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였던 나는 하늘을 날 수 있을 줄 알았지
현주는 이마 위에 손등을 얹은 채 숨만 쉬고 있다.
틱, 툭, 틱, 투둑, 틱, 탕
비...
한숨 터지듯 중얼인다.
힘빠지는 비린내.
현주는 비에 젖은 몸으로 침대에 누워, 한 손은 이마 에, 한 손은 매트리스 밖으로 늘어뜨려 놨다.
창문은 닫지 않았다. 장마철에 창문을 열어 놓은 반 지하 월세방에서 현주는 잠식된다. 그럼에도 부동 없이 천장만 본다.
대충 도배한 천장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피었다.
침대 하나로 꽉 차는 방. 이따금 취객들의 싸움이 자 장가가 되는 방. 이따금 미적지근한 행복을 주고 대 개는 비참함을 주는 방. 그녀의 현주소이다.
현주의 현주소. 그녀는 그 방을 그렇게 칭하며 이따 금 낄낄댔다. 혼자만의 언어 유희가 그리도 재미있 었다. 그러다가도 특유의 냉한 얼굴로 다시 돌아왔 다.
재미없다. 다 집어치우고 싶다. 집어던져 버릴까.
아가씨 미쳤어? 누가 이 날씨에 창문을 이래 열어 놔? 문 좀 열어 봐, 아가씨. 문 좀 열어 보라고!
집 주인이 그런 현주를 가만 냅둘 리 없다.
늘 점잖은 척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고향 사투리가 나오는 중년 여자. 언뜻 들으면 그냥 고함 같기도 한 그 말투.
저 인간 곧 있으면 현관문도 때려부술 수 있겠다. 그럼 난 문 없이 살게 되는 건가, 그럼 현관문은 팔아도 되나, 재미있다. 현주는 그냥 피실피실 웃는다.
알아서 들어올 수 있으면서 점잖 빼기는, 들어와서 말씀하세요. 현주는 겨우 입을 달싹인다. 집 주인에 게 닿을 리 없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 이거지.
현주는 웃었다. 정확히는 축축하고 음습한 비소를 내보였다.
정확히 다섯 대. 집 주인이 문을 따고 들어와 잽싸게 현주의 뺨따귀를 후려갈겼다.
짝, 이 아닌 퍽, 에 가까운 마찰음이 반지하방을 메웠 다.
고개가 돌아갈 때마다 어릴 적 다니던 교회가 생각 났다. 그리고 누가 네 뺨을 치거든 다른 뺨도 돌려대라던가, 뭐 그런 성경 구절이 생각났다. 그 시절 나는 예수를 믿으면 다 될 줄 알았지. 그게 뭐든.
씨근대며 현주의 왼쪽 뺨을 치던 집 주인은 조금 지 쳤는지 잠시 멈춰섰다. 그새 현주는 말 없이 오른쪽 뺨을 대고 바닥에 시선을 꽂았다.
아니 이게, 순종적인 현주에 집 주인은 더 분노했다.
멱살을 잡고 소리를 빽빽 질러댔다.
사실 현주의 시야와 귓전에 아주머니는 없었다. 그 뒤 반지하 창문만 응시했다.
"시끄러워"
"뭐?"
"시끄럽다고.."
"야! 별 미친 걸 다 보네! 피해 보상 청구할 거니까 기다려!"
여자가 멱살을 놓자, 현주는 무력하게 침대로 쓰러 졌다. 여자는 여전히 씨근대며 급히 반지하 창문을 닫고, 주섬주섬 신발을 신었다. 미친년.
피도 아니고 비인데,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피범벅의 미치광이 살인마가 된 것 같아 웃음이 샜다
그렇게 여자가 사라진 방엔 적막만 남았다. 더이상 창문으로 비가 들어오지도 않았고, 빗소리도 희미해졌다.
실리콘이 대충 발린 채 어설프게 자리잡고 있는 창 문. 스티커형 시트지로 어설프게 막힌 반지하의 정경.
그때 하늘을 날았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지금이랑은 다른 삶을 살았을까. 전혀 상상이 안 된다. 어딘가 콱 막힌 것처럼 사고 회로가 끊긴다. 못 날았으니까 이러고 있겠지. 또 피실피실 웃음이 샌다.
현주는 몸을 약간 일으킨 채 입을 헤 벌렸다. 속이 시끄러웠다.
난놈이 되고 싶었으나, 그냥 잠시 허공에 머물렀던 인간이 됐다. 그리고 땅에 처박힌 느낌은, 고통스럽 다. 다시금 날고 싶다.
그러나 이제는 힘이 없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애초에 인간은 날 수 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지금 나는 반지하의 음습한 공기를 머금고 살아가는 거 아닌가.
창문이 닫힌 방은 고요하다. 그리고 몸은 모든 비를 머금고 있다. 침대는 펄이다. 고로, 날 수 없다.
정적 속에서 다시금 틱틱, 톡톡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비는 구름의 눈물이랬나. 아닌 것 같다. 그 특유의 섬뜩함은 구름의 피 같다. 그럼 구름도 과다출혈을 일으킬 수 있나.
시간은 가네. 빗줄기는 땅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쏟아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