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
할아버지가 떠나고 수많은 해가 흘렀고, 저는 지금 다시 할아버지를 보고 있어요. 비록 제 곁에는 안 계시지만 할아버지가 주었던 애정과 따뜻한 위로, 따끔한 훈계, 일관된 가치들은 여전히 제 머릿속에 남아있으니 꼭 제 곁에 계신 것만 같아요. 날씨가 푹푹 찌는 여름이면 여름방학 때마다 박물관을 다니며 할아버지가 사준 햄버거를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고, 애워싸듯 추운 겨울이면 할아버지 안방에 뜨듯한 아랫목에 저를 앉히고 아주 오래된 컴퓨터를 만지며 게임했던 기억이 나요. 제 머릿속에 할아버지가 남아있듯이 할아버지에게도 제가 여러 모습으로 남아있겠지요. 할아버지가 떠나고 직접 보지 못하셨던 제 모습에는 이미 할아버지의 흔적이 많아요. 할아버지가 그 어린 나에게 보여주고 말해주었던 가치를 어른이 돼서 지금 다시 새기고 있죠. 그만큼 당신은 나에게 정말 큰 사람이었고,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어른이었어요. 그런 할아버지가 곁에 없다는 것이 여전히 저에게 아픈 사실이지만, 전에는 배일 것처럼 아프고 위험했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 참아지는 슬픔과 그리움이에요. 이렇게 할아버지를 내 삶에 흘러가게 두는 이 장면이 늘 오길 바랬어요. 평생 묻어둘 것만 같았지만 조금씩 할아버지의 편지를 발췌해나가면서 할 수 있었어요. 그리움을 애도하는 것은 와장창 깨진 유리조각을 줍는 것과 같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태우는 것과 같아요. 그렇게 제 머릿속, 마음속에 있던 할아버지의 저변의 모습 하나하나를 하늘에 보내요.
그 마음이 할아버지에게 닿길 바라며
2022.10.11 당신의 큰 손녀 드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힘은 한 번의 강력한 펀치 게임보다 꾸준하고 일관되게 흐르는 물줄기겠다. 한방의 펀치로는 생명이 꺼질 수는 있으나, 꾸준히 흐르는 물줄기는 생명을 소생케 한다. 아이에게 어른은 아마도 그런 존재여야 할 것이고, 나에게 할아버지는 어른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거창한 것 없이 묵묵히 보여주는 어른의 모습은 귀감이 되어 주인공의 삶을 변화케 한다. 나에게 할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좌절감 속에서도 날 이 세상에 큰 존재로 만들어주었다. 그것이 큰 칭찬과 빛나는 자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격려와 나를 믿어주는 믿음, 삶의 태도를 일깨워주었다. 그래서 어린 날에는 이해가 가지 않고,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적도 많았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비약해 보이고 지루해 보이던 물줄기가 나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을 휘청 휘청거릴 만한 바람을 맞을 때마다 느낀다.
생명이 탄생하고 떠나가는 것의 의미를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할아버지가 떠나간 것을 이제야 받아들이고 보내줄 수 있는 아픔을 맞이해서야 아이러니하게도 내 뱃속에 생명이 돋아나고 있다. 슬픔과 그리움이 가신 자리에 기쁨과 신비로움이 자리 잡았다. 한 사람이 가고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을 어떠한 정의로 다 함유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그가 나에게 그러했든 나도 그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