란다.  

기념품을 준비했는데, 그걸 나에게 전달도 할 겸 수련을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목소리에서부터 강사님의 벅찬 감정이 전해졌다. 안 갈 이유가 없다. 

혼자 뛰는 러닝이야 언제든 내가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 오늘 이 기념비적인 요가 수련에 함께 하지 

못한다면 진짜 서운할 뻔했다. 연락을 준 강사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얼른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매트를 챙겼다. 평소엔 두 명, 가끔 세 명 정도 수련을 하는데, 오늘은 무려 다섯 명이다. 

7학년 왕언니와 6학년 언니 둘, 그리고 4학년인 우리 요가반 최고 에이스, 그리고 5학년인 나! 

(어르신들이 모이면 나는 6학년이네, 당신은 7학년이네 하면서 서열정리하는 게 신기했는데 

 이제 그걸 내가 한다!)

거울 앞, 중앙에 매트를 편 강사님, 그리고 강사님을 바라보며 쪼르르 앉은 우리 수련생들. 

뎅~ 싱잉볼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하고 잠시 후, 합장하며 "나마스떼"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강사님의 표정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마음이 벅차오르셨는지 

목소리에 작은 떨림이 묻어있다.  


"오늘이 제가 여기 커뮤니티에서 요가 강습을 시작한 지 딱 2년이 되는 날이라서... (울컥하신 듯) 

수 금에 수련하는 지원님도 함께 초대를 했어요. 그때 2년 전 딱 두 분이 신청을 하셔서 제가 수업을 

열 수 있었거든요, 여기 계신 OO님, 그리고 아시죠? 아파트 길 건너 상가 건물에 있는 연어 식당 수북 

사장님요!" 


강사님의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지자 내 마음도 촉촉해졌다. 

강사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아내로 엄마로, 심지어 며느리로 20년 이상 

살아왔다는 게 어떤 건지 나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단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2주년이 된 자신만의 요가 클래스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내가 만약 이런 순간을 맞았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보니... 난 그냥 오열! 

우리는 강사님의 구령에 맞춰 호흡을 하고 몸을 움직인다. 그녀가 하라는 대로만 한다. 

요가 강습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그녀의 시간이다. 우리 수강생들은 오로지 그녀만 바라본다.  

그리고 매달 마지막 주엔 커뮤니티 수강신청 안내문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게시판에 붙는다. 

[오전 요가 9:00~9:50] 그 옆엔 더 이상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본인의 이름 딱 석자만 나온다. 

지금까지 본 그녀의 성정으로 봤을 때, 분명 한 번은 울컥했으리라 

자신의 이름이 홀로, 당당히 적힌 그곳을 바라보며!    

 

아파트 커뮤니티 오전 요가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솔직히 아직 대단한 요가인이 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몸의 변화는 확실히 느껴진다. 

얼마 전, 나는 살람바 시르사 아사나 일명 머리 서기에 도전해 약 80% 정도의 성공을 이뤄냈다. 

부족한 20%는 강사님이 발을 살짝 잡아주신 것. 내 몸이 거꾸로 섰다. 

허벅지의 힘과 옆구리의 힘, 그리고 팔뚝의 힘 모든 힘의 조화가 머리가 바닥에 짓뭉개지는 걸 

막아주었다. 머리서기를 했는데 머리가 아프지 않다! 몸에 굵은 철근이 온전히 느낌.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정신은 사라지고 온전히 몸만 남은 느낌이랄까? 중년에 비로소 맛본 이 낯선 느낌이 너무 좋다. 요가를 향한 열정과 함께 강사님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날로 커져간다. 

아이를 양육하고 입시까지 치러보면 결국 교육의 핵심은 선생님이라는 알게 된다. 어린이집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 담임 선생님 그리고 학원 선생님, 선생님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평소에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최선을 다해 수련하지만, 2주년을 기념하는 수업이라 그런지 우리는 더 강렬하게 집중했다. 명상부터 사바 아사나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중간중간 파도치듯 더 강하게 힘을 냈다. 

마지막 힘을 다 짜내고 나서, 역자세인 할라 아사나, 그리고 살람바 사르방가 아사나 후 매트에 누워 

일명 시체자세인 사바 아사나까지. 그리고 몸을 일으켜 가부좌한 자세로 잠시 명상을 하고 합장 후 

'옴 샨티'. 서로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넸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각자의 매트를 정리하는데 선생님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호두과자다. 

무려 1934년에 시작된 원조 호두과자! 이걸 청소해 주시는 이모님들과 관리소 직원들, 그리고 우리 수강생에게 까지! 돌렸다. 이걸 받은 관리소 직원이 이렇게 말했단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어요." 

   

몇 명 안 되는 수강생에, 얼마 안 되는 수강료에, 30%를 장소사용료까지 내고 나면 도대체 뭐가 남는다고 

호두과자까지. 하여간 그녀는 무용한 사랑하는 낭만주의자가 분명해 보인다. 

신발을 신고 커뮤니티 복도를 지나며 각자의 집을 향해 걸으며, 살이 빠졌네, 안 빠졌네, 

호두과자까지 준비했냐, 먹을 게요 등등 후일담을 나누니 마음이 유쾌하다. 

나는 그녀에게 샴페인 병을 건넸다. 


"가족분들과 함께 축하하세요! 2주년." 


오전에 강사님과 통화 후 요가복을 갈아입으며 언젠가 함께 축하를 해야 할 어떤 순간을 위해 

냉장고에 넣어둔 샴페인 한 병이 생각났다. (비싸고 유명한 샴페인은 아니지만!)

그래, 드디어 이 샴페인의 진정한 주인을 찾은 느낌!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이 나간 자리를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휴식을 취하며 차도 한잔 마실 것이다. 그렇게 조용한 집에서 어제도 했고 그제도 한 늘 비슷한 집안일을 

습관처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가슴이 구멍이 뻥 뚫린듯한 기분이 들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진다. 창 밖을 보며 한숨을 쉬기도 하고, 중년의 다이어트는 달라야 한다! 중년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귀티 나는 중년 여성의 코디 그런 제목의 유튜브를 열심히 보다가, 갑자기 내가 이걸 왜 보나? 허탈해지며 

깊은 한숨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온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가는 세월에 내 마음이 더 초조해지고, 가슴이 두근두근... 

이럴 때 난 오전에 함께 수련했던 요가를 떠올린다.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손등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코로 호흡한다. 다리를 뻗고 허리를 골반 위에 세우고 앉아 다리 안쪽에 

힘을 준다, 안타라 반다. 가슴을 활짝 펴고 등근육을 모아 아래로 내려준다, 레투스 반다.  


몸이 반듯해지면 세상이 고요하다. 


잊고 싶은 기억, 잊을 까봐 겁나는 추억 다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호흡하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이윽고 텅 빈 머릿속에 냉장고가 떠오른다. 문이 열리고 다담 두부찌개 양념과 순두부가 보인다. 

저녁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입에 침이 고인다. 살맛이 난다. 그래, 이만하면 괜찮아! 

짜증 낼 필요 없잖아, 어차피 지나 간 일인데, 그냥 좋게 보내주자!   


"강사님, 요가 강습 시작한 지 2주년 된 거 축하드려요. 당신은 요가로 세상을 이롭게 한답니다.

그래서 제 샴페인의 진정한 주인이 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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