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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반려동물, 가스라이팅, 그리고 상호성의 문제

by 민진성 mola mola

사랑이라는 이름의 위험

우리는 흔히 사랑을 넓게 인정하려 한다. 그러나 만약 조건 속에서 강제된 애착까지도 사랑이라 부른다면, 가스라이팅이나 스토킹조차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그건 명백히 기괴한 결론이다.



가스라이팅과 스토킹의 사례

가스라이팅에서 피해자가 보이는 애착은 조작된 의존이지 사랑이 아니다. 스토킹에서 집착을 “사랑”이라 말하는 건 가해자의 자기서사일 뿐이다. 두 관계 모두 상호성이 무너져 있기에, 결코 사랑이라 부를 수 없다.


반려동물 관계의 기묘한 유사성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은 선택권이 없고, 환경은 인간이 설계한다. 동물이 보이는 애착은 본능적 반응일 수 있지만, 그것을 완결된 상호 사랑이라 믿는 순간, 구조적으로는 가스라이팅이나 스토킹과 닮은 왜곡을 품게 된다.



사랑은 가능하지만, 완결은 아니다

인간이 반려동물을 사랑할 수 있다. 그 애정은 genuine(진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편향적이고 부분적인 사랑이다. 완결된 상호성이라 믿는 순간, 왜곡된 사랑까지 사랑이라 인정해야 하는 위험이 생긴다.

사랑은 가능하다. 하지만 왜곡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사랑의 진실성이 아니라, 그 사랑이 가진 불완전성과 기괴함을 직시하는 용기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사랑과 자기기만, 상호성과 왜곡을 구분할 수 있다.




#생각번호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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