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과 배낭여행 다시 쓰기-아유타야
1일 차: 시간이 없다. 힘들게 돌자! 아유타야 한 바퀴
수코타이에서 출발한 버스는 방콕이 최종 목적지였다. 우리는 안내하는 분에게 아유타야를 간다고 얘기를 하고 중간에 식당에 들러 30밧짜리 국수도 먹으며, 아유타야로 향했다. 6시간 정도면 아유타야에 도착하니 체크인 후 오후 시간을 여유롭게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돌아볼 예정이었다. 구글 지도를 보내 아유타야 옆을 지나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이 어딘지 몰라 알아서 가겠지 하는 순간 버스는 아유타야 옆 도로로 계속 남쪽으로 이동하며 방콕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뭔가 잘 못됐음을 감지하고 안내하는 분에게 우리는 아유타야에 내리는데 왜 지나가냐고 따져 물었다. 대부분이 방콕으로 가는 사람들이라 깜빡했는지 우리를 고속도로 육교가 있는 곳에 내려주며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역시, 배낭여행의 묘미는 이런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온다고 억지로 생각하며 내려진 가방을 둘러매고 육교를 건너 반대편으로 향했다. 혼자 여행이었으면 짜증도 내고 할 텐데 아이들과 여행은 나의 짜증이 그대로 전달되기에 버스에게 같이 욕 한 번 날리고 잊자고 하니 흔쾌히 웃으며 포즈를 취해줬다. 아빠가 돼서 참 좋은 거 가르친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자유친(父子有親) 아닌가!
버스에서 버려져 택시를 타고 아유타야로 들어가야 한다. 일단 육교를 건너 대형마트에서 혼란한 상황도 정리할 겸 음료수 하나씩 마시며 쉬다가 택시를 불러 숙소로 향했다. 3시 체크인인데 고속도로에 버려지는 바람에 좀 늦게 체크인을 했다. 숙소가 아래쪽 해자에 붙어있는 외곽이라 오토바이 렌털샵이 근처에 없어 아이들은 숙소에 남겨주도 2km를 걷다가 뛰다가 하여 24시간 동안 350밧에 오토바이를 빌려 숙소로 돌아왔다. 일반적으로 아유타야에서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오는 경우가 많아 정류장이나 역 주변에 렌털샵이 많은데, 대부분이 한나절만 대여를 하기 때문에 24시간 이상 대여할 경우에는 중심부로 들어와서 렌트를 해야 한다.
이제까지 아유타야를 2번 방문했는데, 같이 간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돈되지 않은 도시의 풍경과 복잡하게 얽힌 관광객 때문인지 좋은 추억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 배낭여행에도 그냥 방콕으로 가려다가 둘째가 차 타는 것 힘들어해서 한 시간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생각에 일정에 넣었다. 1박 만을 하는 도시라 일정이 바쁘게 돌아갈 것 같아 체크인부터 오토바이 렌트, 가야 할 곳까지 꼼꼼하게 계획하고 체크했다. 하지만 뭐 계획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니 마음의 여유를 한껏 품고 아유타야를 방문했지만 이런 버스가 지나치는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숙소에 있는 아이들을 태우고 사원이 아닌 아유타야 외곽의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나도 처음 가는 곳이라 안전 운전을 하며 아유타야 북쪽의 관광지로 출발했다. 일정이 꼬여 출발하는데 벌써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미얀마의 지배를 받던 아유타야 왕국에서 미얀마를 물리치고 아유타야 왕국의 영토를 확장시킨 나레수안 대왕의 기념탑으로 갔다.
나레수안이 태국이 버마의 속국일 때 버마에 볼모로 잡혀간 적이 있는데, 그때 싸움닭을 키우며 외로움을 달래고 버마 사람들과 닭싸움 경기에서 이긴 후, 태국에 돌아와 버마를 물리치고 속국에서 벗어났다. 이후 국민들은 나레수안을 모실 때 닭 조형물도 같이 모신다고 한다. 여하튼 늦어서 밤이라 사진 찍기도 천천히 관람을 하기도 힘들었다. 시간의 문이라는 관광지는 주택가에 싸여있어 개들이 많았는데, 밤이 찾아와 간단히 사진 찍고 나오기로 했는데 사진을 찍는 동안 개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 사진만 간단히 찍고 천천히 오토바이를 탄 다음 출발하는데 개들이 달려들어 물릴 뻔했다. 역시 개들의 천국 아유타야답다. 알리에서 구매한 개 퇴치기가 크게 효과가 있는 건 아니었다. 목줄 없이 풀려있는 개들의 천국 아유타야에선 밤에 인적이 드문 곳을 혼자 다니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사람도 무섭지만 개가 더 무서운 도시 아유타야. 뒤에 탄 첫째는 달려드는 개로 인해 '개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시간의 문을 탈출하듯이 빠져나와 출발할 때 봤던 야시장으로 향했다. 왓 마하탓 앞쪽으로 매일 서는 야시장과 달리 왓 라차부라나 북쪽길에 있는 야시장은 간판엔 금토일에만 열린다고 되어 있는데, 구글맵엔 매일 열린다고 나온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확인은 불가능하다. 100여 미터 거리에 야시장이 열리고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리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오늘은 이곳에서 구매한 것을 다 먹고 갈 생각으로 먼저 자리를 잡고 저녁 식사 겸 야시장을 구경하며 다양한 먹거리와 이벤트 등을 보면서 야시장 관광을 했다. 야시장이 사원 사이에서 열려 담 너머 사원의 모습도 어우러진 풍경을 자아냈다.
