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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성조 Aug 18. 2021

선생님의 새벽 감성

에필로그_내 앞의 너희들에게

 작년 겨울,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교생활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난 학교에서 뭘 시키면... 그게 참 귀찮다. 해야 하는 걸 아는데도... 그냥 귀찮다. 안 그래도 바쁜 연말에 갑자기 설문조사라니! 그것도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연필과 종이로 하는 설문조사라니! 어려운 단어들을 설명하고, 30문제 가량의 문항을 일일이 통계까지 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다.


투덜대고 싶다!

아주 격하게 투덜대고 싶다!

내가 담임만 아니었어도...! 


이럴 땐 학생들이 참 부럽다.




 혹여나 나를 따라 할까, 살짝 나오려는 한숨을 간신히 참고 아이들을 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웬걸? 열두 살 아이들의 눈에서는 짜증은커녕, 반짝하고 생기가 도는 것이 아닌가?


 하긴 생각해보니 6개월째, 코로나로 체육 수업은커녕 모둠활동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이 긍정적인 것들..! 그냥 공부만 아니면 다 좋구나? 4시간째 책상에 가만히 앉아 강의식 수업만 듣다 보니, 아이들은 별거 아닌 설문조사일 뿐인데도 다른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런데, 설문지를 꼼지락거리며 열심히 채워가던 아이들이 갑자기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선생님 5번 문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5번 어려워요! 쓸 말이 없어요!”


'시험도 아니고 대체 뭐가 어렵다는 거지?' 의아해하며 나누어 준 종이를 꺼내어 다시 읽어보았다.

설문지에는 ‘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은?이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몇 번 골라야 해요? 고민이 없어요! ”
“맞아요! 저도 요즘 정말 행복해요!”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마스크를 낀 채로 저마다 자신은 이만큼 행복하다며 갑자기 자랑을 해대며 웃었다.


 행복? 지금 행복하다고 한 거니?

코로나 때문에 1년 내내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봤는데? 온라인 숙제도 엄청 많아졌는데? 의자에서 일어서려면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정말 행복하니? 정작 교사인 나는, 길어지는 코로나로 인한 열악한 학교 환경에 매번 힘들고 지친다는 생각만 앞섰는데 말이다.


 고민을 생각하기 귀찮은 마음에 교실을 한 번 웃겨보겠다는 장난 섞인 시도가 반반씩 섞인 발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행복하다는 아이들이 해사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매번 말할 수 없이 벅차오르곤 한다.



 이제는 좀 적응할 때도 됐건만, 내 앞의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아직도 너무나 어색하다. 아이들이 "선생님은 왜 선생님이 되셨어요?" 하고 물을 때마다 "너희들 만나려고~" 라며 닭살스러운 멘트를 시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머리를 긁적인다.


 인생을 바꾸어 주신 은사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가르치는 것에 소질이 있다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


 입시를 준비할 때는, 평범하고 고루해 보이는 '멋대가리(?!) 없는 삶'은 죽어도 싫다며 부모님께 빽빽거렸다. 어려웠던 교우 관계와, 책상과 의자가 만들어 낸 딱딱한 직선들이 매번 나를 압도하는 곳. 졸업 후에 그곳으로 또 출근을 한다고?


학교에서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지, 나에게는 확신이 없었다.




 내 앞의 아이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애쓰지 않아도 밝은 얼굴을 사랑한다.

얼굴에 드러나 버리는 순수한 적대감과 분노도 사랑한다.

아픔이 순식간에 눈물이 되는 그 솔직함을 부러워한다.


 작은 것에 설레 하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기억 저편 슬프고 부끄러운 나를 잠시 잊는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오늘의 일상에 진심으로 감사를 느끼게 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참 교사인 을 한 번 해봤다.

새벽에 취한 자신은 견디기가 조금 힘들다.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생긴 이후로, 이런 말을 쓸 때면 왜 이렇게 닭살이 돋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낮에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저런 말을 할 수는 없으니. 야심한 새벽에 몰래 글로나마 써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머리 끝까지 화가 나거나 다 때려치우고 싶은 날이 더 많았다. 앞으로의 미래에 어떤 기쁨과 슬픔이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사실 아직도 평생 가르치기만 하면서 살 자신은 없다. 어쩌면 꼴도 보기 싫은 아이가 수도 없이 생겨나 이 글을 쓴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새벽 감성에 흠뻑 젖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한 때는 ‘원래 그런 아이는 없다’는 말을 굳게 믿는 순간이 있었으며, '모든 아이는 선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무사히 지나간 평범한 하루와 환한 미소에 마음 깊이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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