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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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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pr 10. 2022

(단편소설) 포터

아빠는 포터였다. 포터도 아빠였다. 포터는 아빠의 생명이고 구체적 삶이었다. 작은 이 트럭 한 대가 아빠의 전부였다. 포터 엔진이 점화돼야 아빠의 하루 심장도 뛰었다.


나는 글 쓰겠다고 밤을 꼴딱 새운 날쯤에야 아빠의 하루를 봤다. 아빠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리곤 대강 세수를 한 뒤 작업복을 입고 포터로 갔다. 그런 날이면 나는 아빠와 달리 아무 생산 능력도 없는 사회 잉여가 된 것 같아 미안했다. 늘 마음 한 켠에 그런 무거움이 있었는데 이른 아침 포터로 가는 아빠를 볼 때엔 그런 심정이 극에 달했다. 내 미안함은 해가 뜨기도 전에 어둠을 썰어나가는 아빠를 배웅하는 거로 대체됐다. 포터의 시동이 걸리고 나서야 아빠는 비로소 그날의 첫마디를 내뱉었다. 다녀올게. 또 안 잤냐. 밥은 먹고 자라. 어지간하면 밤에 좀 자고. 그런 말들이었다.


아빠는 누구나 타인의 인생에 들어가려거든 깜빡이를 켜는 게 예의라고 했다. 그것은 자식인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툭툭 내민 그런 몇 마디 말들이 나를 향한 작은 간섭이었다. 아빠는 포터 역시 그런 권리를 보장받아 마땅한 인격체로 대했다. 아빠는 늘 깜빡이 켜듯 포터의 의중부터 살폈다. 주행에 앞서 시동을 걸고 엔진 예열부터 했다. 그 시간 동안 아빠는 포터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꺼내 피웠다. 포터 엔진 소리를 유심히 듣는 아빠의 루틴이었다. 어디 이상은 없나. 오일은 아직 문제없겠지. 타이어는 천키로 정도 더 버틸 수 있겠네. 아빠는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괜스레 땅을 발로 비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터덜거리는 포터 엔진의 공회전과 함께 아빠가 피우는 담뱃불도 타올랐다. 무뚝뚝한 나와 아빠의 침묵 사이엔 그 소리가 유난히 컸다. 담뱃불이 꺼지고 포터 액셀이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아빠의 삶도 가동되었다. 회전목마처럼 매일 같은 차원을 빙빙 도는 아빠와 포터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아침 선잠에 들었다. 밤새 놀지 않고 그래도 글 몇 줄이라고 썼다고 합리화하면서 나는 꿈나라로 달아났다.


아빠는 포터로 공사판을 전전했다. 하청에 또 하청이 이어져 도대체 어느 회사에서 짓는지도 모르는 건설 현장 일을 아빠는 마땅히 했다. 세상은 그런 아빠를 공사장 잡부라고 간단히 불렀다. 내가 아는 아빠의 정확한 노동 명칭은 비계공이었다. 얼마간 나가던 공사 현장에서 비계가 철거되면 다음 날 아빠와 포터는 다른 현장으로 갔다. 아빠와 포터가 떠난 공사 현장에서는 비계도 자취를 감췄다. 비계는 높은 곳에서 노동하기 위한 임시 가설물로 그 효용이 다하면 존재 이유가 없었다. 어떤 면에선 흉물스럽기까지 했는데 나는 이것을 공사 현장에서 보지 않고 인터넷 검색으로 겨우 봤던 터라 유달리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비계가 철거되면 아빠의 노동은 흔적이 없었다. 흔적이 없으니 존재가 지워졌고 존재가 지워졌으니 애초 없던 것처럼 아무도 아빠의 비계를 기억하지 않았다. 나는 써지지 않는 글을 쓰겠다고 백지를 채우고 지우길 반복하며 아빠가 세웠다가 철거된 비계를 떠올렸다. 내가 영영 날려버린 글자들도 그렇게 세상에 없던 것처럼 저만치 밀려났다. 아빠는 비계공이었고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공책에 가설된 글자 비계를 세우는 또 다른 비계공이었다. 하루 일당 십이만 원을 위해 아빠는 그렇게 포터를 몰고 다녔다. 들어보면 나름의 고용 안정을 위한 방책이었다. 포터가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먼 지역까지 아침 일찍 갈 수 있다고 아빠는 매주 세차하며 말했다. 퇴근 후에 아빠는 포터를 극진히 손질하는 일을 반복했다. 여러 직업소개소 중 다음 날 달려 나갈 곳을 선정하는 것도 그때 이뤄졌다.


