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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Dec 10. 2021

진지한 만남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33. 진지한 만남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윤진이요.”

 “김윤진 씨, 일찍 반납하시게요? 환불 규정은 알고 계시죠?”

 직원이 일을 처리하는 사이 소파에 앉아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이른 아침에 온 탓인지 기다리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아직 여름이라 그런지 새벽바람은 그리 쌀쌀하지 않았다.

 “셔틀버스는 언제 출발하나요?”

 “기사님께 연락해볼게요. 비행기 표는 몇 시로 하셨어요?”

 “일곱 시 오 분이요.”

 “잠시 앉아 계시면 바로 연락하고 말씀드릴게요.”

 한두 마디의 통화가 오가더니 도로로 향하는 사무실 문이 열리며 배바지를 입은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홍콩 배우나 낄 법한 둥근 선글라스를 쓴 그가 환한 표정의 직원과 눈을 맞추는 모습을 의아하게 지켜보던 나는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기사님?”

 “저기 보이는 노란색 버스에 타시면 됩니다.”

 온몸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버스 기사와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출입구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왠지 백미러를 통해 내가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가 좌회전을 하는 틈을 타 나는 조금 더 안쪽 자리로 이동했다. 그와의 시선이 차단되고 나자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고민에 빠진 나를 태우고 버스는 공항을 향해 달렸다. 낮은 층수의 건물들이 내 뒤로 사라졌다.

 “가끔은 한 사람씩도 태우고 다니죠.”

 침묵을 깨고 먼저 말을 건 사람은 운전석에 앉은 기사였다. 대답하기 싫었지만 무례하게 굴 수는 없었다. 좁은 백미러 틈으로 나를 보는 그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오늘이 그러네요.”

 “뭐라고요?”

 “오늘이 그런 날이라고요.”

 그가 웃으며 천천히 차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시큰둥한 대답 정도는 알아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랑곳하지 않고서 그가 다시 말을 걸었다.

 “여행은 즐거우셨어요?”

 의례적인 질문이었지만 가볍게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죠.”

 “여행에 안 좋은 게 어디 있어요. 다 지나면 추억인 거지.”

 “추억은 충분한데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추억이에요. 사진도 많이 찍으셨나? 정말 남는 건 사진뿐이거든. 나이가 들면 어릴 때 찍은 사진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지.”

 생각해보니 그녀와 찍은 사진이 없었다. 지난 며칠 간 우리는 단 한 번도 서로의 사진을 찍어준 적이 없었다. 폭포를 배경으로 그녀 혼자 셀카를 찍기는 했지만 우리가 함께 한 모습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기억할까. 시간이 지나 잊지는 않을까. 캡처라도 할까 싶어 메신저를 띄워 그녀의 프로필을 찾았다. 역시 그녀도 자기의 얼굴을 올려두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익숙한 풍경이었다. 꼬막집 창밖으로 보이는 돌담과 가로수, 그녀의 사진은 그것이었다.

 그녀의 이름을 꾹 누르자 차단 버튼이 떴다. 머뭇거리다 그 버튼을 눌렀다.

 주소록을 열고 그녀의 번호를 찾았다. 다시 그것을 누르자 삭제키가 떴다. 나는 그 버튼도 눌러 버렸다.

 버스가 멈췄다. 어느새 공항이었다.

 “좋은 여행 되세요.”

 그건 막 도착했을 때나 하는 인사가 아닌가. 아무튼 나도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오전의 바람은 선선했다. 캐리어를 끌고 길을 건넜다. 낯선 사람들이 두셋씩 짝을 지어 공항을 빠져나와 내가 오던 때처럼 셔틀버스가 있는 주차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미처 다가오는 택시를 알아채지 못하고 하마터면 차에 치일 뻔했다. 자기도 뒤늦게 알았던지 급정거를 한 택시 기사가 화가 난 듯 경적을 울렸다. 못 들은 척 놀란 마음을 달래며 그대로 공항 입구를 향해 걸었다.

 이 섬에서 나를 기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곳저곳을 보며 눈을 돌리는 관광객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섬 곳곳의 풍경은 낯설게 느껴졌다.

 아직 섬에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곳에 온 적도 없는데 벌써 이곳을 떠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갈 곳이 없는 사람의 마음으로 공항 앞 풍경을 눈에 담았다. 정말 이게 마지막일까.

