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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Aug 06. 2022

절규의 응답이 꽃으로 피었나

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4월, 슬픔이 과한 계절에도 꽃은 핀다. 군중의 뭇사랑을 받는 길가의 벚꽃은 그렇다 쳐도 반달집 마당만큼은 봄기운이 침입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담벼락에 너울거리는 개나리부터 해서 마당 정원엔 보라색 제비꽃, 찐 자줏빛 철쭉, 이름 모를 하얗고 뽀얀 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갸우뚱, 아빠라는 거대한 생태계가 사라졌는데 봄이 성립하다니. 고개를 돌려 외면해도 피할 수 없는 마당 정원을 오류난 수식값처럼 흘겨보았다. 정작 단단히 틀려먹은 건 내 마음이었지만.


보고 있는  괴롭다 하여 꽃의 아름다움이 덜한  아니었다. 2 우리 집에서 내려와 대문으로 가는 코너를 돌면 가장 먼저 붉은 양귀비가 눈에 띄었다. 색부터  고운 양귀비였지만 가느다란 줄기가 버티기에 꽃봉오리가 무거운지 앞뒤로 느직느직 고개를 젓는 동세까지도 우아하고 시선을 거두기 어렵게 이뻤다. 2 창문에서 보면 초록 가득한 정원 곳곳에  찍힌 빨간 양귀비 덕에 마당 전체가 때때옷을 입은  귀여웠다. 지난겨울, 양귀비  자리 봐가며 땅이 얼지 않게 애지중지 관리한 할머니의 가히 작품이라 부름 직한 결과물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괴로웠다. 뻔히 아름다운 것을 두고도 마음 괴로워할 때 사람은 괴물이 된다. 평범한 사람을 해치는 존재만 괴물이 아니라 그 반대도 괴물이다. 나는 “아름답다”, “행복하다” 하는 사람들의 흔한 감상에도 마음에 해를 입었다. 괴물은 외로운 존재다. 양귀비가 붉어도 너무 붉어서 그런 걸까, 특히 4월의 괴물은 2월의 괴물보다, 3월의 괴물보다 조금 더 많이 괴로웠다.


어느새 절정에 다다른 봄은 마당 정원을 꽃으로 가득 채워버렸다. 벌을 꾀어내는 색이라 그런가, 형형색색의 정원 앞에 서면 척박한 내 마음에도 무언가 꿈틀꿈틀 움트고 올라왔다. 정원을 바라보다 그것이 더 활기차게 불쑥 솟아오를 때면 고개를 홱 돌리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것이 점점 자라나 활짝 피었을 때, 너무나 선명하게 인지되는 그것의 정체를 더 이상 모른 체 할 순 없었다. 수치스럽게도 그건 바로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 살고 싶은 마음. 꽃은 자꾸만 나를 살고 싶게 만들었다. ‘너만 꽃이냐? 나도 꽃이다.’ 따뜻한 봄이 다 지나가 버릴까 봐 아까워할 때마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럴 자격도 없는 주제에 감히 행복을 꿈꾸다니.


어쩌면 지난겨울 제발 살려달라던 절규의 응답이 꽃으로 피어난 걸까? 아니, 아니다. 꽃은 그냥 씨앗 때부터 약속된 생의 의무를 다할 뿐이었다. 피워야 할 때와 져야 할 때를 아는 꽃의 의무감은 너무나도 순수해서 그 과정 속에 어떤 함의를 가졌다고 차마 짐작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꽃이 하는 말을 읽었다. “뿌리에 달려드는 벌은 없다.” 있을 때 잘하지 못했다면 지금 있는 것에 잘하라. 잘하기에 늦었다면 아직 늦지 않은 것들에 잘하라. 마음은 어느새 지워내야 할 것과 피워내야 할 것을 가늠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고 나는 지난겨울 진작부터 꽃이 필 것을 두려워했나 보다.



여전히 욱신거리는 마음이었지만 눈물은 줄었다. 울 만큼 울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엉엉 흘려보낸 눈물과 함께 어느새 가슴에 박힌 가시도 빠져나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엔 뻥 뚫린 구멍한 휑하니, 남았다. 구멍을 통해 온갖 슬픔과 괴로움이 다 터져나갔다. 덕분에 마음에 무언가 고여 썩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 구멍은 예사 구멍이 아니었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아픔과 슬픔이 그렇게 많은지 전에는 몰랐다. 나는 길 가다 마주친 일면식도 없는 외국 병사의 묘비 앞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한 사람이 세상에 있었다가 황망히 사라지는 일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 눈물이 났다. 가슴에 난 구멍은 다름 아닌 나의 또 다른 눈이었던 것이다. 그 구멍을 통해 보는 세상은 두 배로, 세 배로 아프고 슬픈 곳이었다. 이 위태위태한 세상에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구나. 무지의 평온함을 되찾고 싶었지만 한번 눈뜬 세상에서 벗어나는 일,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괴로움과 슬픔이 지나갔다. 그걸 겪었다고 표현하기에 나는 단 한 번도 내 감정의 주체가 된 적이 없었다. 그렇게 데이고 베이고 찔렸건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나였다. 슬퍼도 꽃이 피는 것처럼. 밑바닥을 기어 다니면서도 딛고 설 구석을 손 더듬어 찾는 나. 가증스러워도 어쩌겠어! 더럽게 씩씩하고 꿋꿋한 게 나라는 사람인걸. 부끄러워 화끈거리는 얼굴을 하고도 나는 조금 안도했다. 괴로워도 여전히 나인 채로 괴로워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쑥쑥 자라는 아이가 성장통을 겪듯이 무에 가까워져 가는 어른은 이렇게 상실통을 겪으며 자란다. 유한한 인간의 생이라는 틀 안에서, 많든 적든 이르든 늦든 우린 소중한 것들을 필연적으로 잃게 되어있으니. 배움의 대가로 너무 큰 것을 치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확실히 나는 전보다 조금 더 건조하고 단단해져 있었다.



자꾸 속으로만 향하던 고개를 돌려 가까스로 밖을 보니 세상에나, 도처에 사랑이 가득했다. 나 하나 일으켜주기 위해 뻗쳤던 수많은 손길이 그제야 보였다. 그 감사한 위로와 사랑을 다 어쩔 거야. 마음이 고목 뿌리만큼 길어봐야 뭐하나. 사람들은 밖을 향해 고개 내민 것에만 겨우 눈길을 줄까 말까 하는걸. 기운이 나는 대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 그래서 언젠가 마음에 담아둔 말 한마디 없이 텅텅 빈 채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을까. 더 이상 꽃을 봐도 괴롭지 않았다. 뿌리에 달려드는 벌은 없다. 적어도 꽃이 되자. 사랑을 꽃으로 피워내자.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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