그런 아빠가 세상을 떠났다. 일 년에 우리나라 산업 현장에서 안전사고로 죽는 사람이 이천사백 명쯤 된다고 아빠의 장례 식장에서 처음 본 용역 직원이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걸 들었다. 우연히 들린 얘기치고는 말의 무게가 너무도 묵직해 나는 그날 밥 한술도 뜨지 못했다. 아빠의 죽음 원인은 공사 현장 추락이었다. 멀리서 타인이 보면 그리 유별난 사망도 아니라는 걸 훗날 알았지만 아빠와 생이별이 내게는 원인보다 결과가 더욱 다가오는 충격이었다. 폭발이면 굉음이 터져 시끄러웠을 테고 매몰이면 그나마도 구조가 벌어져 잡음이 일었을 터였다. 그러나 아빠 앞에 두 글자로 간단하게 정의된 ‘추락’은 그야말로 이천사백여명 분의 일이자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세상이 그렇게 정리했으므로 세상에 별다를 것 없는 내 존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괜스레 땅을 발로 비볐다. 아빠는 그렇게 땅으로 갔다. 세상 높은 공중에서 땅 한번 편히 밟지 못하고 일만하다가 땅으로 갔다. 땅 위로 나도 모르게 몇 방울의 눈물이 떨어졌다.


얼마 후 오백만원이 낯선 회사 이름으로 내 통장에 찍혔다. 말로만 작가지망생이지 사실상 무직에 가까운 내겐 큰돈이었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백만원 안팎의 돈을 받아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 한 번에 이런 금액을 받은 적이 없었다. 돈은 묘했다. 정확히는 숫자가 마음을 압도했다. 통장에 오백만원이라는 숫자가 찍힌 걸 본 순간 나는 당분간 돈 걱정 없이 글만 쓸 수 있겠다는 사치스러운 생각을 하고 말았다. 애석했다. 그렇지만 계산해보면 적당히 십 여개월은 생활비로 써도 손색없는 금액이었다. 숫자를 보며 온갖 추측과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려 산통을 깼다. 걸려온 낯선 목소리는 오백만원이 위로금이라고 설명했다. ‘비계공인 아빠가 비계를 설치할 때 지켜야 할 안전을 어기고 엉성하게 설치했으므로 이것은 일정 수준 귀책사유가 있지만 최대한 넣은 금액’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의 말은 장황했고 어조는 건조했다. 그러나 핵심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계적이었다. 그걸 듣는 나 또한 무미건조해져 통화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나는 주로 들었다. 결과적으로 아빠가 받은 십이만 원의 일당 안에는 그런 책임까지 들어있었다. 아빠가 그걸 어겼지만 사정을 봐준 것이므로 오백만원은 고마워해야 하는 금액이라고 휴대폰 목소리는 말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한 아빠의 안전 책임은 십이만 원에서 얼마를 차지하는 것인지 나는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아빠는 떠났고 명함 한 장 세상에 내보일 수 없는 내 처지에 질문은 사치였다. 빤한 답을 듣고 싶진 않았다. 논쟁은 격이 맞을 때나 가능하다는 일종의 조소도 섞였다.


타인의 인생에 들어갈 땐 깜빡이를 켜고 들어가야 한다던 아빠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전화를 건 낯선 이도 책임질 입장은 아닌 게 분명해 보였다.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맨 아래에서 고작 바로 그 위여 봤자 상황은 빤했다. 갑은 이미 저 위에 있고 을에서 병으로 정으로 이어지는 권한 없는 이들의 쟁투전이라면 사양하고 싶었다. 오히려 포터에게도 매일 새벽 깜빡이 켜듯 살금살금 다가가던 아빠의 모습은 내 기억에 더욱 선명해졌다. 그러나 현장의 비계공으로 일하는 아빠의 모습은 내 머리에 없었다. 없는 기억으로 상황을 유추해 책임자도 아닌 낯선 이에게 물어 따질 의욕도 내겐 전무했다.


