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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 Ception Oct 31. 2020

내가 배운 디자인의 비밀: 도면

아트워크를 완성시켜나가는 과정

컨셉은 전체 과정의 30%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도면 작업을 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졸업 프로젝트 시간 교수님은 도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에게는 모두 좋은 비율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고 했다. 도면 작업은 그 비율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예술 행위에 정말로 답이 있는 걸까? 사람들이 알아보는, 좋아하는 비율이 존재하는 걸까?


컨셉은 30%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도면 작업을 해야 해요.


대학교 4년을 다니면서 나는 한 번도 이 과정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보거나 시도하지 않았다. 항상 아이디어를 우선시했고 더 좋은 컨셉을 고민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다 보니 보다 완성도 있는 형태의 대한 고민이나 제품 자체의 디자인적 퀄리티를 높이는 작업을 제대로 진행해보지 못했다.


그렇게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처음으로 도면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배트맨스러움에 대한 디자인 언어와 방법론을 정한 뒤 그것을 활용하여 카드에 맞는 가장 최선의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배트맨 카드 속 아트워크는 모두 아래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배트맨 아트워크를 바탕으로 아트워크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가장 배트맨스러운 순간에 대하여


초기 배트맨 아트워크: 배트맨의 고독함

배트맨은 고독한 정의의 투사다. 다른 사람이나 파트너가 자신으로 인해 해를 입는 걸 굉장히 두려워하기에 혼자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자신이 하는 일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며, 가끔 평범한 삶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속 복수심이 그것을 막는다. 그렇기에 고독하며 외롭다.

이런 해석은 배트맨이 동굴 속에 혼자 서 있는 장면으로 표현되었다. 배트맨이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고독'이 배트맨을 나타내는 가장 상징적인 요소일까? 고독이 배트맨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배트맨의 고독은 배트맨의 여러 모습 중 한 일면이다. 



배트맨의 복수심: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은 것에 대한 분노와 복수

"I am vengeance. I am the night. I'm Batman!" 배트맨의 가장 유명한 대사다. 배트맨은 어린 시절 괴한의 손에 의해 부모님을 잃었다. 그 무력감과 상실감은 그에게 엄청난 분노와 복수심을 심어주게 된다. 어릴 적 배트맨은 다짐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게 만들겠다. 나에게 이런 일을 겪게 만든 범죄자에게 복수하겠다.


덮치는 순간을 통해 배트맨의 분노와 복수심을 표현하다


배트맨은 자신의 분노와 복수심을 범죄자에게 심어준다. 배트맨의 무기는 두려움이며, 범죄자를 그의 분노와 복수를 담아 덮친다. 그렇기에 범죄자가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배트맨이 덮쳐오는 순간이라고 생각했고 이것이 배트맨을 가장 배트맨스럽게 만드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배트맨 뒷면 디자인용 스케치 (2018)
스케치를 기반으로 진행한 초기 디지털라이징 이미지

위 과정은 앞서 설명한 배트맨이 덮치는 순간을 잡아낸 초기 구상이다. 이 과정까지가 컨셉을 정하고 방향성을 정하는 단계이다. 이제 정해진 요소를 가지고 실제 사용할 완성된 이미지를 만들 차례다. 이어지는 글을 통해 배트맨 아트워크의 도면을 치는 과정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배트맨 아트워크 도면 과정



배트맨의 팔 아머와 가면  
배트맨 아트워크에 사용된 팔 아머 도면 제작 과정

위 이미지는 배트맨 아트워크에 사용된 팔 아머 도면 디자인 과정이다. 각 뿔의 간격과 뿔 자체의 각도와 비율, 그리고 곡선의 정도를 바꾸어가며 여러 가지 도면을 만들어나간다. 


오른쪽 모든 가면을 합쳐놓은 이미지를 보면 작은 차이지만 가면의 뿔의 길이와 뿔의 두께, 그리고 가면의 폭과 같은 요소가 미세하지만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각 요소를 조금씩 옮겨가며 가장 보기 좋은 비율을 찾아내는 것이 도면 과정의 목표다.



미간과 눈의 높이 잡기
배트맨 아트워크의 눈 비율 연구

왼쪽 세로선은 미간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며 아래로 갈수록 미간이 넓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쪽 가로선은 눈의 높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갈수록 눈의 높이가 낮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눈의 미간과 위치에 대한 모든 도면을 만든 후에 가장 좋아 보이는 비율을 선택한다.

오른쪽 아래 두 개의 이미지는 그렇게 정해진 미간과 눈의 높이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도 미세한 조정이 들어간다. 사람의 이마는 둥글기 때문에 눈이 직선으로 되어있으면 부자연스럽다. 오른쪽 가면처럼 이마의 둥근 선을 따라 눈을 수정했다.  

이런 식으로 필요한 요소 하나하나의 비율을 찾아나가 최종적인 아트워크를 완성한다. 위 이미지는 앞서 설명한 모든 과정을 거쳐 완성된 배트맨 아트워크다.



카드에 아트워크 적용하기

만약 위에서 완성한 아트워크를 그대로 카드에 넣으면 위와 같은 형태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배트맨이 덮쳐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 배트맨이 멀리 떠있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즉, 앞서 완성한 아트워크를 카드에 크기에 맞게 다시 수정하여 덮치는 느낌을 표현해야 한다.

배트맨 아트워크를 카드에 적용한 도면 예시
실제 크기 점검을 위한 도면 이미지 뽑아보기

배트맨 아트워크를 카드의 틀에 적용한 예시다. 사용자가 카드를 쥐고 봤을 때 배트맨이 덮쳐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했기에 각 도면을 전부 실제 사이즈로 뽑아 테스트를 진행했다. 하나하나 직접 쥐어보고 살펴보며 원하는 방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아트워크를 골랐다.


최종적으로 위의 아트워크가 배트맨 뒷면 디자인으로 정해졌다. 배트맨이 덮쳐오는 순간을 잡아냄과 동시에 배트맨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뿔과 눈을 제외하고 다른 요소는 모두 제거했다.






위 과정은 나에게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얻었던 것 중 가장 값진 것을 알려주었다. 바로 도면의 중요성이다. 수 없이 많은 도면을 치고 그것을 직접 뽑아 본 뒤 여러 사람에게 진행한 과정을 보여줘 봤다. 정말 흥미로웠던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현재의 결과물을 골랐다는 것이다. 정말로 좋아 보이는 비율은 있었다. 


이 작업을 기점으로 내가 진행하는 모든 디자인 작업에서 도면 작업과 실제 크기로 뽑아보는 프로토타이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를 통해 나는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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