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도 참 생각이 많았다.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내 노력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삶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 고민이 지금의 나이쯤엔 끝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 질문들이 유효한 것을 보면, 어쩌면 이 질문은 끊임없이 나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스무 살 때 적은 버킷리스트를 오랜만에 찾아봤다. '내가 이런 걸 하고 싶다고 적었었구나..' 싶어 놀라기도 했고. '와 이걸 내가 꿈꿨었는데, 이미 이뤘잖아?' 싶어 놀라기도 했다.
1. 칸 영화제 레드카펫 밟아보기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을 때 기분을 잊지 못한다. 그 광경이 실제 나에게 펼쳐질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어렴풋이 꾸던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고이 접어둔 뒤, 결국 영화 마케터가 된 나는 칸 영화제에 초청된 한국영화의 마케팅 담당자로 레드카펫을 걸었다. 비록 내가 만든 영화로 초청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상상만 하던 그 광경 속에 내가 실제로 존재하게 되는 경험은 내 인생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아마 그 영화를 담당하게 된 과정에서 만난 모든 회사와 업계 동료들에게 평생 감사한 마음을 지니게 될 것 같다.
4. 내 이름을 건 책 출판해보기
올해 출시한 전자책(잘 팔리진 않았다)과 브런치 북(가장 많은 조회수를 획득한 글은 6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으로 이 꿈을 버킷 리스트에서 동그라미 쳐두었다. 간단히 해결해버린 숙제처럼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내 꿈은 진행 중이고, 완료 및 삭제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노력할 꿈으로 내게 남을 것이다.
10. 영화 기획, 마케팅 일해보기
11. 영화 잡지사 인터뷰받아보기
24. 화제가 되는 마케팅 활동해보기
영화일을 하면서 어렸을 때 꿈꿨던 참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간절히 원했던 일들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다. 더없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지나간 시간들에 미련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하나씩 꿈을 이뤄갈수록 기쁨과 동시에, 내 꿈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허무함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나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낼 수 있는 준비와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요즘 참 많이 실감하고 있다.
21. 강연해보기
영화 비니지스, 마케팅 직무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8월부터 월 1회 온라인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강연해보기'라는 꿈이 적혀있었다는 것을 새까맣게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 이 사진을 다시 꺼내보고 새삼 놀랐다. 나는 최근 또 하나의 꿈을 감사히도 이뤘던 것이다. 강연을 한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최선을 다해 내가 배워낸 것들을,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함께 공유하며 공동의 발전을 이뤄낸다는 것. 시니어가 갖추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철학이라는 점에서도 현재의 나를 잘 반영해주는 키워드이다.
22. 내 손으로 내 집 마련하기.
부모님 론과 대출 없이 마련한 전셋집. 나는 매우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명의상 '내'집은 아니기에 세모 표시.
27. 영국에서 '빌리엘리어트' 뮤지컬 보기.
빌리엘리어트는 내 청춘을 대변하는 NO.1 인생영화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 영화를 돌려보며 에너지를 얻곤 했었다. 그 영화가 뮤지컬화 된 이후 본고장인 영국에서 꼭 관람하고 싶던 와중, 첫 직장에서 영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바쁜 출장 일정으로 아쉽게도 틈은 나지 않았고 한국으로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사업부 전무님께서 며칠 휴가를 줄 테니 보고 싶던 뮤지컬을 보고 돌아오라고 하셨다.(지금 생각해도 이건 감동 오브 감동...) 그 소식을 들은 현지 파트너사는 나에게 무려 빌리엘리어트 뮤지컬 로얄석을 선물해줬다!(나에게 영국인들은 아직까지 천사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렇게 나는 결국 그 뮤지컬을 영국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서, 감격에 겨워하며 볼 수 있었다.
31. 많은 사람들의 꿈을 엮어 책, 다큐멘터리 만들기.
현재 연재하고 있는 '10년째 출근 중'이라는 브런치 매거진 역시 이러한 취지에서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소개해주는 또 다른 이들을 만나는 경험이 나 역시 큰 배움이자 즐거움이다
38.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따기
올해 3분기는 해양 다이빙에 정말 심취했다. 스쿠버 대신, 내 숨을 컨트롤 해 다양한 해양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프리 다이빙' AIDA LV2 과정을 시작했다. 자격증은 아직 따지 못해 연습 중이고, 이번 시즌엔 해양 수중 17m 개인 기록으로 시즌을 마쳤다. 겨울 내 인도어 연습을 충분히 해, 내년 여름 해양 기록들을 지속 갱신하는 것을 작은 목표로 삼을 예정이다.
30. 사회에 긍정적 에너지를 줄 수 있는 회사 세우기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생각의 씨앗을 틔우는 중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 리스트를 보는 경험이 매우 특별하고 소중하다. 지나간 시간들이 무려 15년임에도, 아주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보다 많은 꿈을 이뤄낸 내가 대견하기도 했다.
몇 개의 꿈을 이뤘다는 생각에 후련해지기도 했지만,
이제 나는 또 어떤 새로운 목표와 꿈으로 인생을 채워갈 수 있을까 고민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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