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불놀이 정월 대보름
정월 대보름이 가까워지면 아이들은 분주해진다. 동네를 돌며 보름날 불깡통을 만들 깡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름날 대부분의 마을에서 쥐불놀이를 하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불깡통이 유행이다.
깡통에 철사를 달아서 빨리 돌리면 불이 더 커지며 붕붕 소리를 내는데 그리 멋진 것은 별로 없다. 깡통은 대부분 과일 캔이나 아이들 분유통인데 이게 시골 마을에서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는 집도 드물거니와 먹인다 해도 분유통은 크고 튼튼해서 활용하기 좋아 곡식 보관이나 여러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학교 주변, 통학로, 다른 마을까지 돌아서 어렵게 깡통 하나 구하면 대보름 준비가 얼추 끝이 난다.볕 좋은 마을 한편에 아이들이 모두 모여 자기가 구한 깡통에 구멍을 내고 철사를 달아야 한다.
철사는 조금 두꺼워야 불에 오래 견딜 수 있다. 누구네 집에 그런 철사가 있다 하면 그 집 아이에게 줄을 선다. 물론 그 아이도 하나분 정도야 아무 말 안 하시지만 양이 많아지면 그렇지 않으니 부모님 몰래 가져와야 한다.
이제 깡통에 구멍을 낼 차례이다. 적당한 크기의 못으로 일정하게 구멍을 내야 불땀이 좋고 소리 또한 멋들어진다. 먼저 망치와 대못을 가져오고 누구는 깡통에 흙이나 모래를 가득 채운다.
그 이유는 구멍을 뚫을 때 깡통이 찌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솜씨 좋은 형들에게는 작은 아이들이 서로 해달라며 떼를 쓴다.
먼저 깡통 옆에 일정한 가격으로 구멍을 내고 아랫부분 중앙부터 방사형으로 구멍을 내면 거의 완성된 것이다. 철사를 본인 키에 맞게 해야 불깡통이 땅에 닿지 않아서 좋다.
또 너무 짧으면 모양새가 안 난다. 몇 번 돌려서 철사 길이를 맞추고 고정하면 완성이다. 대부분 작은 깡통이지만 한 두 명은 분유통이어서 모두들 부러워한다.
정월 대보름 오후부터는 아이들이 바쁘다. 집에서 땔나무를 가져오고 아니면 산에 가서 나무를 구해오는 등 분주하다.
마을 앞 신작로에 모두 모여 깡통에 갈쿠나무를 먼저 넣어 불을 붙인 후 작은 나뭇가지를 넣어 불을 키우고 좀 더 큰 가지를 넣고 깡통을 돌려야 한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요령이 있어야 한다. 작은 아이들은 큰 형들이 먼저 키운 불을 받아 들고 자기의 깡통을 내민다.
마을이 대부분 한 성씨이니 형제거나 사촌 아니면 먼 친척들이라서 서로서로 불을 만들어 준다. 이제 어느 정도 불이 붙었으니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며 논둑으로 가 자기 집 논둑 남의 논둑 할 것 없이 불을 붙인다.
쥐불놀이의 시작은 논둑에 불을 놓으며 시작이다. 매캐한 연기가 마을을 감쌀 때쯤이면 어른들이 나와 조금 단속을 한다.
산에 가까운 곳이나 마을 가까이는 불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불은 금방 산이나 집으로 달려들기 때문이다.
보름날 쥐불놀이로 불 탄 산소나 집이 여러 곳이다. 논둑에 불을 놓고 불장난을 해도 오늘만큼은 자유롭다. 보통은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면 밤에 오줌 싼다며 놀리고 엄하게 지천하는데 보름날 만큼은 예외이다.
논둑에 불을 놓으면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벼멸구나 각종 해충과 쥐들이 죽고 풀들이 타서 다가 올 농사철에 논둑을 벨 일이 덜어지기 때문이다.
어둠이 오면 본격 불깡통의 향연이 펼쳐진다. 중 고등학생 형들의 깡통에서는 무서운 불 소리가 난다. 힘차게 돌아가는 불깡통은 동그란 불 그림자를 남기며 멋지게 돌아간다.
특히 분유통을 돌리면 무거운 저음으로 부웅-부웅하며 위협적인 소리가 난다. 위아래로 돌리다가 머리 위로 돌리다가 여러 재주를 부린다.
불깡통 돌리는데 넋을 팔면 옆사람을 때리거나 옆의 불깡통에 맞을 수 있으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또 짓궂은 아이들은 불깡통에 폐타이어나 고무 비닐 등을 넣어서 돌리면 불이 세고 오래 타니 좋지만 검은 연기와 고무들이 녹아 날려서 사람에게 맞게 되면 화상을 입기에 원성을 사기도 한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다.
저 건너 마을에도 불깡통이 돌고 있으니 모두들 준비가 된 것이다. 큰 형들이 앞장서고 작은아이들이 따라나서 마을 경계 논이나 길까지 나아가면 그 마을 아이들도 그만치 나와있다.
제일 좋은 불을 가진 불깡통을 세게 돌리다 줄을 놓아 멀리 높이 날린다. 그러면 상대 마을에서도 누군가의 불깡통이 날아온다.서로 주거니 받거니 불 세기를 대결을 한다.
한참을 서로 주고받다가 승부가 나지 않으면 이제부터는 상당히 격해진다. 돌을 주워 서로에게 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서로의 우위를 내세운다.
이렇게 한참을 하다 보면 누군가는 박이 터지고 누구는 옷이 타고 어느 아이는 울고 있다. 한참 심해지면 어른들의 큰 목소리가 논을 가로지른다.
“이놈을 고만해라—” “동네 다 타것다-”소리가 나면 이제 각자의 마을을 향해 돌아선다. 마을 앞으로 와 서로를 불빛으로 비 추워 보면 볼만하다.
꼬죄죄한 몰골에 콧물은 말라 붙었고, 검댕이로 얼굴 한켠은 시커멓고 옷은 불똥에 구멍이 났고 누구는 까까머리 한쪽이 타버려 파마를 했다.모두 한 곳에 모여서 남은 나무를 모두 넣고 다시 힘차게 불깡통을 돌린다.
마지막 힘까지 다해 불을 살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멀리 높게 불깡통을 날려 보낸다. 부웅부웅 하며 돌던 불깡통이 불통으로 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불을 보고 있으면 별똥별이 날아가는 것 같다.
땅에 떨어진 깡통이 땡그렁하고 굴러가는 소리가 나면 이제 모두 집에 돌아가야 할 신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