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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은 스스로 존재한다

악플 일상화

by 휘루 김신영 Jul 12. 2023

<댓글이 달리는 순간, 댓글은 스스로 존재한다.>  


한국일보의 자료에 따르면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은 악플에 시도 때도 없이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악플 일상화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리는 정치인들>, 한국일보,  2020년 4월 2일 자에는 선거기간이 아니라도 무차별 공세를 펼치고 있어 백신 없는 악플 바이러스라고 명명하기도 하였다. 


특히 정치적 악플은 인신공격성 글과 거짓 주장을 온라인에서 수시로 올리면서 악플은 일상적으로 정치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댓글이 달리는 순간, 댓글은 스스로 존재한다. 댓글이 쓰이면 그로 인하여 연관된 연상 작용을 하며 비슷한 성향과 반대 성향의 사람들을 모으게 되고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여기에 어떤 체계나 논리가 있기보다는 자신의 의견 표출이 중요해진다. 즉 소설이전의 소설이며, 시 이전의 시이며, 의견 이전의 의견의 성격이 강하다. 아직 의견은 아닐 만큼 덜 성숙한 글이며 그 글이 진실하게 성숙의 과정을 거쳐야 완성된 형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보고 보이는 반응은 그것이 가짜이든 진실이든 상관하지 않는 성향을 띤다. 그에 대한 댓글을 서로 주고받으며 댓글은 점점 성장한다. 사실 정치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댓글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또한 댓글을 다는 사람의 경우도 소수의 1-2%의 사람이 대부분의 댓글을 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은 어느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의 2020년 9월의 댓글창이다.     

댓글만 보아서는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알 수가 없다. 가해자는 자신이 피해자인양 피해자를 계속 모욕을 주고 욕질을 해댄다. 그러면 피해자도 몇 마디를 하고 서로 설전이 벌어진다. 도대체 이 클래식 채널에서까지 왜 이런 댓글이 난무하게 되었는가? 


어느 기사나 프로그램이나 대부분 댓글창이 있다. 최근에는 댓글창이 있는 곳은 거의 대부분 이렇게 곤욕을 치르고 있다. 차라리 댓글창이 없는 것이 좋을 정도다. 댓글을 보는 시청자, 애청자들은 감정적으로 피곤하다. 


좋은 말만 주고받으면 좋겠는데 눈살 찌푸리는 밉상을 대하니 속이 편하지 않다. 왜 방송사 댓글 창에서 상대를 비방하고 이른바 난 척을 하는 것일까? 방송이라는 위력이 주는 힘일까? 방송사니까 댓글창도 훨씬 파급력이 있어 자신의 말을 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희열을 느끼는 상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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