그날 이후 아빠의 포터는 집 앞에 섰다.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왔다. 포터 엔진은 아빠의 심장처럼 멈춘 지 오래였다. 엊그제엔 포터가 함박눈을 고스란히 맞았다. 눈발을 꿰어 이불처럼 덮고 잠든 포터 사이로 헤드라이트만 겨우 보였다. 헤드라이트는 코뚜레 걸린 소가 배고픈 나머지 여물을 달라며 깜빡이는 눈처럼 도드라졌다. 시동을 걸어야 한다. 시동을 걸어서 엔진을 돌려야 한다. 시동을 걸어 엔진을 돌리고 히터로 창을 데워야한다. 그래야 헤드라이트가 눈을 켜듯 세상을 본다. 그런 환청이 들렸다. 눈을 포터 헤드라이트에서 떼기 어려웠다. 포터 헤드라이트는 매일 새벽 어스름에 아빠의 눈으로 세상을 비췄다. 그래서 나는 끝내 포터 시동을 걸지 않았다. 포터 엔진을 돌리면 겨우 잠든 아빠를 억지로 깨우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새벽 4시는 아직 멀었다. 나는 차라리 아빠가 쉬게 된 지금이 잘됐다는 생각으로 환청을 떨쳐냈다. 눈은 계속 내렸다. 얼마 뒤 포터 헤드라이트에도 눈이 덮였다. 포터는 그제야 눈 덮인 세상과 어울려 한 몸이 되었다. 포터는 땅에 밀착했다.


겨울이 지나서야 나는 포터 시동을 걸었다. 아빠가 잠든 바닷가에 가기 위해서였다. 아빠의 첫 제삿날 나는 버스 대신 아빠의 포터를 몰기로 했다. 아빠 포터 왔어. 그렇게 아끼던 포터랑 왔어. 포터는 아빠의 말을 들어줬지. 발도 되어줬어. 그래도 그날 포터가 사고 현장까지 안내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매일 덜커덩거렸으니 그날만큼은 쉬겠다고 움직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나는 그런 얘기들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아빠한테 하기로 했다. 손때 가득한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걸자 포터는 예전처럼 덜컹거렸다. 엔진은 겨우내 쌓인 때를 내부에서 닦는 듯했다. 시동 소리는 생각보다 더 컸다. 바퀴가 아스팔트를 밀어내자 비로소 나도 겨우내 움츠러들었다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서해로 가는 길은 날랬다. 뻥 뚫린 길은 내 상황과 안 어울리게 시원했고 하늘은 맑았다. 드문드문 옆으로 나타나는 바닷가를 따라 낚시꾼들이 시간을 낚았다.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내달렸다. 해안가 낚시꾼들은 낚싯대를 대강 던져두고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들 뒷모습으로 바람이 일렁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와 낚시를 갔던 날이 떠올랐다. 아빠는 낚시꾼들이 손맛이라고 하는 그 느낌이 사실은 낚시를 계속하기 위한 핑계며 결국은 숨을 쉬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내 나이는 중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였다. 난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가 수평선을 보며 크게 심호흡했던 것은 훗날 기억했다. 그때 우린 피라미 몇 마리나 겨우 잡았을라나. 생각이 짧아 나는 정작 수많은 낚시꾼들의 뒷모습은 봤지만 아빠의 뒷모습은 보지 못했다. 사실은 아빠가 낚시를 좋아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창밖을 흘끔거리던 순간 눈앞에 승용차 한 대가 비상 깜빡이를 켰다. 급격히 속도를 줄인 후였다. 하마터면 그 차를 포터로 들이박을 뻔했다. 나는 온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았다. 포터도 제 힘을 전부 분출해 사고를 막았다. 급정거한 포터 운전석에서 나는 진땀을 흘렸다. 브레이크를 눌러 밟은 발목이 얼얼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 마침 정갈하게 접힌 쪽지가 내 발목에 있는 걸 봤다. 시동 걸 때 보지 못했고 그 전에 포터에서 아빠의 유품을 정리할 때도 보지 못한 쪽지였다. 급정거 순간 운전석 바로 아래 있던 것이 떠밀려온 게 분명했다.


