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희 Sep 15. 2023

낭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효율성만을 따지는 사람이 되었다.


 효율성

 1. 들인 노력과 얻은 결과의 비율이 높은 특성.



 처음 시골에서 서울로 왔을 땐, 너무나도 빠른 도시의 속도에 당황하곤 했다. 시골에서는 1시간은커녕 기다리다 오지 않으면 2시간, 3시간 후에 왔던 마을버스가 서울에서는 5분이면 오고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숨 막혀 했던 것도 잠시였다. 근래의 나는 그 누구보다 더 숨 막힌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늦으면 어때?’라는 생각으로 일상을 여유롭게 살던 나를 잃은 지 오래였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헤매지 않고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찾았고, 간단히 끼니를 때울 식당을 고를 때도 좋은 평을 받는 곳을 골랐다. 나의 손과 눈은 어딜 가든 항상 핸드폰과 함께했고 그렇게 나는 길가에 민들레 하나, 새들의 노랫소리 하나 보고 듣지 못하는 빡빡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유튜브 채널 ‘드로우앤드류’의 ‘AI 시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 영상을 보게 되었다. ‘AI를 통해 효율을 얻었으니, 사람들은 그렇게 얻은 시간으로 비효율적인 것에 투자해야 하지 않나’라는 말과 함께 그 예로 든 것 중 하나가 '낭만'이었다.


낭만

 1.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2.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


 우리는 빠른 성장을 위해 통제, 경쟁, 성취 이러한 경험에 몰입해 있다. 김상균 작가가 쓴 <초인류>에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이건 발견, 탐험, 판타지, 표현, 친교, 유머, 양육, 휴식, 소속 등 다른 유형의 경험을 맛보기 위해 길을 나서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당신이 가진 정신의 그릇은 더 넓고 단단해집니다.’

 불과 한세대만 올라가도 정말 먹고살기 힘들어서 퇴근하고 치킨 한 마리를 사가지고 집에 가는 게 행복인 시절이 있었다. 여전히 어려운 분들이 계시지만 과거에 비해 굶어 죽는 비율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윗세대보다는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건 아마 나만의 경험들을 만들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런 면에서 나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 앞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자유롭게’ 먹고살기 힘들다는 수식어가 붙었다고 생각한다.



 남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루는 한국에선,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기 어려운 것 같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사회의 시선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미디어가 일상화되면서 우리는 더더욱 자신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기보다는,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남들이 많이 하는 것들을 따라 하기 쉽다. 그렇게 점점 본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AI와 산업 발전을 통해 단축된 노동시간들로 예전에 비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더 많이 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바짝 쫓아오는 AI 시대 속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인간다움’ 즉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낭만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하다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18)’이다. 평소엔 현실성이 없는 것들을 선호하지 않아 CG가 들어간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포스터부터 CG 투성이었던 이 영화는 왠지 모를 이끌림에 보게 되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18)’를 보고 난 후 처음으로 영화 속 주인공 배우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주인공이었던 ‘샐리 호킨스’가 나온 다른 영화인 ‘내 사랑(2017)’, ‘블루 재스민(2013)’를 보며 설레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영화의 OST를 들으며 출근했는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도 주인공들과 물속에 잠겨 있는 것만 같았다. 좋은 의미로 불완전한 존재인 내가 잔잔한 물속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 기분이랄까.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에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니. 곧바로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제휴사를 찾기 위해 검색을 하였다.

 그런데 세상에 재개봉 마지막 상영 날이었다. 그것도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영화관에서. 이런 우연이 있나. 바로 그날의 약속을 취소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 이후 한참을 영화 속 OST를 들으며 행복했고 여전히 이 영화는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큰 위로가 되었다.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좀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니, 그 안에서의 많은 행복들을 찾을 수 있었다. ‘왜 살아야 할까?’,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나를 조바심 나게 만드는 질문들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덜게 되었다. 마음에 작은 공간이 이렇게 삶에 큰 기쁨을 주다니. 예술은 정말 경의롭고 사랑은 늘 신비롭다. 영화와 노래만으로 환상적임을 경험할 수 있는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과 영화의 OST인 ‘La javanaise’, ‘You’ll Never Know’, ‘The Shape of Water’등 수록곡들을 추천하고 싶다.



 언제부턴가 어떤 일을 할 때 항상 그것에 대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을 놓치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청춘의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죄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현실에 매여 효율만을 따지지 않고 소위 ‘쓸데없는 일’들을 하며 나만의 낭만을 찾아갈 것이다.


당신의 낭만은 무엇인가?



이전 03화 꼰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