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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힙스터 Aug 26. 2024

봄이 오면 또 만나

인생 첫 텃밭_12月




해는 점점 짧아지고 하늘에서 내리던 비는 눈으로 바뀌고 나를 감싸는 겉옷은 두꺼워져만 간다. 치열했던 풀과의 전쟁도 끝이 나고 땅은 점점 얼어가고 겨울이라는 긴 휴식기를 마주하게 된다. 밭에 가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잦던 발걸음이 아쉬워 겨울 풍경을 구경하려는 핑계, 겨울 캠핑을 즐기자는 온갖 이유를 만들며 할아버지의 밭과 집 근처를 서성였다.


일 년 동안 밭을 오가며 항상 미루던 운전을 배우게 되었는데 덕분에 이 겨울에 혼자서 텅 빈 밭을 드나들 수 있었다.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의 밭은 풀이 우거졌던 여름을 떠올리긴 쉽지 않았다. 마치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마음속에만 담겨있는 시간들 같이 느껴졌다.


수확을 마치고 미처 뽑지 못한 들깨는 장식장에 놓인 여행 기념품처럼 틀밭에 자리하고 있었다. 뽑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까이 다가가 미세하게 남겨진 들깨향을 맡으려다 눈이 코로 들어왔다. 고소한 이 들깨향을 맘껏 맡게 될 그날이 참 멀게 느껴진다.   

 




나는 이 하얀 눈처럼 쌓인 공백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뿔뿔이 흩어진 사진들을 모으고 메모들을 모았다. 몇 년 전부터 한 해가 가기 전에 그해에 찍은 사진들을 골라 인화해 모아두고 있다. 올해의 사진들은 거의 텃밭 사진들이다. 열두 달 동안 이곳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 년 전 텃밭 가꾸기를 다짐했던 작년 12월, 그때와 같은 위치에 서서 밭을 바라본다. 이 땅을 열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밟으며, 나는 자연의 무한한 가능성과 위대함을 배웠고 매년 밭을 가꾸시던 할아버지와 동네 할머님들의 꾸준함에 감탄했다. 또, 지금의 계절, 겨울이란 휴식기마저도 절대 의미 없는 추위가 아님을 배웠다.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했다. 이 땅에서의 배움을 겨우내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 더욱 단단해진 나를 만들고 따뜻한 봄이 오면 그때 이 땅과 다시 만나기로.










지금까지 인생 첫 텃밭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골힙스터의 텃밭 가꾸기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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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instagram : @countryside.hipster
e-mail : countryside.hip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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