 남은 시간을 이용해 카페에 들어갔다. 나처럼 일찍 떠나는 여행객 몇몇이 보였다. 함께 놀러 온 것처럼 보이는 여자애 셋이었다. 이십 대 초반이나 됐을까.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해 그들과 두 테이블을 떨어져 앉았다. 꽤 거리가 있었지만 카페에 사람이 없는 탓에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내 귀에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다.

 “돌아가서 걔한테 연락할 거야?”

 “연락 오면? 한번 생각해보고.”

 “네가 먼저 걸 생각은 없고?”

 “그럴 것까지는 없지.”

 “왜? 괜찮지 않았어? 나는 괜찮아 보이던데.”

 “이런 데서 만났는데 뭘 그렇게까지 해.”

 “야, 기다려 봐. 연락 오면 만나본다니까 그때 되면 말 바뀔 수도 있어.”

 “그치. 네가 말 바꾸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니.”

 “왜 나만 갖고 그래.”

 그들의 어림이 부러웠다. 그들의 여유와 나태함이 부러웠다. 그들에게는 낭비할 것이 있었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시간 됐다. 얼른 가자.”

 그들이 가는 게이트는 내가 탈 비행기의 방향과 같았다.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탑승교가 보이는 좌석에는 앉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윽고 스튜어디스가 애매한 시선 처리를 하며 우리가 탈 비행기의 탑승 시각을 알렸다. 그들이 먼저 들어가고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탑승교를 지나 비행기 안에 이르자 가운데 비상 탈출구 주변에 일렬로 앉은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표에 적힌 내 자리도 그 줄이었다.

 비워진 맨 안쪽의 창가가 내 자리였다. 세 사람은 한 줄로 예약하지 못한 듯 둘은 내 옆과 복도 방향에 앉고 나머지 하나는 오른쪽 복도 끝에 앉아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며 조그만 캐리어를 위에 올리고 앉은 둘을 힐끗 쳐다보았다. 눈치를 채고 한쪽으로 다리를 젖혀주는 두 사람의 무릎을 넘고 나서야 비로소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사람이 없는 비행기 안에 우리 넷만 앉아서 멀뚱히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라리 자리를 바꿔줄 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먼저 그 말을 꺼내는 건 이상해 보였다. 슬쩍 눈을 돌려 세 사람을 살폈지만 아무도 내게 말을 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내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일행이시면 자리를 바꿔드릴까요?”

 못 들은 척 잠시 뜸을 들이던 옆자리의 여자애가 친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신영아, 너 여기로 올래?”

 “나?”

 신영이라고 불린 여자애가 건너편 자리에서 내 눈치를 살폈다.

 “꼭 그리로 안 가도 되는데. 우리 어차피 많이 봤잖아? 나 너네랑 더 할 이야기 없어.”

 이쪽 편 복도에 앉은 친구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너무 징글징글하게 봤어. 돌아가거든 당분간 서로 연락하지 말자.”

 “감사해요. 쟤가 저희랑 앉기 싫대서 계속 여기에 계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니, 원래 이 자리시잖아요? 여기에 앉으셔도 좋아요. 아니구나, 혹시 저희가 불편해서 저리로 가시려는 거면.”

 “아니에요, 괜찮아요. 불편한 거 아니에요. 이 자리에 있을게요.”

 엉망이었다. 그렇게 아무 말이나 내뱉고 나니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이쪽 편 복도에 앉은 친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질문을 하려면 차라리 빨리 해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색한 그녀의 시선에 나도 질문을 기다리려다 모르는 척하고 다시 시선을 맞추었다가 허리를 바로 세우며 자세를 고쳤다가 슬그머니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혼자 오신 거예요?”

 드디어 꺼낸 질문은 별것도 아니었다.

 “네. 세 분이서 오신 거예요?”

 “저희는 셋이서 왔는데 생각보다 별로였어요. 기대했던 것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는데.”

 “제주도에 재미있는 게 뭐가 있어요? 저희는 진짜 별거 없었는데. 운전 좀 많이 하고, 커피만 주구장창 마시고.”

 “네가 운전을 많이 해서 그럴 거야. 우리는 네가 운전할 동안 경치 구경 좀 했지. 해가 지는 건 예쁘지 않았어?”

