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집착은 구분되어야 하고’ ‘사랑은 조건이 없어야 한다’ 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사랑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지속적인 것‘이어야 한다면 그 지속의 길이는 얼마나 되어야 할까? 그 지속의 길이가 생존기간 내내라고 한다면 사랑하고(또는 사랑받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개와 같이 살다 보면(1) 가끔 철학자가 될 때가 있다. 어떤 철학자는 사랑을 ’ 아낀다‘(2)라는 우리말로 정의했다. 여기서 ’ 아낀다 ‘라는 말의 뜻은 인색하게 쓸 거 안 쓰고 ’ 꼬불친다 ‘의 뜻이 아니고 소중하게 생각해 조심해 다룬다 정도가 타당할 것이다.
나는 개털이 행동에서 사람들이 표현하는 ‘사랑’이라고 구분 지을 만한 행동을 나누어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개털이에게는 (또는 개라는 짐승 전체가)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다는 결론과는 다르다.
만일 사랑을 “그 대상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전혀 개의치 않고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아프나, 건강하나, 죽을 때까지 변치 않고 (속으로도 딴생각하지 않고) 동일한 행동과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다면 개털이 에게는 그것이 구분 지어질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본능화 되어있었다.
(1) 개와 같이 살다 보면 : 개를 키운다는 표현은 잘못인 경우가 많다. 개는 기본적으로 1.5년 정도만 지나면 임신을 해도 무리가 없다. 즉 1.5년이면 다 큰다. 다 큰 개를 키운다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2) 아낀다 : 최진석. 2010.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소나무. pp.432~433. 여기서는 ‘색(嗇)’의 뜻을 해석하며 사랑한다(愛)와 절약한다(儉)이 함축된 것으로 설명했다.
개털아 고마워.
우리는 개털 이를 많이 예뻐하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개털이는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