야시장 투어를 겸해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에 돌아와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하며 내일 일정을 짜고 잠자리에 든다. 두 아들과 배낭여행 31일에서 2/3의 일정이 지난 하루다. 배낭여행을 하면 한 번씩 취하기도 하고 해야 되는데 20일 동안 취하지 못했다. 배낭여행이 이렇게 건강에 좋다.
2일 차: 아유타야 외곽 사원 후 기차 타고 방콕으로
20년 전 엔 젊었었나, 아니면 지금보다 날씨가 덜 더웠나? 물론 20년 전 젊었음은 확실하고 날씨도 그때보다 더 더워진 거 같다. 그땐 대낮만 피하면 돌아다닐 만했는데, 이젠 11:00-17:00까지는 다니기 힘들 정도로 덥다. 그래서 아유타야의 유적도 아침 일찍 오픈과 함께 둘러보기로 하고 조식 시간을 당겨 7:30에 일찍 먹고 왓 마하탓-와 야이 차이몽콜-왓 파난 초엥 워라위한(이름도 어렵다)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뒤 15밧 3등석 기차를 타고 방콕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오토바이를 몰아 아유타야 여행 2일 차를 출발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첫 목적지인 왓 마하탓으로 갔다. 오토바이 주차를 하고 입장권 두 매를 사서 입장했다. 8:00 오픈 시간에 맞춰 대여섯 명이 입장했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사원을 둘러보며 유명한 불상의 머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는 벌써 관리자가 상주하며 불상 머리보다 사람의 머리가 높게 나오게 찍는 것을 제지하고 있었다. 세 번째 아유타야 방문이지만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라 이번엔 기본적인 유적지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나머지는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사진을 찍고 유적 주변을 돌며 관람하는데 갑자기 나타난 다람쥐와 쁘랑 내부에서 탈출하지 못한 박쥐에 더 관심을 갖는 초등학생스러운 모습은 여전하다. 아침이라 사람이 없었지만 40분 정도 유적을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입구에 벌써 단체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침의 고요함을 느끼며 하루 한 유적, 쉬다가 일몰쯤에 또 한 유적 돌고 밤에는 유적이 바라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맥주 한 잔 기울이는 여행을 꿈꾸며 두 번째 유적으로 향했다. 두 번째 유적은 나름 복원이 잘 이루어진 아유타야 구 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했다. 이동하는데 벌써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입장료는 20밧이고 표를 끊어 입장하는데 9:00에 벌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태국인과 외국인이 섞여 관람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사원은 오토바이를 랜탈할 때 관광지도에 별표가 되어있어 방문해 보기로 했다. 두 번째 사원과 동선도 일치하고 아유타야 역에 표를 끊으러 가는 동선과도 일치하여 처음 방문하는 곳이었지만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이곳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복을 기원하는 사원으로 촛불을 밝혀 물에 띄우거나 금박을 불상에 붙이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원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사원은 공사 중이라 비계로 싸여 있어 아쉬웠다. 태국 현지인들이 주로 방문하는 사원을 보려거든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지금 여기' 태국인의 삶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아침 일찍 사원을 관람해서 11:00가 조금 넘은 시간에 세 번째 사원 관람을 마치고 나왔다.
사원 관람을 마치고 아유타야 역에 도착해 방콕 후알람퐁 중앙역으로 가는 15밧짜리 선풍기 기차를 예매하고 아이들은 숙소에 내려주고 짐을 싸고 기다리도록 시켰다. 이제 짐 싸는 것은 알아서 척척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나는 오토바이에 기름을 채우고 오토바이를 이른 시간에 반납했다. 원래는 오토바이 렌트 시간인 17:00까지 아유타야에 있을 예정이었으나, 한낮의 더위 속에서 유적을 관람하는 것은 무리일 듯하고 체크 아웃 후 짐을 맡길 곳도 여의치 않아 일정을 수정했다. 오토바이를 반납하고 2km를 걸어 숙소에 복귀하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땀에 절은 몸을 샤워로 정갈히 하고 체크 아웃 후 택시를 타고 아유타야역에 도착했다. 40분을 남겨 놓고 역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스무디 한 잔씩 사서 기차에 올랐다. 15밧 3등석 기차는 자리가 따로 없어 먼저 앉으면 된다. 다행히 큰 놈이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해 1시간 40분 동안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거나 졸거나 음악을 들으며 방콕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