 “그치. 바닷가에서 해지는 모습을 봤는데 그건 괜찮았던 것 같아.”

 그들은 내게 물은 게 아니었다. 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잇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했다. 말이 빈틈을 이용해서 재빨리 나도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혼자 오면 제주도는 더 재미있어요.”

 “어떻게요?”

 옆에 앉은 그녀가 물었다. 가능한 여유로운 남자처럼 보이려 애를 쓰며 대답했다.

 “자유롭잖아요. 친구들이나 일정에 신경 쓰지 않고 여기저기 놀러 다닐 수도 있고, 마음 맞는 사람이 있으면 쉽게 시간을 맞춰 같이 놀 수도 있고요. 물론 마음 맞는 사람이 없다면 혼자 시간을 보내야겠지만 그것도 나름 여유로운 재미가 있죠.”

 “그런 분이 있었어요?”

 “나도 걔 괜찮았는데, 너네 때문에 못 놀았잖아.”

 “무슨 소리야 우리가 언제 그랬는데?”

 “애월에서 만난 애들 있잖아. 선경이 너한테 시간 맞으면 같이 놀자고 했던 남자애.”

 “걔는 별로던데.”

 “봐, 자기 눈에 별로니까 바로 까고 말이야. 나한테 한 번이라도 물어봤니.”

 “네 스타일 아니었잖아.”

 “맞아, 네 스타일 아니었어 미진아. 정신 차려.”

 “그냥 한 번 노는 건데 뭘 어때. 눈 높으면 재미 못 본다. 이번에도 우리 우정만 다지고 끝나버렸어.”

 아웅다웅하며 노는 꼴을 보고 있자니 재미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청춘을 낭비하는 것이야말로 그 시절에 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그때에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최선이라면 그 시절을 그렇게 흘려보낸 것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음에 올 때는 따로 오면 되죠. 혼자 와도 재미있을 거예요.”

 옆에 앉은 선경 씨가 대답을 재촉했다.

 “아까 대답 안 했잖아요.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마음 맞는 사람?”

 그녀의 눈에서 나는 기대를 읽었다. 막연한 선망이 눈 속에 숨어 있었다. 그녀의 감정이 보이는 게 갑자기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도망치듯 남기고 온 사람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달리 무슨 수가 있을까.

 “있었죠.”

 “어디서 만났어요? 아니다, 어차피 우리랑 비슷했겠죠? 해변이나 카페나 술집에서, 어디 관광지에서 말 걸고 그런 거니까.”

 아는 척하는 그녀가 귀여워 보였다.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공격이라도 하듯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진지하게 만난 건 아니었잖아요, 그렇죠?”

 “진지하게요?”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어차피 여기서 진지한 만남을 가질 생각은 없었던 거 아녜요. 한번 보고 말 사이니까 그렇게 좋은 인연처럼 기억되는 거 아니겠어요? 가벼운 만큼 편한 거니까.”

 “그럴 수도 있죠.”

 “우리도 그랬거든요. 놀자고 찾아오는 애들은 많은데 다들 한번 보고 잘 되면 뭐, 더, 아무튼 그런 목적으로 오는 애들이니까. 굳이 그런 애들을 여기까지 와서 만날 필요는 없잖아요.”

 “선경이가 조금 엄격해요. 이해해주세요.”

 분위기를 풀려는 듯 가운데 앉은 미진 씨가 끼어들었다. 건너편에 앉은 신영 씨가 슬쩍 화제를 돌리며 그녀의 말을 거들었다.

 “양아치를 만나고 싶으면 우리 동네로 와. 아파트 단지 옆에 카페 골목이 있는데 돈 있는 한량들만 거기 매일 모이나 봐. 낮이나 오후에 나오면 맨날 골목 끝에 둥그렇게 모여서 담배만 피우더라고.”

 “어느 동네나 있는 양아치를 굳이 제주도까지 와서 만날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

 어느덧 이야기는 이상한 곳으로 흘러 다시 그네들끼리의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너무 심하게 말한 걸 깨달은 선경 씨가 눈치를 살피며 사과했다.

 “기분을 나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좋은 기억으로 남으면 됐죠. 서로에게 피해 주지 말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듬성듬성 앉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채웠다. 공항을 떠나 김포로 돌아갈 때까지 우리 중 누구도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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