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남자’
한때 내 핸드폰에 저장된 남편의 카톡 이름이다. 짐작하겠지만 결과론적인 이름은 아니다. 기대가 담긴 이름 쪽에 가깝다. 사실 나는 여태껏 ‘멋지다’라는 형용사에 걸맞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주말의 명화’를 즐겨보던 사춘기 시절엔 영화 ‘왕과 나’의 주연배우 율 브리너에게 살짝 마음이 가긴 했지만 가슴이 두 방망이질 칠 정도는 아니었으니 ‘멋지다’에는 턱없는 함량 미달이었다. 이것은 내가 눈이 높다거나 ‘멋진 사람’ 부재 환경의 문제이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에너지 부족이라고 해 두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따라서 ‘오빠부대’의 열렬한 팬들이 전투적으로 연예인을 추종하는 모습은 나에겐 늘 생경하다.
남편 이름은 ‘영수’다. ‘국영수의 영수’라고 자기를 소개할 만큼 평범한 이름의 남편이 ‘멋진 남자’로 개명을 하게 된 것은 가톨릭 주관의 부부교육을 다녀온 후였다. 후속으로 하게 된 부부모임에서는 배우자를 소개할 때 상대의 사랑스러운 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소개하게 했다.
간질간질한 수식어에는 경기를 하는 나로서도 “오늘은 여기 한 짝, 저기 한 짝 벗어놓은 신발도 사랑스럽게 보이는 남편 , 멋진 남자입니다”라며 소개를 하게 되는 것이다. 배우자의 사랑스러운 점을 찾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살피다 보면 어느 순간 눈엣가시 같았던 것들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경지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야 결혼이 이루어지듯 사라졌던 콩깍지는 결혼생활의 어느 한순간에 불현듯 존재감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멋진 남자는 대외적 멘트였다.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반복해서 소개하다 보니 꽃이 된 남편 이름은 카톡 이름에까지 날아와 저장됐다. 핸드폰을 열 때마다 바탕화면에 남편의 카톡 이름 ‘멋진 남자’가 떴다.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이미지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뇌라는 과정을 거친 ‘멋진 남자’는 남편의 동의어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이런 기세를 몰아 3년 전에는 ‘성경 읽는 남자’로 카톡 이름을 바꾸었다. 본당에서 펼쳤던 성경통독 프로그램에 함께 하기 위한 바람이 담긴 이름이었다. 핸드폰을 열고 이름을 볼 때마다 염원하는 기운의 온도가 주~욱 올라갔다. 일종의 핸드폰 기도였다. 그렇게 개명된 ‘성경 읽는 남자’인 남편은 그 해 한 해 동안 대체로는 소처럼 부지런히, 틈틈이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때로는 경주하는 토끼처럼 며칠을 푹 자기도 하면서 ‘성경완독’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했다. 핸드폰을 열 때마다 몇 번이고 기도로 쏘아 올린 카톡 이름 ‘성경 읽는 남자’는 기도에 게으른 나까지도 멋진 여자로 만들어 줄 것 같았다.
작년 코로나 19로 집 콕 시간이 늘어나면서 남편의 카톡 이름은 또 바뀌었다. 이름도 성장하는 것이 분명한 것인지 이번 남편의 카톡 이름은 ‘기도하는 남자’였다. 이렇게 연달아 거룩한 이름으로 바꾸고 보니 연타를 날린 복서가 된 것처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는 사람이 된 거 같았다.
또다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은 교구에서 실시하는 신앙체험 공모전에 입상을 하게 되어서이다. 코로나 19라는 신앙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체험 글에서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했던 가족 기도를 언급했다. 가족 기도시간엔 어떤 예외도 두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내가 받은 신앙유산이 코로나 19 시기에 남편과의 기도시간을 더 단단히 이끌어준다는 내용이었다.
글이 녹음되어 유튜브에까지 올라가게 되자 여기저기서 인사를 받았다. 부부 가족 기도를 적극적으로 천명한 셈이 되었다. 남편은 상금으로 여기저기 밥 사기 분주했지만 나는 이번이 기회라 생각하고 남편 속에 자리한 거룩함의 씨앗에 물을 주기로 했다.
아침운동을 하는 남편과는 기도시간을 맞추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기도 몇 시에 할까?”라고 묻는 것이 나의 아침인사였는데 이것을 남편이 나에게 하는 인사로 바꾸고 싶었다. 기도시간을 묻는 사람에서 대답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희망사항을 대놓고 이야기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화살기도인 ‘카톡 이름 바꾸기’로 실행했다. 이렇게 해서 남편은 시나브로 기도하는 남자가 되어 가고 있다.
남편의 다음 카톡 이름도 생각 중이다. 이번에는 남편의 정체성에 딱 맞는 이름으로 바꾸려고 한다. 신혼시절 남편은 저녁밥을 먹고 나면 소파에 길게 누워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했다. 그땐 그 소박함의 진가를 알지 못했다. 지금도 안분지족의 삶을 살아가는 남편에게 더 이상 안성맞춤일 수 없는 이름 ‘바랄 게 없는 남자’로 명명하고 싶다. 이 이름엔 왠지 배우자인 나의 충분한 외조를 암시하는 것 같은 멋짐도 있다.
만족이라는 대단한 신앙 마인드를 갖고 있는 남편에겐 기도하는 남자도, 성경 읽는 남자도 모두 멋진 남자를 분모로 하고 있는 분자일 뿐이다.
남편의 첫 카톡 이름 ‘멋진 남자’, 그 시작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