쪽지에는 은희경이란 이름과 함께 인천 강화군으로 시작하는 낯선 번지수가 적혀있었다. 휘갈겨 쓰지 않고 또박또박 쓴 글씨체만 봐도 이것은 아빠의 필체가 분명했다. 아빠는 이따금 내가 쓴 글을 보여주겠다고 공책을 주면 “넌 글씨체가 이게 뭐니”라고 반문했다. 뭐든 반듯한 걸 좋아하는 성격답게 아빠는 글씨체부터 지적했다. 아빠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운 뒤 영수증에 서명할 때도 이름 석 자를 정성껏 썼다. 글씨는 영혼을 내보이고 영혼이 투영돼 나간 글씨는 고스란히 눈으로 반사되어 쓴 사람의 심리에 되돌아온다. 아빠는 이렇게 강조했다. 글씨를 깨끗하게 쓰기 위해 노력해야 영혼이 반듯해지고 그렇게 반듯하게 나간 글씨가 다시 인식되어 정갈한 심리 상태를 이룬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했다. 이것이 매번 아빠가 글씨를 똑바로 정성껏 써야한다고 강조한 이유였다. 몸에서 빠져나가 언어를 이루는 것들은 아빠에게 그런 거였다. 말수 적고 어쩌다가 글씨체라도 내보여야 할 때면 반듯하게 가다듬던 사람이었다. 그렇긴 해도 아빠가 글씨체 외에 내가 쓴 초고를 제대로 본 뒤에 평가한 적은 없다. 은희경이란 사람과 그 사람 주소로 추정되는 번지수가 적힌 쪽지 앞에서 이런 생각들이 물밀듯 밀려왔다. 아빠는 이런 걸 왜 썼지. 왜 차에다가 두었지. 해안도로를 따라 잇대어 있는 낚시꾼들의 뒷모습은 여전히 멍했다.


“계신가요?”


강화도에서도 제일 안쪽에 있는 집은 덩그런하단 표현이 적절했다. 쪽지만큼 뜬금없는 곳에 있었다. 집 동쪽으론 밭이 가지런했고 서쪽으론 바다가 펼쳐져있었다. 오래된 단독 주택엔 은희경이란 팻말이 내가 정확히 찾아왔음을 확인해줬다.


“누구시죠?”


얼마 뒤 중년 여성이 문을 열었다. 백발을 길게 길러 쪽진 머리를 했지만 얼굴은 그 정도까지 나이 들어 보이진 않았다. 기품 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동그랗고 큰 눈을 깜빡이면서 소녀 같은 느낌마저 풍겼다. 군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날씬했다. 등이 살짝 굽은 것에 대입해 보면 차라리 말랐다는 게 어울릴 정도로 가녀렸다.


“네. 저는 박이수 씨 아들 박연성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저희 아버지 차에서 은희경 씨 이름과 이곳 주소가 적힌 쪽지가 나왔는데요. 제가 여차저차 사정이 있어서 와봤습니다. 혹시 은희경 씨인가요? 저희 아버지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은희경으로 추정되는 이가 순간적으로 입을 앙다무는 게 보였다. 큰 눈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내비쳤다. 내 앞으로 문이 열린 것도 아니고 닫힌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황이 얼마간 지속됐다.


“그러시군요. 잘 찾아오신 것 맞아요. 제가 은희경인 것도 맞고요. 일단 들어오시죠.”


침묵이 깨지자 문이 활짝 열렸다. 나는 은희경을 따랐다. 마당에선 큰 개가 나를 쳐다봤지만 짖지는 않았다. 은희경의 집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더 오래된 느낌이 났다. 나무로 정돈된 마루 앞에는 방금 신고 나온 신발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단출했다. 밥을 짓고 있었는지 마루 한쪽에 있는 작은 밥통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왔다. 그 옆으로 있는 작은방 문은 닫혀있었다.


“아드님이라고 하셨죠? 이걸 제가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하는지. 일단 찾아오신 걸 보니 그 친구가 멀리 떠난 모양이군요. 그게 아니라면.”


은희경은 말끝을 흐렸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얘기가 될 것이란 눈빛도 내뿜었다. 나는 은희경에게 조목조목 설명했다. 아빠가 비계공 일을 하다가 다쳐 세상을 떠나고 오늘 아침 쪽지에서 주소를 발견하기까지 이야기를 간추렸다. 은희경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기만 했다. 다만 아빠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그 결과 오백만만원이 입금되었다는 부분에서는 약간의 한숨도 쉬었다. 그렇게 은희경은 내 얘기를 듣고도 곧장 어떠한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표정은 다소간의 슬픔이 묻어있었지만 당장 내게 어떠한 질문을 하려는 의중이 없었다. 우리 사이엔 다시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아버지랑 어떤 관계셨나요? 쪽지 하나 달랑 가지고 찾아온 저와 마주앉으신 거 보면 인연이 깊으신 거 같은데요.”


