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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Apr 09. 2024

안녕

너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 안녕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다 잠시 카페에 들렀다. 아이가 반가운 얼굴로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온다. 안녕달 작가의 ‘안녕’이라는 그림책이다. 딸도 나도 좋아하는 작가라 그녀의 책이라면 모두 읽었지만 유독 다시 읽기 힘들었던 책이기도 하다.

“아, 이 책 너무 슬픈데. 그래도 오랜만에 읽어보고 싶다.” 아이가 조심스레 첫 장을 넘겼다. 그림책에는 우리 주변에 소외받기 쉬운 존재들이 소시지 할아버지, 버려진 강아지, 폭탄 아이, 불꽃으로 표현되어 등장한다. 밖으로 나가기 두려워하는 이들은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통해 조금씩 세상과 연결된다. 서로 어떻게 마음을 열고 조금씩 다가가는지 글씨 대신 간결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평생 엄마와 살다 홀로 남은 소시지 할아버지의 시간은 멈춰 있다. 커다란 곰인형을 엄마 대신 소파에 두고 슬픔을 견딘다. 버려진 강아지를 지나치지 못하고 집으로 데리고 오지만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강아지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거리를 두고 멀리서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우연히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놀림받는 강아지를 발견한다. 마음의 문을 오래 닫았던 사람일수록 다른 이의 슬픔을 빠르게 알아 챈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같은 상처를 받은 강아지를 조용히 안아 준다.     


  할아버지는 모든 벽을 허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강아지를 향해 웃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매일을 살아간다. 하지만 삶은 유한하고 끝은 있기 마련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깨달은 강아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집에만 머물러 있던 할아버지와는 반대로. 길에서 만난 위태로워 보이는 폭탄 아이의 손을 잡고 친구가 되어 준다. 숲 속 깊은 곳에 몸을 숨긴 채 언제 타오를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인 불꽃의 손도 잡는다. 셋은 나란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할아버지가 떠난 소파에 나란히 누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곤히 잠든다.     


  죽고 나서도 강아지가 걱정되었던 할아버지는 남겨진 이들을 볼 수 있는 관측관에서 강아지를 지켜본다. 보기만 해도 위태롭고 외로워 보이는 존재들. 하지만 서로 마음을 나누며 앞으로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나갈 이들의 잠든 모습을 보며 비로소 안심한다. 그리고 진짜 이별을 한다. 사라진 이에 대한 추억을 잊지 않는 마음으로 안녕. 새로운 인연들에 대한 다정한 인사, 안녕. 이제는 걱정과 슬픔을 내려놓고, 너의 무사를 바라는 마음, 안녕.     


  좋은 이별, 아름다운 이별이라는게 있을까.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나갈 뿐이고 지나고 나서야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 아름다운 기억에 기대어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삶이 아닐까. 카페를 나와 딸과 함께 걷는데 마음이 벅차올랐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어 함께 나아가는 사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인사를 건네고 싶다. 나의 인생에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겹쳐준 고마운 이들에게 마음을 담아. 모두의 행복과 무사를 바라는 마음으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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