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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라기 Jan 24. 2021

고민하지 않는 철새의 유전자

나도 유투버나 할걸  

‘개개비’라는 새를 아시는지 모르겠다. 처음 들어보신다면, 컴퓨터에서 새 폴더를 하나 만들어 보시라. 알집이 설치돼 있는 윈도우라면 폴더 이름이 뻐꾸기, 황조롱이, 직박구리, 개개비 등등으로 이어진다. 새 폴더가 새(짹짹)이름으로 나오지 않도록 설정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새 이름을 구경하는 것이 알집 프로그램을 이용할 때의 재미 중 하나라서 일부러 알아보지 않고 있다.

개개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철새다. 여름철새라는 것은 여름을 우리나라에서 지내고, 겨울이 되면 인도네시아처럼 더 따뜻한 나라로 가는 새들을 일컫는다. 반대로 러시아 같은 곳에서 살다가 혹독한 겨울이 오면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나 두루미는 겨울철새다. 고속도로 휴게소 들리듯이 왔다 가는 새들은 통과철새, 사시사철 아파트 근처에 머무는 참새 같은 녀석들은 텃새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점은 화성 개발을 운운하는 오늘날까지도 왜 어떤 새는 철새가 되는지, 이들이 계절을 날 곳을 찾는 기준은 무엇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루뭉술하긴 하지만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을 찾기 위해서’ 정도가 납득이 가는 이론 중 하나다. 이를테면 시베리아 근처에 사는 새들이라고 해도 강까지 얼어버리는 한겨울에는 아무래도 좀더 따뜻한 한반도로 내려오기 마련이다. 번식을 생각한다면 급격한 온도 변화를 견딜 수 없는 아기새를 위해서도 그렇다.

어쨌든 우리나라를 찾은 철새들의 둥지는 ‘임시 거처’인 셈인데, 이를 지키기 위해서도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남의 둥지를 빼앗아 자신의 알을 키우는 것으로 알려진 뻐꾸기도 여름철새에 속한다. 그리고 뻐꾸기가 자주 노리는 곳 중 하나가 앞서 말한 개개비의 둥지다. 물론 개개비도 이에 지지 않는다. 자신의 알과 비슷하게 둔갑한 뻐꾸기의 알을 찾아내 깨뜨리기도 하고, 몸집이 큰 뻐꾸기로부터 둥지를 지키기 위해 여럿이 함께  모여 덤비기도 한다.

하늘을 아름답게 비행하는 철새를 보면서 누군가는 그 자유로움이 부럽다는 말을 한다. 철새의 삶을 관찰해 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계절마다 많게는 수천 킬로미터를 비행해 번식지를 찾아야 하고, 둥지를 만들고 나서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알을 지켜내야 한다. 훌쩍 왔다가 내키는 대로 떠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유전자 안에 지구 자기장을 읽어내는 능력을 활용해서 늘 다녔던 길을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새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 보면 ‘고깃집 사장은 맨날 고기 먹어서 좋겠다’라든지 ‘프리랜서는 출퇴근 안하니까 좋겠다’수준의 부러움이기도 하다. 아마 다른 일에 종사하는 분들도 내가 비슷한 말을 하면 격렬하게 화를 내실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러움은 요즘처럼 뭐가 맞고 뭐가 틀린 지 잘 모르겠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부풀어서 ‘나도 유투버나 할까’라든지 ‘퇴사하고 편의점이나 하고 싶다’와 같은 생각으로 번지게 되기 마련이다.





남이 했을 때 멋있어 보이는 일들도 겉으로만 그랬을 뿐이고, 또 겉으로나마 멋있어 보이려면 매일 매일 지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는다. 무의미해 보이는 일들이 퍽 많이 모여야 비로소 그럴 듯한 뭔가가 된다는 원리도 자꾸 깜빡한다.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가 물 밑에서는 열심히 발장구를 치고 있다는 닳고 닳은 비유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지쳤을 때 그런 생각이 자주 드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비전이 없는 것 같고, 미래도 불안한 것 같고, 초고도의 과학 기술 때문에 따라잡힐 것 같은 두려움이 울렁여서 숨이 막힐 때 말이다. 십 년 전으로만 돌아간다면 빚을 내서라도 비트코인도 하고 땅도 사야겠다는 무의미한 다짐을 하기도 한다. 간혹 이걸 자신의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 세 살 때부터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치고 미분과 적분을 배우게 하고 그러나 보다. 하지만 철 따라 사는 새와 달리 사람은 너무 빨리 철들게 되면 삶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넘어지기 쉽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다른 길로 가 봤자 답이 없으니까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란 불가능하다. 지구가 자전하며 자기장을 만들어내고 철새는 그것을 따라 계절마다 움직이듯 우리도 매일을 움직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철새의 막막함을 떠올리면 위로가 된다. 날개를 펼친 채 아무것도 없는 칙칙한 하늘을 끝없이 헤쳐나갈 때, 얼마나 떠나왔는지, 앞으로는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낼 때도 철새는 단지 부모가 물려준 DNA속 정보만을 믿고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 경험은 변하지 않는 사실로 바뀌어 몸에 새겨질 것이다. 나 자신의 경험을 굳게 믿고 잡념을 없애면 무의식은 비로소 목적지를 알려준다는 말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라고, 나침반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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