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커뮤니티 오전 요가반
예전에 수영장 다닐 때를 떠올려 보면, 은근 텃새라는 게 있다.
기억나는 건 샤워를 하지 않고 수영복을 입는 신입회원에게 기존회원이 다가가 수영장 물이 더러워지니 샤워를 하고 수영복 입으라고 말하는 상황. 한몇 년 오래 다녔을 기존 회원은 목소리가 크고 당당했다. 최고레벨반만 쓸 수 있는 수모를 썼고, 수영장 관계자처럼 보였다. 그 말을 들은 신입회원은 당당하게 "아침에 샤워했는데요."라고 대답했다. 이후 이어진 시끄러운 상황을 보며 난 열심히 샤워하고 수영복을 입고, 그 목소리 크고 당당한 분 옆을 지나갈 때 왠지 모르게 조신해졌다. 못된 시어머니가 따로 없었다. 신체에 강렬한 타투를 한 회원이 부럽기도 했다. 저러면 건들기 힘들겠다! 작년 4월, 아파트 커뮤니티 요가반에 처음 들어갔을 때 솔직히 살짝 쫄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젊은 분은 당시 두 명, 그 외는 모두 나보다 연배가 높은 언니들이다. 표정을 보니 다행히 수영장에서 봤던 까다로운 시어머니 같은 느낌은 아니다.
"자기 재혼 조건 1위가 뭔지 알아?"
"네? 모르.. 겠는데요."
"자기처럼 하체가 튼튼한 사람! 자기 같은 하체를 가진 사람이 재혼 조건 1위래."
"아 진짜요? 저 이 거대한 허벅지 때문에 평생 괴로웠어요..."
"무슨 소리야! 여자는 허벅지가 튼튼해야 돼!"
"젊었을 땐 속상했겠다, 그래도 지금은 얼마나 다행이야?"
나에게 '허벅지 튼실'이라는 캐릭터가 주어지고, 다 같이 웃고나니 빨리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절 나에겐 거의 모든 요가 아사나가 어렵고 불가능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허벅지의 힘을 버티는 동작은 해볼 만했는데, 언니는 그 동작을 해내는 날 보며 엄지 척을 해주셨다.
"역시 허벅지 힘이야!"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우리 요가반 언니가 나 재혼하면 1등으로 뽑힌다고 했다! 하니, 빵 터지며 웃는다. 좋겠다고. 축하한다고.
얼마 전에도 언니의 농담 덕분이 다 같이 웃었다.
요가 말미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사바아사나를 한 후, 몸을 깨우는 동작이 이어진다. 그중 바닥에
누워 무릎을 세우고 허리와 엉덩이를 바닥에 쿵쿵 찍는 동작이 있다. 아마도 수련하느라 고생한 허리를 풀어주기 위한 것일 거다. 난 선생님의 지시대로 허리와 엉덩이를 바닥에 쿵쿵쿵 열심히 찍었다.
명상까지 끝나고 매트를 정리할 땐 곡소리가 이어진다. 아이고... 아이고... 수련이 그만큼 힘들었단 거다.
"근데, 자기야 나 구들장 무너지는 줄 알았어! 아까 엉덩이 바닥에 쾅쾅 찍을 때!"
구들장이 무너지다니... 얼마나 웃었는지 웃음 끝에 깊이 파인 팔자주름과 눈가의 주름을 손으로 펴줘야 했다. 역시 언니의 농담은 색깔이 분명하다. 언니의 농담을 듣고 웃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너무너무 내 취향이다. 예능 작가로 일하면서 웃기는 일에 목숨을 걸어왔다. 나의 이 직업병에 두 딸에게까지 물려주었다. 딸 둘이 다 친구들을 웃긴 에피소드를 영웅담처럼 늘어놓는다. 나는 "그래서 몇 번 웃겼는데?"라고 묻는다. 사람을 웃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요가반 구들장 언니는 힘을 하나도 안 쓰고 그걸 해낸다.
오늘 강습의 챌린지 동작 중 하나가 바카아사나였다. 일명 까마귀자세로 쪼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두 팔을 바닥에 지지하며 엉덩이를 하늘을 향해 번쩍 드는 동작이다.
모두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엉덩이를 들어 올린다.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야 한다. 하지만 코를 바닥에 박으면 안 된다. 몸은 위로 위로! 올려야 한다. 무거운 나의 엉덩이를 실감하며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한 발이 떨어지고, 나머지 한 발이 떨어질 락 말락... 0.00001초 떨어지자마자 내려오는데 우리 구들장 언니의 한마디가 이어진다.
"자기야! 자기 엉덩이 든 날 우리 다 같이 먹으러 가자!"
오늘도 즐거운 요가,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