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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Oct 15. 2020

오늘도 서울에 삽니다

꼼수와 정석

살면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상하게 일이 많이 꼬였다.

특히 부동산 업자들과 연이 잘 맞지가 않았다.

깡통 전세, 깡통 집주인, 깡통 중개업자 등. 삶에서 갖가지 깡통들이 나를 괴롭혔다.


세입자들의 돈으로 건물을 세우고, 자금이 잘 융통이 되지 않으면 경매로 넘겨 나몰라라 하는 부동산 깡통 재벌의 건물에서 젊은 시절을 낭비했다. 

그 건물의 시장 가치가 수십억이고, 임대인은 여기 말고 강남에 건물이 몇 채라고 떠들어대는, 그래서 그 정도의 근저당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깡통 중개업자의 영업전략에 놀아났다.

결국은 그 근저당 때문에 집이 경매에 넘겨졌고, 경매에서는 두 번의 유찰 과정을 거치면서 그 집의 시세는 시장가의 60%에 해당되는 금액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돈도 시간도 잃었다.


아들 부부에게 집을 해주기 위해 집을 샀다는 임대인도 역시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이사하는 날, 보증금을 주고 받는 자리에서, 그것도 세입자들의 면전에서, 올려 받은 전세금만큼을 ‘꿀꺽했다며’ 돈을 받아 챙기는 임대인의 무례함도 버텼었다. 그는 위임장도 없이 아들의 주민증과 막도장 만으로 계약을 성사시키는 이상한 재주도 있는 사람이었다. 


친척 명의로 은행 융자를 받아 집을 사고, 그 집의 집주인 행세를 하던 것은 다른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알고 보면 대출을 낀 깡통 집의 가짜 주인은 불리한 경우에는 연락도 안되던 양아치 임대인이었고, 그 횡포에도 이래저래 맞서기도 해 봤다. 


정작 그들의 것도 아닌 곳들을 내 돈을 주고 빌려가며, 이상한 수모는 다 겪었다.


그뿐 아니었다. 

부동산과 연관된 사람들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서울이라는 부동산 내에서 곤혹스러운 경험도 했었다.

임신한 아내의 면전에서 고급 외제차를 흠집 냈다고 재수 없다고 말하는 인간의 모욕도 참아냈다.

또한 같은 곳에 살며, 같은 부류라고 여기고, 끼리끼리 무리 지어 다니며 자신들을 구별 짓던 사람들을 보며, 가끔은 서글픔도 삭여왔다. 


어찌어찌 노부모의 손을 빌어 내 집이 생겼지만, 당신도 결국 부모 찬스를 썼다는 댓글에 오히려 더 아프고 부끄러웠다. 

비난의 자격도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실거주 목적으로 구입한 집을 비아냥대며, ‘빚투’라며, ‘영끌’이라며 혀를 차는, 어이없는 상황에 혼자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어찌 보면, 실거주를 목적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샀지만, 사고 나서 가격이 올랐으니 ‘빚투’는 맞았다. 집에 관련된 사건과 문제들에 온 마음고생과 정성을 다했으니 그래서 영혼까지 끌어다 쓴 꼴이니 ‘영끌’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올라간 집 값은 누군가의 허영을 키웠고, 부동산의 가치가 올랐다 해도 다른 곳들은 더 올라서 갈 수도 없으니 곧 허탈해진다. 

꼼수와 정석

이상한 시장의 논리가 성행하던 곳이 바로 부동산이었고, 그 시장이 이상한 ‘업자’들과 그들의 상식을 키웠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상식과 태도마저도 배워나갔다.

제도권 주위에만 맴돌던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이 부동산 관련 장사였던 것이다. 

자기 돈 조금에 또는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이리저리 돈을 끌어다 시작할 수 있었던 게, 이 부동산 시장의 논리였고, 그게 실제로, 아주 이상하게도, 돈이 벌렸다. 

그리고 그게 그들의 삶을 유지하는 방식이 되었고 이 사회의 정석처럼 되어버렸다. 이제 정석과 꼼수가 헷갈린다.


그런데 매우 안타깝게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제도권의 주위가 아닌, 그 제도권 안에 들어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상대적으로 쉽게 쉽게 돈이 벌리는 이들에게 그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우습게 느껴질까. 그 노력의 가치를 가늠할 수는 있을까.


그들이 체득하고 영위하는 꼼수스런 정석은 이제 어쩌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세속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이야기한다.

“난 너희와 달라, 난 그렇게 살지 않아”

저런 오만한 명제는 그렇게 살 수도 없거나 그렇게 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 파기도 한다.


돈 없이는 살아도 남들한테 꿀리고는 못 산다며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젊은이들.

빚을 내서 주식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노력은 싫고, 갖고 싶은 것만 많은, 그래서 더 좌절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껍데기만 보고 갖은 게 없음을 한탄하는 이들.

그런 사람들과 그 생각들을 만든 것은 바로 우리이다.


실체 없는 빈껍데기들만 난무한 세상.

제 것도 아니면서 당당히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

어떤 것을 걸치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하고 다니는 것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사람들.

SNS의 찬사에 목메고, 그것을 위해서 있는 척만 하는 사람들.


그런 껍데기들의 천지에서, 깡통들이 득세하고 판치는 요즘,

우리는 “모두 병이 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오늘도 나는 그런 서울에 살고 있다.



<이성복, 그날>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 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은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 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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