내가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시군요. 그전에 혹시 실례지만 연성 군은 무슨 일을 하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게 무엇이든지요. 직업이든 직업이 아닌 그 무엇이든.”


뜻밖의 질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정적을 깨고 무언가 말을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고 그 침묵이 깨지자 기다렸다는 듯 양해를 구하고 준비된 말을 내뱉은 것 같았다.


“저는 사실 취업준비생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아직 이렇다 할 직업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말씀은 안하셔도 속으로 많이 속상해하셨겠죠. 그렇지만.”


내가 말을 쭈뼛거리자 은희경이 괜찮으니까 말해보라는 듯 눈을 껌뻑였다.


“네. 사실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뭐 거창한 건 아니고요. 그냥 소설을 조금씩 쓰고는 있는데 세상에 언제 어떻게 내보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는 그런 상태입니다. 머쓱하네요. 어찌 보면 집안 사정상 가당치 않을 수도 있고요.”


왜 솔직해졌는지 당시엔 몰랐다. 하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말을 마치자 은희경은 그제야 중요한 대답을 얻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밥통에선 밥이 다 지어졌는지 취사가 끝났다는 버튼 넘어가는 신호와 함께 뜸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명료하게 말하는 거나 조심스럽게 탐색하듯 제게 물어오는 것들에서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게다가 이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그 피가 어디 가진 않았네요.”


은희경은 알쏭달쏭한 말을 덧붙이고는 마루 구석에서 담뱃갑을 잡았다. 담뱃갑엔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렇지. 아빠도 저 담배를 피웠어.


“한 대 피워도 되죠?”


은희경의 말에 나는 끄덕였다. 뭔가 중요한 말이 나올 게 분명했으므로 담배가 절반 이상 타들어갈 때까지의 정적을 지켰다.


“연성 씨 아버지는 시인이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진정한 시인이 되기 위한 원석이었죠. 그것도 꽤나 충격적이었고 재능이 넘쳤어요. 한 번도 얘기를 안했나 보네요? 아마 그럴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은희경이 짧은 말을 내뱉곤 길게 담배를 빨아들여 호흡했다. 아버지가 시인이었다는 말은 내가 대기업에 합격했다는 것과 비견될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내 머릿속은 전혀 예상 못한 얘기에 복잡해졌다.


“우린 고향 부안에서 같은 중학교까지 마쳤어요. 나는 늘 시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고 이수는 이미 시인의 재능을 타고났지만 결단이 없으면 시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죠. 나는 대대로 동네 선생을 지낸 집안 딸이었어요. 하지만 이수는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이수는 정말 재능을 타고났다는 표현밖엔 달리 붙일 게 없었어요. 이건 제가 그런 게 아니라 학교 선생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교내 백일장은 물론이고 도내 상들은 전부 이수가 휩쓸었죠. 저는 사실 질투했어요. 늘 학교 성적도 좋고 선생님들 사랑을 독차지 하는 건 저였는데 이상하게 백일장에서 시로 상을 받는 건 성적도 볼품없고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도 없는 이수 차지였죠.”


아빠의 고향이 부안인 건 알았지만 나는 그곳을 아빠와 간 적이 없었다. 아빠와 낚시를 갔을 때 고향에 선유도라는 섬이 있는데 그곳이 물장구치기엔 최고였다는 말을 얼핏 들었을 뿐이었다. 아빠는 늘 노동에 시달렸고 곯아떨어지기 바빴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에 없었고 할머니는 내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 할머니 말로 우리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집을 나갔고 그때부터 아빠의 말수는 더욱 줄고 일은 더욱 늘었다. 그렇지만 할머니조차 아빠가 시를 썼다거나 글을 썼다거나 하는 얘기는 한 적이 없었다.


“이수가 그렇게 재능을 보일수록 그 애의 불행은 깊어졌나 봐요. 왜냐하면 이수네 어머니는 동네에서 화냥년이란 소릴 들었고 그 애 아버지는 일찍이 없었으니까요.”


