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Dec 13. 2023

벚꽃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세계를 마비시켰다. 달에도 가고 화성에도 가는 과학이 바이러스에는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공기에 목숨을 맡기고 있다. 세계를 덮친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공포였다. 내가 마시는 공기, 내가 마시는 물, 내가 먹는 음식도 안심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공포였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숨을 쉬고 손을 잡기가 두렵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그 사람을 둘러싼 공기도 믿을 수가 없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거리는 봄의 향기로 가득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뜸하다.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거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인 분위기다. 벚꽃의 화려함과는 달리 거리는 무채색의 우울함을 담고 있다. 보름이 넘도록 집에만 머물러 있는 혜영은 창문을 통해 꽃구경에 나섰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고개를 들어 꽃을 보거나 사진을 찍기도 한다. 마스크를 쓰면 어디든 갈 수 있겠지만 혜영은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꽃들 사이로 꽃보다 화려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보인다. 핑크색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여자가 꽃길 사이로 걷는 모습이 눈에 띈다. 혜영은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그녀의 걸음은 생기로 가득하고 웨이브가 있는 긴 머리는 그녀의 걸음에 맞춰 움직인다. 혜영은 그녀의 생기에 돌연 화가 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혜영은 질투가 난다. 그녀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혜영은 그녀의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한다. 거리를 걷는 다른 사람보다 그녀가 돋보이는 이유, 마스크였다. 그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꽃향기를 음미하듯 여유 있게 걷고 있는 것이다. 혜영의 눈은 그녀를 따라 꽃길을 걷는다. 어느 순간 그녀가 혜영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혜영은 갑자기 알 수 없는 충동을 느낀다. 나가고 싶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걷고,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흩날리는 꽃잎을 보고 싶다. 잘 버텨온 혜영의 마음 깊은 곳에서 삼킬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혜영은 냉장고로 달려가 탄산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한다. 조금 살 것 같다.

 “띵동!”

 벨소리에 혜영은 현관을 향해 말한다.

 “누구세요?”

  택배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출을 하지 않는 동안 혜영은 필요한 것을 모두 택배로 받고 있다. 다행히 혼자 사는 혜영에게 필요한 것이 많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식품 정도를 주문하는 것이다.

 “황혜영 선생님 댁인가요?”

 혜영은 멈칫한다. 교직 생활 10여 년 동안 집으로 찾아온 제자도 학부모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을 아는 제자나 학부모도 당연히 없다. 혜영은 다음 대답을 망설인다. 자신을 찾아올 사람은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누구세요?”

 다시 혜영은 묻는다. 자신의 신분보다는 현관밖에 있는 여자의 신분을 먼저 밝히고 싶은 마음이다.

 “선생님 맞으시죠? 저 은주예요. 주신초등학교 6학년 때 제자였던 은주요.”

 주신초등학교라는 말에 혜영이 떠올린 것은 은주라는 제자가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였다. 은주라는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전의 일이다. 그랬다. 주신초등학교에서 혜영은 4년간 근무하고 다른 학교로 근무를 옮겼다.

 “누구시라고요?”

 혜영은 다시 되물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억나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갑자기 제자가 스승이랍시고 찾아오는 시절은 지났다. 제자가 아니거나, 제자라고 하더라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박은주요. 주신초등학교 6학년 박은주요.”

 수영은 자신의 신분을 강조해서 밝히는 은주를 반기며 문을 열어줘야 할지 모르는 척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분명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름이다. 아니 다른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이름이다. 그래 전염병의 시대에 제자라고 해도 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영은 의도를 담아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요.”

 “선생님 저 기억 안 나세요? 은주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혜영은 대답했다. 목소리는 무심하거나 망설임이 아니라 분노를 담고 있었다. 이 목소리를 듣고도 혜영의 기억을 들춰낼 용기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의 분노였다.

 “얼굴 보시면 기억나실 텐데 잠시 문 좀 열어주세요.”

 “저기요. 기억 안 난다고요. 아니 난 선생님이 아니에요.”

 혜영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거짓말이 나왔다. 이제 정말 가겠지 하고 혜영은 거실로 몸을 돌렸다.

 “선생님 문 좀 열어주세요. 얼굴 보면 아실 거예요.”

 혜영은 자신의 마음 밑바닥까지 가라앉아있던 분노가, 아주 오래된 분노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은주를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하지만 한순간 혜영은 그것은 은주로부터 시작된 분노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은주가 문제였다. 항상 은주가 문제였다.

 “저기요.”

 화를 참지 못하고 현관문을 열었던 혜영은 은주를 보자마자 바로 현관문을 닫아야 했다. 은주를 본 1초의 시간 동안 자신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은주가 핑크 원피스의 마스크를 쓰지 않은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집요한 제자 은주에 대한 분노보다 바이러스가 먼저 혜영을 진정시켰던 것이다.

 혜영은 서둘러 마스크를 썼다가 다시 벗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화사한 여자가 은주라는 사실을 안 이상 은주를 만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국에 마스크도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찾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행동인지 은주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 당당함에 혜영은 화가 났다. 바이러스로 몇 달간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지낸 자신이 한순간의 만남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살인이다. 은주는 지금 살인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혜영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은주를 살인자로 만들고 있었다.

 “어! 선생님 맞네요. 혹시나 잘못 찾아왔나 했는데.”

 은주는 뻔뻔함인지 순진함인지 천연하게 다시 혜영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현관문을 열지 말아야 했다. 그랬다면 끝까지 발뺌할 수도 있었다. 혜영은 이제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병신 같은 년! 혜영이 욕을 입속에서 씹어 뱉었다. 은주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하는 욕이었다.

 “그래 은주야. 근데 다음에 밖에서 만나자. 지금은 좀 그래.”

 “선생님 저 기억나시죠?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잠깐만 문 좀 열어주세요. 인사만 하고 갈게요.”

 “은주야 반갑고 찾아와 줘서 고마워. 근데 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다음에 보자.”

 혜영은 은주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저 여자는 제자가 아니고 바이러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런 바이러스들이 아직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니 믿을 수 없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한껏 멋을 내고 벚꽃 아래를 걷던 은주의 모습에 화가 났다. 그녀의 벚꽃을 닮은 아름다움에 질투가 났다.

 “선생님 저희 아버지 만났죠?”

 혜영은 은주가 물어보는 의도를 생각해야 했다. 혜영은 옛 은사를 찾아온 제자가 아니었다. 왜 혜영을 찾아온 것일까? 혜영은 은주의 의도에 말려들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

 “너희 아버지? 돌아가셨잖아? 7년 전에.”

 혜영은 자신이 한 말을 후회했다. 뭔가 은주에게 실마리를 던져준 것만 같았다. 혜영을 찾아온 은주의 목적이 무엇이든 혜영에게는 개운찮은 일이다.

 “7년 전 아빠 돌아가시기 전에 선생님 만나신 거 맞죠?”

 은주는 마치 어제 일을 말하듯이 6년 전의 일을 물어보고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