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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Aug 12. 2020

보통의 아빠를 기원하며

아빠의 반성

정말로 슈퍼맨들이 돌아왔다.

엄마가 없어도 될 만큼 아이와 잘 소통을 하고 모든 놀이와 요리를 잘하는 TV 육아 프로그램의 아빠.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에 잘 맞게 잘 먹고 잘 노는 아이에게 머든지 잘하는 그 아빠는 슈퍼맨이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아이의 일상을 순간순간 글로 적어 책을 내는 정성스러운 아빠.

일하기도 육아를 하기도 바쁜데 시간을 쪼개 그 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그 아빠는 또 다른 슈퍼맨이다.


요즘엔 정말 여기저기에 좋은 아빠들 천지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또 화를 내고 말았다.

TV 프로그램과 책에는 아이를 배려하고 잘 챙겨주는 그렇게 좋은 아빠들이 많던데,

나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들인 것 같다.

그렇게 아이에게 화를 낸 날은 하루 종일 그냥 찝찝하고 무거운 마음뿐이다.

올해 10살이 된 큰 아들은 그 나이가 말해주듯 점점 말을 안 듣고 말대답하기가 일쑤다.

버릇없게 굴어서 훈계조로 이야기를 할 때면 아이는 항상 “아빠도 그렇게 하잖아”라고 쏘아붙인다.

어른에게 말버릇 없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다시 반말로 되받고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의 훈육 문제로 아내와 나는 항상 마찰이 있곤 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사랑으로 대하라고 늘 강조했지만, 나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은 훈육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늘 주장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훈육에 감정이 실려 내 행동이 격해지는 것에 대해서 아내는 항상 불만이었던 것이다. 

그럴 때면 그런 불화의 최초 원인제공자였던 큰 아들 녀석이 더 밉게 느껴졌다.


아이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첫째 아이와 4살 터울인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이다.

이전까지 부모의 오롯한 사랑을 차치해왔던 아이는 부쩍 시샘이 늘었고, 둘째 아이에게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럴수록 첫째 아이는 종전의 사랑을 갈구하며 더 삐뚤어지게 행동하는 게 느껴졌다. 

둘째가 자랄수록 이제 신경전은 다른 양상이 되었다. 

첫째에 이런저런 마음을 많이 써서 그런지 둘째 아이는 좀 수월했다.

엄마 아빠의 마음을 잘 살피고 눈치도 봐가며 행동하는 일종의 생존본능에 능했던 것 같다.

또 첫째와는 달리 글자나 숫자에 대한 습득도 빠른 편이라 첫째에 일그러진 기대를 채우며, 둘째를 가르치는 재미에 한껏 들뜨기도 했었다.

그런 둘째가 첫째의 삐뚤어진 행동을 따라 하거나, 둘이 서로 싸우는 일이 많아지면서

다시 그런 일의 최초 원인제공자였던 첫째에게 다시 화살이 돌아가게 되었다.

마치 기승전 첫째 아이의 탓이 되어버린 듯이


가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아이가 무섭게도 똑같이 닮아서 따라 할 때면, 나는 또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었다.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점점 내가 화를 내는 빈도도 늘었다

좀 더 자란 그 아이는 이제 나에게 같이 화를 내고 있다.

내가 왜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지.. 그리고 그 화를 내는 대상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아이는 알까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쩌면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인 것 같다

괜찮았던 나도 아이를 통해 보고, 아이의 행동에 투영되어 묻어나는 그릇된 나와 마주 보곤 한다.

아이를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어린 시절도 짐작해 보곤 한다.

때때로 때늦은 각성에 숨고 싶기도 하고, 나와는 다르다고 항변하며 아이 탓만 하기도 했다.

내가 부끄러울 때면, 아이에게 더 화를 내곤 했다.


이제 삼춘기를 지나 곧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내게서 이렇게 점점 더 멀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멀어져서는 안 된다라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언젠가 그 아이가 자라 곁의 나무 그늘이 더 이상 답답하지 않고 고맙게 느껴질 때 다시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아들과의 이런 복잡한 감정을 뒤로하고 나는 휴가를 내어 아버지를 뵙기 위해 대전행 기차에 올랐다.

얼마 전 당숙 어른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도 적잖이 놀라신 것 같았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아버지의 목소리 떨림에서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냥 따뜻한 밥이라도 한번 사드리고 싶었다.


“휴가 냈니?”

대전에 출장 올 일이 있는 김에 식사라도 같이 하려고 왔다는 내게, 아버지가 물어보신다.

출장이 아니란 건 아버지도 나도 이미 알고 있다.

부모님과 같이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나는 다시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올해 팔순이 되신 아버지와 이제 몇 번이나 출장을 핑계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생각하니 가슴한켠이 먹먹해졌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만 하다 돌아왔지만, 아버지와 나는 그렇게 서로를 말없이 위로하고 위로받았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나의 머릿속은 영화의 한 장면을 넘기듯 다시 아이에게로 흘러갔다.

아버지가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아이를 본다면,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아이를 인정한다면,

내가 부족한 걸 알고 그런 나와 똑바로 마주 본다면,

그때도 지금과 같이 복잡한 마음일까.


분만실에서 조마조마하며, 첫째가 태어날 때 갖었던 부디 건강하게만 태어나 다오라는 마음가짐.

그 아이를 안고 허리 아픈 것도 잊은 채로 동요를 따라 외우며 몇 시간씩 부르던 노력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갔다.

어찌어찌 어른은 되었지만, 아직 어른 노릇은 잼뱅이다.


맞벌이 부모의 일정에 맞추느라 1학년 때부터 큰 가방을 메고 이런저런 학원을 군소리 없이 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갑자기 마음이 짠 해진다.

그 아이는 요즘 같은 시기에도 초등학교에 긴급 보육을 매일 가면서도 학교의 과제를 충실히 하고 있었다.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만들어 준 종이 연필꽂이가 사무실 책상에 놓여있다.

아빠를 생각하며 작은 손으로 오밀조밀 만들었던 그 연필꽂이를 보며 되려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그런 아이만큼도 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TV 육아 프로그램에 나오는 각종 협찬을 몸에 두르게 해 줄 수 있는 부유한 자본주의 아빠도 아니다.

하나뿐인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며 생긴 여유를 좋은 아빠인냥 육아일기를 써서 책을 내는 그런 유별한 아빠도 못된다.


그저 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려 줄 수 있는 그런 아빠.

그런 보통의 날들이 쌓여가는 삶으로 아이를 채워줄 수 있는 아빠가 되길 희망한다.


이미지 출처 :

사진1 : http://mn.kbs.co.kr/news/view.do?ncd=3310667

사진2 : https://images.app.goo.gl/uARvwXSLfLSPZxGTA

사진5 : http://m.joongdo.co.kr/view.php?key=20180525010009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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