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안전 문

에필로그

by 김소연



우리 집엔 덟 살이 된 암컷 고양이가 있다. 나의 첫 반려묘이다. 그녀가 아주 어린 고양이었을때 그녀는 현관 앞의 중문을 열기가 무섭게 현관 앞으로 돌진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순간의 찰나, 그녀는 밖에서 열린 현관 문틈으로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중문과 현관문이 동시에 열릴 것을 예상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그날은 그녀가 집 밖의 땅에 발을 내딛은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다. 그녀는 젊은 패기로 나의 아주 산만한 틈을 타 곧장 아파트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초보 집사였던 나는 이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좋은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 가슴이 요동쳤다. 아마 바깥세상을 처음 본 새끼 고양이인 그녀도 같은 심정이었을 거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내가 걱정 되었는지 아니면 처음 보는 바깥세상이 낯설었는지 한층 정도를 내려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불러도 오지 않는다는, 아니 쫓을 수록 더욱 더 멀어지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우리집 현관 입구엔 그녀가 좋아하는 간식이 놓졌다. 언제든 그녀가 다시 집 밖으로 내달린다 해도 그 간식을 보면 돌아올 다.



우리집 고양이 요미



요즘엔 산책하는 고양이들도 있다지만 우리나라의 도심에서 키우는 집고양이들은 바깥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집을 나간 고양이는 대부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 현관문을 열기 전에 중문이 닫혔는지 고양이가 중문 안쪽에 안전하게 있는지 확인 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중문을 열어놔도 현관으로 나오지 않았다. 교육이 잘된 건지, 그런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왜 그렇게 씁쓸한지 모르겠다. 아마도 열어둔 중문 앞에서 현관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꽤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기 때문일 거다.


이제 그녀는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한 고양이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고양이는 그 야생성을 조금씩 버리고 강아지처럼 변화하는 것 같다. 할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이 정해준대로 받아들이며 길들여지는 것이다. 가끔 현관문을 바라보는 그녀는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 같다. 그녀에게 바깥 세상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 아니던가.


애초에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는 집고양이가 되면 그 호기심은 독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집고양이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집마다 고양이를 기르지만 고양이 문을 따로 설치해 자유롭게 산책 하게 하는 나라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니라 도심의 상황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다른 대책이 없어서 라는 핑계를 대는 건 비단 고양이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자유롭게 어디든 갈수 있지만 갈수 없는 사람들과,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여러 제약이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 너무 많다. 나는 나의 안전을 위해 나를 가둬둘 보호자나 안전문도 없는데 왜 자유롭지 못할까.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길들여진 건 아닐까. 하지만 그건 구의 탓도 아니다. 아마 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책임감이 나 스스로를 집고양이처럼 길들여 놓은 것 같다. 그건 나 스스로의 선택일 테지만, 그런 내모습이 야생성을 잃은 집고양이처럼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단 내 모습만은 아닐 다. 가끔은 생고양이처럼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가끔 야생성을 버린 집고양이처럼 지치고 의문이 드는 일들을 견뎌내고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드물다고 생각 될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그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우리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의 집은 우리를 가둬두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곳이니 말이다.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건 아마 우리가 우리의 삶과 주변인을 잘 지켜내는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닐까.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좋은 사람이어서 그렇습니다."



keyword
이전 29화안개를 걷어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