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목소리로 전하는 전쟁의 참혹함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by 김선우

“나는 전쟁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첫 문장에서 말하듯 이 책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전쟁과는 다르다. 기존의 전쟁 서사가 남성들의 영웅담과 이념에 치우친 데 반해, 이 책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전쟁의 면모를 드러낸다. 그동안 여성의 경험과 기억은 감정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 폄하되어 사적인 영역에 머물렀고 역사에서 배제되었다. 이 책은 간호병, 저격수, 통신병, 전차병, 빨치산 등 다양한 여성 병사의 증언을 모은 기록 문학으로 전쟁의 남성 중심 서사에 의문을 던지고, 여성의 고통과 감정, 침묵 속에 있던 또 다른 전쟁 서사를 복원한다.


여성의 목소리로 전하는 전쟁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이어서 훨씬 더 참혹하게 묘사된다. 전쟁은 단지 승패의 문제, 숫자나 지도 위의 선이 아니다. 그것은 적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더 많은 이의 생존을 위해 아기가 울지 못하도록 죽여야 했던 어미처럼 생명을 죽이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전쟁이 요구하는 악의 본질이다. 이 책은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인을 임무로 받아들이게 되는가? 인간의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비인간적인 존재로 만들 수 있는가? 이토록 어리석은 전쟁을 왜 우리는 멈추지 못할까? 극도의 폭력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을 지켜낼 수 있는가?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여전히 침묵당하고 배제되는 목소리들이 있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행하는 자, 승리의 혜택을 받는 자들의 목소리가 아닌 고통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 전쟁의 진실은 더 잘 드러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거나 목격한 소련 여성 200여 명을 인터뷰하고 엮은 이 책은 수백 명의 목소리가 병치되어 전쟁의 단일 영웅 서사를 해체한다. 그럼으로써 전쟁을 승리나 전략이 아닌 상실과 고통의 체험으로 전환시킨다. 나아가 전쟁을 성찰하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윤리적 실천으로 나아가게 한다.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한 권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연 소년들》, 《체르노빌의 목소리》, 《세컨드 핸드 타임》 등 그녀의 구술 증언 문학 전반 즉, 시대의 목소리를 기록한 다성적 서사 작업 전체에 주어진 것이다. 노벨위원회는 알렉시예비치의 작품들을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의 폴리포니(다성적 합창)”라고 평했는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야말로 그 평가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책은 1983년 집필을 마쳤으나 소련 당국의 검열로 출간이 지연되었다가, 고르바초프 집권 후인 1985년에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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