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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종분류 D-day: 같은 날 발표된 세 가지 다른 길

전문의가 되자마자 맞이한 두 번째 인생 갈림길

by 의사과학자 류박사 Ja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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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의가 되는 길, 그 마지막 시험 】


2018년 2월은 저와 함께 전문의 시험을 치른 모든 수험생들에게 잊을 수 없는 달이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매년 2월, 전문의 시험의 합격 여부가 발표되기 때문입니다. 합격하면 그 해부터 전문의라는 직함을 가지고 진료를 시작하게 됩니다. 일반의보다 더 전문적인 영역을 다룰 수 있지만, 그만큼 더 큰 법적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전문의 시험의 합격률은 제가 알기로는 약 90% 전후라고 합니다. 따라서 남들이 공부할 때 열심히 공부하고, 지도 전문의 교수님들께서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던 것들을 잊지 않고 공부하면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합격률이 높다고 해서 누구나 합격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4년간 전공의로서 병원 업무만 한다면 절대 합격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의사인생 2막의 시작, 역종분류 】


하지만 그해 2월에는 더 중요한 발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남성 전공의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 병무청의 역종분류 발표입니다. 의무사관후보생에게 역종분류란 군의관, 공중보건의사, 병역판정전담의사 세 가지 군 복무 형태 중 하나로 국가에서 목적을 가지고 선발하고 분류하여 발표하는 것입니다. 어느 형태로 분류되더라도 복무 기간은 3년 1개월에서 3년 2개월 정도로 동일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의무사관후보생의 신분에 따라 국방부에서 필요로 하는 자원을 먼저 선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후보생이 전문의인지 일반의인지가 중요한 고려 사항일 것이고, 전문의 중에서도 군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로 하는 과를 전공했다면 우선 선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전문의와 의학박사 그 이후 】


저는 암기력이 의사 중에서 상대적으로 특출나지는 않았지만, 평균 정도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평균 이상의 공부 시간을 투자하며 전문의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1차 시험과 2차 시험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고, 그 결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1) 같은 시기에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터라 의학박사 학위와 전문의 자격을 거의 동시에 취득하게 되어 기쁨이 배가 되었습니다.


이제 병무청의 역종분류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었고, 당시 분위기로는 정형외과 전문의의 90% 이상이 군의관으로 선발되었기 때문에 차분히 군의관으로 입대한 선배님들과 소통하며 어떻게 추가적인 학위와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만약 제가 카이스트 전문연구요원에 합격했다면 병무청 역종분류 발표 대상에서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부족하여 탈락하였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학업과 연구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정보를 수집하면서 알게 된 것은 군 복무 시 위수지역 제한으로 인해, 원하는 대학과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된다면 야간 대학원 통학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온라인 대학원(예를 들면 방송통신대학교) 등의 방식으로 추가적인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희박한 확률이지만 공중보건의사나 병역판정전담의사로 분류된다면 배치받을 지역 근처의 대학원은 다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저에게 병무청의 역종분류는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었을까요?


사진 1. 제61차(2018년)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시험 최종 합격자 안내 (익명화)사진 1. 제61차(2018년)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시험 최종 합격자 안내 (익명화)



【 세 명의 동기들, 세 가지 다른 운명 】


그러던 중 병무청에서 역종분류를 완료하여 인터넷에 공지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저를 포함한 의국동기 3명이 각자 역종분류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각각 다른 분류 결과를 받았습니다. 한 명은 군의관, 한 명은 공중보건의사, 한 명은 병역판정전담의사가 되었습니다. 3명 모두 다른 분류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저는 병역판정전담의사가 되어 병무청에서 수검자들의 신체검사 중 정형외과 질병에 대해 판정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진 2) 우리는 모두 다른 길로 가게 되었지만, 서로의 군 복무가 큰 문제없이 무탈하기를 기원해 주었습니다.


의과대학 동기들과도 각자 연락을 주고받으며 본인이 어떤 역종분류를 받았는지 물어보곤 했습니다. 비록 전공과는 다르더라도, 같은 길을 걸어온 동기들이었기에 서로의 근황이 궁금했습니다. 그동안의 삶에서는 제가 노력하면 어느 정도 나의 앞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이 역종분류만큼은 정말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모든 미필 남성들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진로를 국가에 의해 결정받는다는 사실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진 2. 운명의 순간: 2018년 의무사관후보생 역종분류 결과사진 2. 운명의 순간: 2018년 의무사관후보생 역종분류 결과



【 의사에서 공학도로, 나의 새로운 도전】


병무청 병역판정전담의사로 분류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방식으로 군 복무를 하고 계신 선배님을 수소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가까운 분이 병역판정전담의사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고, 그 분을 통해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조언을 구한 결과, 병무청은 전국 각 시도별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 배치받을지는 알 수 없으나 조금 무리하면 야간대학원은 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 지원했다가 낙방하였지만, 사람이 의지를 갖고 있으면 하늘도 도와주는 것 같았습니다. 학업과 연구를 계속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했더라도 학업과 연구를 어떤 방법으로든 병행했을 것 같지만, 병역판정전담의사로 군 복무를 하게 되면 위수지역이 없어 조금 더 수월하게 학업과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희미하게만 그려지던 제 인생 2막, 공학도로서의 길이 이제 밝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문의가 되자마자 맞이한 두 번째 인생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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