화냥년이란 단어가 모질게 들렸다. 은희경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는 동네에서 부른 할머니를 지칭했다. 아버지 없이 화냥년 소릴 듣는 엄마 밑에서 아빠는 시에 무엇을 썼을까.


“이수는 주목받는 게 싫었던 거죠. 그 시골 마을에서 도내 백일장 상까지 받았다니깐 동네 어른들도 이수의 얼굴을 알았죠. 내 기억에 아직도 생생한 건 어느 날 하교 길이었어요. 이수가 공책 한 권을 들고는 자기네 엄마 가게 앞에 쭈그려 뭔가를 적고 있었죠. 그 가게는 동네 온갖 술주정뱅이들이 모이는 그렇고 그런 술집이었어요. 그리고 그 가게 안쪽으로 딸려 있는 작은 방이 이수네 집이었죠. 이수가 그때 공책을 벅벅 찢어서 홱 내던지고는 집으로 들어가는 걸 봤는데 나는 이미 이수한테 질투가 많던 시절이어서 그걸 몰래 주웠죠. 아직도 기억나는데 시 제목이 ‘화냥년’이었어요. 그 안에는 분노와 절망과 그러면서도 잡초가 피어나는 것을 형상화하는 내용이 있었어요. 결국 내가 그 시를 베껴서 중학교 졸업 할 때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죠. 물론 화냥년이란 제목과 단어를 그대로 쓰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그건 단어만 고쳤고요.”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훨씬 오래 전부터 없었을 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 할머니와 젊은 시절 할머니의 모습은 달라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아빠는 시 쓰기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는데 그것은 자신의 내보이고 싶지 않은 속살을 좁은 시골 동네에서 방방곡곡 내비치므로 불협화음이 되었다. 나는 지금 이런 비화를 아빠가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오늘 본 낯선 여자에게 듣고 있었다.


“전혀 모르고 있었나 보네요?”


조용히 있으니 은희경이 내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의아함이나 놀라움은 담겨있지 않았다. 어쩌면 그럴 것이었을 것이란 확신마저 풍겼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화냥년이란 시를 썼을 어린 아빠의 심정을 상상했다.


“네. 너무 뜻밖이어서요. 아버지는 제게 글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어요. 그저 가끔씩 제가 쓴 글을 보여줄 때면 글씨나 똑바로 쓰라고 몇 번 얘기한 게 전부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런 걸 보여줄 때도 저는 제 마음 속에 아버지가 뭘 알겠어? 따위의 심정이 있었어요. 그냥 아버지가 너무 성실히 일하시는 반면에 저는 돈도 되지 않는 글 따위나 붙잡고 있으니까. 그게 너무 뭔가 안 하는 것 같으니까. 제가 이런 것들은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이런 시그널 정도였습니다. 일종의 변명이었죠. 제가 아는 아버지는 중졸에 일평생 가난한 노동에 시달린 사람이었으니까요.”


정말이지 창피한 대꾸였다. 내가 아빠를 얕잡아봤음을 나도 말하면서 깨달았다. 그것은 비계공으로 부르든 공사장 잡부로 부르든 아무 상관없이 무신경하게 아빠를 지칭한 세상의 언어였다. 나는 세상의 언어로 집안에 있는 아빠를 지칭했으며 그것을 모른 척 살다가 덫에 걸렸다.


“이수가 내버린 그 화냥년 시를 제가 주워서 고쳐 썼다는 걸 얼마 뒤 이수가 알았어요. 그리곤 어느 날 저희 집 앞에 찾아와서는 이 공책 너 가져. 한 마디를 남겨두곤 가버렸어요. 공책엔 이수가 썼던 시들이 가득했어요. 나는 그 시들을 대학교 입학 때까지 읽고 또 읽으면서 부분부분 고쳤어요. 그리곤 대학에 가자마자 그 시들로 소위 말하는 등단을 했죠. 필명은 은이로 했어요. 제 성과 이수에 이름을 교묘히 합쳤죠. 소설을 쓰신다고 하셨죠? 그래도 아마 들어보셨을 거예요. 시인 은이.”


