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시 절기 중에서 아이들도 잘 아는 날은 설날과 추석입니다. 설빔, 추석빔이라는 때때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가족과 함께 즐거운 날을 보내는 명절로 기억되지요. 가족 단위로 즐기던 명절이 있는가 하면, 정월대보름이나 단오잔치처럼 마을 의례로 지내던 풍습도 있습니다.
1960년대 마지막 베이비붐 시대에 서울에서 태어난 저는 이런 우리 세시 풍속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없었고, 천주교 박해시대부터 이어진 우리 집안의 가톨릭 신앙은 일반 가정에서 지내던 제사도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세시 절기에 관한 한 문맹에 가까웠지요.
그런 제게도 설날과 추석 다음으로 익숙한 절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삼복(三伏)'이었습니다. 그날이 언제 어떻게 정해지는지는 몰라도 초복이니, 중복이니, 말복이니 하는 날이 되면 부엌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나곤 했지요. 아버지와 결혼하기 위해 급히 천주교 신자가 된 엄마는 본인이 친정에서 지내던 복날 풍습만큼은 지켜왔나 봅니다. 저는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복날마다 먹었던 고깃국에도 이름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 걸 '복달임'이라고 하더라고요.
'복달임'의 뜻을 사전에 검색해 보면 '복날에 그해의 더위를 물리치는 뜻으로 고기로 국을 끓여 먹음'이라고도 나오지만, '복이 들어 기후가 지나치게 달아서 더운 달'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저는 '달임'이라는 말이 약을 달이는 것처럼 불 위에 오래 끓여서 만든 음식이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후자의 뜻을 보면 '기후가 지나치게 달아서 더운 달'이라는 뜻이 있었네요. 그러니까 이 말인즉슨, 지금 머리 위에 쏟아져 내리는 햇볕, 숨 막히게 하는 공기, 쉼 없이 흘러내리는 땀 등이 '지나치게 단맛을 내는 기후' 때문이라는 건데, 이런 단맛은 사양하고 싶어지네요.
세월이 많이 지나 어린이집 교사로 지내고 있을 때, 삼복 중 하루는 주방에서 교사들에게 복달임으로 삼계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날은 교사들이 호강하는 날입니다. 평소에는 아이들과 똑같은 밥과 반찬을 먹지만, 그날만큼은 닭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 있던 밥상을 따로 받았거든요.
내 밥 먹으랴 아이들 입에 밥 넣어주랴,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르는 식사 시간이 아니라 유유히 닭다리를 뜯으며 먹을 수 있는 시간도 보장되었지요. 그걸 먹고 나야 비로소 한 학기가 마무리되는 느낌이었어요. 한여름 더위 속에 지치지 않고 새로운 힘을 비축하게 도와준 복날의 닭 한 마리. 제 원기를 회복하게 해 준 건 삼계탕 안에 든 찹쌀과 인삼 덕분이 아니라, 뜨거운 화구 앞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만들어 준 주방 선생님의 노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싶을 때, 우리는 든든하게 밥 한 끼 사는 것으로 표현하잖아요. 그 밥이야 하루해가 가기 전에 몸에서 빠져나갈 테지만, 밥 안에 담아주고 싶었던 마음은 오래오래 몸 안에 남아 살아갈 힘을 주더군요. 마침 온몸으로 한여름 불볕더위를 맞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야말로 제대로 된 복달임을 하는 거지요. 영육(靈肉)으로요.
저는주방 선생님의 닭 한 마리뿐 아니라, 어깨를 두드려주던 손길, 따스하게 위로해 주던 말, 잘할 수 있다고 엄지를 들어 올려주던 손 등 수많은 분들에게서 고마운 복달임을 많이도 받으며 살아왔네요. 힘내라는 응원의 밥상을 이렇게도 자주 받았으니, 제 인생은<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라는 이현주 목사님 책 제목에 빗대 <돌아보면 밥상마다 복달임이었네>라고 해도 되겠어요.
마침 오늘은 중복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아이들이 삼계탕보다는 튀긴 닭을 선호하고, 밥상 앞에 마주 앉을 기회도 없으니 제가 불 앞에서 땀을 흘리지는 않아도 되겠네요. 그래도 왠지 혼밥 하기는 서운한 날. 염소 뿔도 녹는다는 대서 더위에 지치신 분에게 제가 무람없이 밥 한 끼 대접해도 될까요? 제가 얻어먹어도 좋고요.
해가 진 뒤 만난 꽃들은 밤이 되어도 곱습니다. 이 더위에 땀 한방울 흘리지 않는 꽃잎의 피부는 시들어 죽을 때까지 뽀송뽀송하겠지요?
[또 하나의 달력 / 전례력]
아이들은 더운 줄도 모르고 뛰어논다. '(기후의) 단맛'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그에 비해 노인들은 한여름 더위를 이기지 못할 때가 많다. 여름은 취약한 노인들이 더 세심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시기다. 전례상으로는 연중시기가 계속되는 대서 절기에도 기억할 만한 몇몇 성인의 축일이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 사도 야고보, 성모 마리아의 부모로 알려진 요아킴과 안나 등. 프란치스코 교종은 2021년 감염병의 유행으로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제정했다. 그날은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26일)'과 가까운 7월 넷째 주일이다. '복달임'이 노인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함을 교종도 아신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