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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 스탕달

스탕달 신드롬부터 사실주의 소설 <적과 흑> 그리고 <연애론> 에세이까지

by 박소형 Feb 11. 2025

무더웠던 작년 여름 서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한여름에 눈 쌓인 봉우리를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스위스 융프라우요흐를 시작으로, 자유로움이 넘치는 남프랑스의 니스 해변가, 부자나라 모나코의 왕궁을 거쳐 책 속에서만 보던 유적지가 내 눈앞에 펼쳐지던 이탈리아의 로마까지, 무더웠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낯선 문화를 경험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 모든 경험을 눈 속에 담기 바빴지만 내면의 감동까지 이어져 떠나고 싶지 않았던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로마 안의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의 성베드로 대성당이다. 사람이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수많은 예술 작품 중에서도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눈물이 흘러나왔던 작품은 시스타나 예배당 벽면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과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다.     


      

나는 이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다. 무교인 내가 종교에 대한 경외심을 느낀 것도 아닐 테고 예술 작품에 대단한 심미안이 있는 편도 아니었다. 시스타나 예배당에 들어서자마자 가슴이 뛰면서 벅찬 감동에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 순간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을 받았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스탕달 신드롬이었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나 건축물, 자연 풍경 등을 감상하는 도중에 강렬한 감동을 느껴서 발생하는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스탕달 신드롬은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방문하여 이탈리아 화가인 귀도 레니의 작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감상하다가 무릎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황홀경에 빠진 경험에서 유래되었다. 스탕달은 이 경험을 <나폴리와 피렌체: 밀라노에서 레기오까지의 여행>에 기록하여 이후 비슷한 증상을 보이면 스탕달 증후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귀도 레니의 작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스탕달이 이렇게 민감한 감수성을 갖고 있어서였을까? 그는 여러 작품에서 뛰어난 심리묘사와 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여 사실주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스탕달은 그 시대를 반영한 소설만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스탕달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소설이란 길을 따라서
들고 다니는 거울이다.

- 스탕달- 


      

스탕달의 대표작 <적과 흑>은 당시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앙투안 베르테라는 신학생이 부유한 집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그 집안의 부인과 은밀한 관계를 갖다가 들켜서 쫓겨난다. 그는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 했지만 실패하자 성당에 있던 부인에게 총을 쏘았다. 라파르그라는 젊은이가 자신의 정부를 살해한 사건도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 이 두 사건이 <적과 흑>의 모티브가 되었다.      


     

<적과 흑>의 시대적 배경은 스탕달이 살고 있었던 시기인 1830년 7월 혁명 이후 7월 왕정이라는 부르주아 정권이 성립된 시대이다. 프랑스 대혁명을 시작으로 나폴레옹 시대를 거치면서 왕당파와 공화파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파로 나누어진 정치 상황에서 귀족, 부르주아, 사제, 평민 계급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잘 묘사되어 있다.          



사실 <적과 흑>의 진정한 매력은 시대를 초월한 연애소설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쥘리앵을 통해 성공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며 내면이 성숙되어 가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어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남녀 사이의 연애의 감정이 싹트면서 심리적으로 혹은 행동으로 표현하는 그 시절의 밀당 관계를 보고 있으면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아 흥미진진하다.          


 

스탕달은 자신의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연애론> 에세이도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여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남자를 교육하는 것은 여자이고 결혼은 스스로 선택하라 등 당시에는 파격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흥미로운 점은 연애의 고수로 남고 싶어 연애만 즐겼던 건지 스탕달은 결혼하지 않았다.           



스탕달 묘비명



백여 개의 필명을 갖고 있던 스탕달의 본명은 마리 앙리 벨 Marie-Henri Beyle이다. 1842년 그의 나이 59세에 파리의 거리에서 뇌졸중 발작으로 쓰러졌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여 다음날 안타깝게 사망하였다. 그가 생전에 준비해 놓은 묘비명이 실제 묘비명에도 그대로 적혀있다.    

 


Enrico Beyle Milanese
 visse scrisse amò
밀라노 사람 앙리 벨은
살았고, 글을 썼고, 사랑했다.


이탈리아 밀라노를 사랑한 프랑스인 스탕달은 현재 몽마르트 묘지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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