그랬다. 잊을만 하면 매년 시집을 발표한 은이란 시인이 내 머릿속에 있었다. 어느 평론가는 은이의 시를 두고 서정적이면서도 날카롭게 사물을 찌르는 맛이 있는 시라고 했다.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이며 결국은 폐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시구를 적어나가 끝내 그곳엔 당도한다고도 했던 어느 문예지의 평도 기억났다. 그런 시인 은이의 시는 결국 아빠와 자신의 합작품이라고 은희경은 내게 말하고 있는 거였다. 시인 은이의 얼굴이 실린 문예지 사진과 지금 은희경의 젊었을 적 모습이 상상되어 겹쳤다.


은희경 말로는 그때 아빠 공책에 있던 시들은 삼십 여 편에 달했다. 은희경은 그걸 읽고 또 읽고 숙지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했다. 그러나 샘솟은 시상과 비유마저 전부 바꾸기엔 시 전체가 망가져 불가능했다.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자 나중엔 그저 아빠가 쓴 시를 그대로 내놓기만 해도 은이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십년여가 지나 그 모든 시가 소진되었을 때 은희경은 자신의 시를 잃었다. 세상은 은희경을 시인 은이로 알았지만 은이가 은희경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은희경은 수소문해 아빠를 찾아 나섰다. 유명한 시인이면서 선생님 집안 가풍에 따라 저 자신도 학교 국어 선생님이 된 지 오래였다. 동창에 동창을 연결해 겨우 찾은 아빠는 은희경과 마주한 날 그렇고 그런 세상의 부품이 되어 있었다.


“밥은커녕 차라도 한잔 하자고 몇 번이고 졸랐습니다. 겨우 그렇게 마주앉았는데 이수는 별 말이 없더라고요. 시인 은이를 아느냐고 했더니 뉴스에서 몇 번 본 게 전부래요. 자신은 이미 혼자 키워야하는 아이도 있고 시 같은 건 잊은 지 오래라면서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건 손에 온갖 궂은살이 다 박혀있고 손톱에 때가 가득한 이수의 손이었어요. 나는 이렇게 흰 손을 유지하며 살았는데 이수는 가끔씩 내가 시 쓰겠다고 관찰자처럼 돌아다니며 보던 그런 세상 속 노동자의 손을 하고 있었어요.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으니까 이제 막 중학생이라고 하더라고요. 가끔 아이가 학교 백일장에서 상도 타고 하는데 그거 참 나 같은 놈한텐 질긴 인연 아니냐고 마지막으로 너털웃음을 짓던 게 생각나요. 저는 이미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살기로 마음먹은 터라 거리낌 없이 제 집 주소를 적어서 줬던 기억이 있어요. 솔직한 마음으론 이수가 혼자라는 마음에 저도 그땐 뭔가 다른 마음이 있지는 않았을까 싶어요. 어쨌든 그 쪽지를 지금 연성 군이 발견하고 찾아왔네요. 이수가 그러더라고요. 시인 은이는 이미 자기랑 관계가 없으니 나중에 우리 아들이 아빠 친구 중에는 누구 없냐고 하면 그때나 쪽지 좀 전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요. 그게 마지막 대화였어요.”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내가 이따금 쓴 글이라며 아빠한테 보여줬을 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밤새 글을 쓰다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포터 앞에 선 아빠를 봤을 때 아빠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빠는 날 뒷바라지해줄 수 없단 걸 알았을까. 아니면 내가 자신보다 더 천재성을 발휘해 모든 걸 뚫고 우뚝 설 수 있길 바랐을까. 그 시절과 달리 문학이 죽었다고 조소받는 세상에서 당신이 먼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던져버린 일에 아들이 매달렸으니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러면서도 아빠는 은희경의 쪽지를 자신의 시가 담긴 공책처럼 내던져버리지 않고 차에 뒀다. 아마도 아빠는 어디서 술을 진탕 먹고는 차에 올라타 잠을 자면서 쪽지를 흘렸을 테다. 그리곤 잊어버렸든가 잊어버린 척 살았겠지. 뜸들임도 끝났는지 마루 구석에 있는 밥통도 조용했다. 은희경도 더는 할 말이 없었는지 한 가치 남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내 질문을 기다리는 것 같아 나는 입을 열었다.


“아빠가 어렸을 때 집안이 그리도 어려웠나요? 아빠의 엄마 그러니까 제 할머니가 그렇게 눈총을 받으면서도 술집을 했다고 하니 고등학교 정도는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나는 질문을 하고도 하나마나 한 말을 꺼낸 것 같아 입이 썼다. 은희경은 마지막 남은 담배를 몇 번 피우지도 않고 꺼버렸다.


