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 국제 캠핑장
11월 24일부터 25일까지 1박 2일 동안 나는 인천 송도 국제 캠핑장에 있었다. 최저기온은 영하 6도, 최고기온은 영상 3도로 겨울은 이미 시작된 시점이었다. 올해 처음 캠핑을 시작해 한겨울 경험이 없는 초보 캠퍼인데, 예보는 강풍까지 가리키고 있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캠프사이트 예약일을 기다렸다.
금요일 어린이집에서 딸을 하원시키기 전, 회사에서 일찍 나와 혜원이와 캠프사이트에 먼저 가 피칭을 마쳤다. 날씨는 꽤 추웠고 강한 바람이 시작된 시간이었다. 사이트를 준비한 후 난로를 켜고 물을 끓여 차를 우리고, 혜원이가 마트에서 사 온 꿀호떡을 난로에 구워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이야기도 있었고 딸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런 여유 있는 대화는 참 오랜만이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딸을 하원시킨 후 돌아왔다.
우리 가족은 자그마한 쉘터 안에서 오겹살 수육을 삶아 함께 식사하고 딸과 놀며 시간을 보냈다. 스티커놀이, 색칠놀이, 역할놀이, 그리고 알 수 없는 딸이 만든 여러 가지 놀이들이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놀면서도 추운 날씨로 감기 걸리진 않을지 걱정되었는데 난로가 역할을 잘해주어 다행히 아픈 사람 없는 저녁이었다. 우리 가족은 거의 모든 캠핑에 난로를 가지고 다니며 자연 속에서의 추운 밤을 대비하긴 했지만, 잠에 드는 시간 전부터 난로에 의지할 정도로 추운 날씨에 캠프사이트는 처음이었다. 따뜻한 온기를 주는 난로 옆에서의 놀이들은 평소보다 더 포근했고 색다른 분위기를 선사했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혜원이와 딸은 집으로 돌아갔고, 혼자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이 돌아갈 때즈음 바람이 잦아들었고, 모닥불을 피울 수 있었다. 그동안 건조하지 않았던 날씨로 모닥불을 피울 때마다 고생을 했었는데, 무척 건조한 날씨 덕에 불은 쉽게 붙었고 장작은 잘 탔다. 불을 붙이고 식사의 뒷정리를 했다. 아직도 어찌나 요령이 없는지 정리에는 효율이 없었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마저도 즐거운 건 아직도 초보 캠퍼이기 때문인 듯했다. 그리고 내가 잘 자리를 준비하기 위해 야전침대롤 펴고 매트를 깔고 침낭을 풀어 두었다.
나는 집 근처 대학에 합격했었고, 처음 입사한 회사도 집 앞에 셔틀이 있어 늘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자취를 해 본 경험이 없었다. 결혼하며 처음으로 독립했기에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캠프사이트에 혼자 있는 시간은 늘 새롭고 설렌다. 혼자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게 즐겁다.
따뜻한 난로 옆에 앉아 쉘터 문을 활짝 열어놓고 모닥불을 보며 그날의 사진들을 정리하고 편집하거나 책이나 매거진을 읽었다. 이런 차분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혼자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곤 하는데 그 시간들은 소중하다. 이런 경험을 해보기 전까지 나는 내가 이런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늘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시간도 무척 매력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번에 혼자 있으며 여유 있게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모닥불의 사진은 노이즈를 감수하더라도 셔터스피드를 짧게 잡아야 뭉개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남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장작을 모두 태우고, 랜턴도 들여온 후 문을 닫으니 쉘터 안은 훈훈해졌다. 마지막으로 짐들을 정리하고 벤틸레이션들을 점검한 후 모든 불을 끄고 침낭 속에 들어왔다. 춥진 않았는데, 발이 시렸다. 겨울엔 양말을 신고자야 하는 모양인데 초보라 몰랐다.
침대에 누워서 사진편집을 조금 더 했고 보조배터리에 휴대폰을 충전시킨 후 눈을 감았다. 늘 캠프사이트에서 첫날밤엔 잠을 잘 못 이루기도 했고 유난히 피곤한 느낌이 전혀 없기도 했기에 잠이 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틀렸다. 아마도 아이패드를 내려놓자마자 바로 잠에 든 것 같다.
잠들기 전 난로에 연료가 떨어져 추워지면 어떡하나 걱정을 조금 했었는데, 아침에 본 난로는 다행히 켜져 있었고 나는 춥지 않게 밤을 보냈다. 누워서 혼자 뒹굴거리다가 아이패드를 들고 어제 못다 한 사진편집을 조금 하고, 덮어놓은 책도 다시 폈다 일어났다. 난로와 침낭 덕분에 따뜻한 밤을 보냈지만 겨울은 겨울이었다. 서둘러 옷을 입고 밖에 나가 기지개를 켜며 정신을 좀 차렸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 난로 앞에 앉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안 했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은 되게 행복한 기억이다. 혜원이에게 연락해 잘 잤는지 물어봤고 나는 푹 잤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전날 보다 더 추웠던 탓에 아침 식사는 캠프사이트에서 다 같이 하지 말고, 도착할 때 맞추어 정리를 해 놓을 테니 식당에 가서 먹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커피 내릴 준비를 했다.
아침에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캠프사이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들 중 하나이다. 이 시간에 대해선 나름 요령도 좀 생겼고 전체 과정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도 조금은 생겼다. 원두를 갈 때마다 자기가 하겠다고 와서 작은 손으로 그라인더를 돌리는 딸이 없는 건 아쉬웠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좋았다.
모든 짐을 밖에 내놓고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요령은 안 생겼고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날이 춥긴 했었던 모양이다. 설거지를 위한 액체 세제나 생수 같은 것들이 얼어있었다. 모두 쉘터 안에 있었는데 난로 옆에 나는 따뜻했고 조금 떨어진 곳에 그것들은 얼어있었다. 쉘터 안에서의 온기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것인지, 데크구조이기 때문에 지면의 냉기가 전달되어서 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혜원이와 딸이 도착하기 전 패킹을 마치고, 도착한 후엔 싣기만 하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가족들이 도착했을 때 패킹은 반도 안 끝난 상태였다. 서둘러 짐들을 정리했고 혜원이와 딸과 함께 캠프사이트를 떠났다. 자주 오는 곳이었지만 겨울엔 처음이라 그런지 새로웠던 송도 국제 캠핑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