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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서울은 연일 폭염.
1 년만의 귀국으로 설레어하는 후배에게 너무 기대 말고 서울의 폭염에 대비하라는 뜻으로 문자를 보냈더니,
ㅡ알아요. 하지만 여긴 보통 40도 이상이고요, 체감온도는 거의 5-60도 육박해요.
라는 답장이 왔다.
나는 속으로 거주지에서의 더위와 여행지의 더위는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는데 단순히 기온 차이로 안심할 일인가, 반문했다.
여행이라면 이동이 많기에 어찌해도 폭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가 자칫 탈이라도 나면 큰일 아닌가.
드디어 부부가 서울의 숙소에 짐을 풀었다. 남편 쪽은 서울이 처음인 외국인이라 도착 즉시 부인이 나서서 여기저기 구경시키고 있다고 했다.
서울 주민으로서 나도 하루쯤 동행해 주고 싶었다. (하루쯤이라 한 건 감기가 생각보다 오래가고 있어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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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뙤약볕에 바람 한 점 없는 거리에서도 두 부부는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며 나보다 활기차게 앞장섰다.
자각도 없이 순간에 더위 먹을까 봐 괜찮냐고 거듭 살폈지만 비실거리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ㅡ우리 부부는 서울로 피서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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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철이 되기 직전, 누군가가 물어왔다.
ㅡ 피서 계획은 세우셨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난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피서가 될지 모르는 채이다.
더위 그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만, 소위 피서지 에서 목격하게 되는 피서를 배반하는 기상천외의 현상과 부작용도 싫다.
계곡에서 흔히 보이는 "슬그머니" 물을 더럽히고 계곡을 더럽히는 행동들, 이해하자면 급하거나 처치 곤란한데 집 밖이라서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샴푸로 머리를 감고 비누질하며 빨래하고 주방세제로 그릇을 씻고... 이 모든 게 얼마나 위생적인가. 그러나 상류 하류 할 것 없이 피서객이 들어찬 계곡이라면 나로 인한 오물들이 물결 따라 다음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산이 싫으면 바다로 가면 되지 않을까?
그래봤자 계곡물이 도시의 하천에 합류하여 바다로 흘러가는 걸?
도시에 오염된 바다가 싫음 멀리 나가지?
멀리 뜬다는 거, 그럴 여유도 없지만 논리상 내 맘이 내키지 않는다.
피하고 또 피하고 뭘 그리 피하는데?
결국 되돌아올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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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을 모른다고 궁리조차 안 한 건 또 아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 가도 좋을 곳을 검색해 보기도 하고, 기차여행도 고려해 보았고, 서울의 북한산 계곡이라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같이 갈 만한 사람도 물색해 보았다. 어떻게든 익숙한 곳에서 예상되는 더위의 공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장 문제는 깨끗이 나을 기미가 안 보이는 여름 감기였다.( 감기란 임시 병명일 뿐, 동네 내과 의사 양반은 자신은 위장 전문의로서 내가 말하는 증세가 미묘하여 정확한 병명을 못 붙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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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받은 약에 의지해 조금 낫다 싶으면 가까운 도서관으로 갔다.
도보로 십여 분? 가로수도 변변찮은 길로...염천을 머리에 이고 걷기란 큰일이다. 두렵다면 두려운 시련이다.
그래도 무사히 도착만 하면 하루를 손안에 얻은 듯 책과 함께 그럴 수 없이 시원하다.
자료실 폐문 시간이 일러 6시에 퇴실해야 하는 게 아쉽지만 엉덩이가 버텨준다면 옆의 공부방으로 이동할 수가 있다. 내 엉덩이는 그만큼의 지구력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여름 해는 아직도 펄펄 끓고 눈치도 없이 뱃속에선 저녁을 요구한다. 이럴 때 딱 생각나는 매운 냉면. 마침 나는 근처의 냉면 맛집을 안다. 망설일 것 없이 그리로 간다. 작은 식당이라 우물쭈물 지체할 수도 없다.
거리의 해는 아직도 뜨겁다.
가방 안에 한두 권의 책이 있다면 고민하지 말고 조용한 카페의 문을 밀어라.
그렇게 하여, 나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플루베르가 피서철에 경험한 일들을 하나하나 재음미할 수 있었다.
시간을 찾아가면 우리가 전진하느라 잃어버린 것들이 거기 그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