“그 가게도 얼마나 갔겠어요. 연성 군이 체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 좁은 동네에서 그렇게 눈총 받고 사는 거 쉬운 일 아니에요. 할머니 분이 대단하셨던 거죠. 아마도 아들 중학교까지는 마치고 끝내야겠단 생각이 연성 군 할머니께 있었나 봐요. 이수의 중학교 졸업식 이후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가게 문을 닫고 인천으로 올라간다고 갔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이수가 고등학교는 어디 들어갔을 줄 알았는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공장에 취직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연성 군 할머니는 건강이 안 좋아져서 드러누웠다고 하고요.”


대를 이은 지독한 가난은 아빠의 재능을 집어삼켰다. 아빠는 그런 재능 대신 다른 재능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면서 세상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은희경한테 얻은 답이었다. 시인으로 타고나 비계공으로 생을 마친 우리 아빠 박이수는 그런 덫에 걸린 이였다. 그 운명을 목격한 은희경은 은이로 집을 짓고 박이수의 귀환을 기다렸지만 끝내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박이수에 손엔 연필 대신 늘 까만 때가 가득했다. 박이수의 눈엔 하얀 공책 대신 잿빛 공사장이 비쳤다. 그의 아들 박연성이 대신해서 몸부림치고 있을 뿐이었다.


마당에 어둠이 짙게 깔렸다. 대문 밖으로 보이는 아빠의 포터가 이제 그만 갈 때가 됐으니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아빠는 포터를 몰고 공사판을 전전하는 사람이었지 은희경과 공동 필명을 쓴 시인 은이가 아니었다. 박이수의 마지막 모습은 비계공이었다. 그것은 현실이고 사실이었다. 아빠가 공사장을 다닐 수밖에 없던 건 이해하지만 그것이 시를 내던져버릴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았나. 아빠는 아예 뒤돌아갈 길목을 불 지른 것일까. 아빠에게 시는 그 정도의 사치도 될 수 없는 벗어던져야 할 굴레였을까. 이런 내 자문은 대답 없는 공허함이 되었다. 포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일어서려는 데 은희경이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렸다. 은희경은 닫혀있던 작은방에 들어가 공책 한 권을 꺼내왔다. 낡은 대학 노트였는데 겉장에 박이수라고 아빠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수한테 받은 공책은 사실 두 권이었어요. 한 권은 시인 은이가 세상에 썼고 한 권은 이렇게 남았어요. 손 댈 수 없었는데 이제 주인한테 가는 것 아닌가 싶네요. 일찍 돌려주고 싶었지만 저는 이수가 언젠간 돌아올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은희경이 말끝을 흐렸다.


“저는 시를 안 써요. 저는 소설을 쓰지 시는 몰라요.”


내가 은희경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가끔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튀곤 하는데 사실 완전히 엉뚱한 곳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시를 내던진 박이수를 은희경은 맘대로 은이로 박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포터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덜컹이는 시동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마지못해 받아든 공책은 조수석에 뒀다. 아빠가 탄 것처럼 느껴져야 했다. 어린 박이수가 앉아 조곤조곤 떠들면서 이런 시를 썼노라고 나한테 보여주는 모습이 상상되어야 했다. 사실은 그랬어야 했다. 정말로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생각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포터에 집중했다.


다시 아빠는 포터였다. 포터도 아빠였다. 포터는 아빠의 생명이고 구체적 삶이었다. 작은 이 트럭 한 대가 아빠의 전부였다. 아빠는 누구나 타인의 인생에 들어가려거든 깜빡이를 켜는 게 예의라고 했다. 그것은 자식인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툭툭 내건 몇 마디 말들이 나를 향한 작은 간섭이었다. 이제 내가 그럴 차례였다. 아빠가 내게 말하지 않은 인생에 내가 함부로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예의가 필요하다고 아빠는 늘 생각했고 나한테도 그렇게 대했다. 아빠는 포터 주인이었고 비계공이었다. 아빠는 시인 은이가 아니었다. 아빠는 비계공 박이수였다. 나는 공책에서 눈을 떼 액셀을 밟았다. 백미러로 대문까지 나와 배웅하는 은희경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액셀을 더욱 세게 밟았다. 포터가 굉음을 울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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