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에세이
내가 이렇게 말하면 클리닉에서 환자들은 웃는다. 그러면서 다들 끄덕인다. 어느 외국 웹툰에서 사람들을 실내식물에 비유한 걸 (We are houseplants) 봤다. 하지만 그 만화의 풍자는 우리에게 햇빛과 물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동물과 식물의 차이점은 스스로 움직이는 데에 있다. 우리는 문명의 이기에 의존해 어느덧 좌식생활(sedentary lifestyle)에 길들여져버렸다. 자동차, 엘레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대부분 현대인들은 운동부족에 시달린다. 오죽하면 의사들 학회에서, 앉아서 지내는 생활습관을 "제 2의 흡연"으로 규정했을까. 그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뜻이다. "운동하셔야죠?"하고 물어보면 대개는 "아.. 그렇죠.."하면서도,그렇게 못하는 이유들을 댄다. "시간이 없다"가 가장 흔한 이유다. 요새는 등록한 헬스장이 닫았다는 등 시국을 감안해서 들어야 하는 말도 있지만. 가장 나를 할 말 없게 만든 건 "그건 제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에요!"라는 답변. 이럴 땐 아쉽지만 참 대책이 없다.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우선순위의 문제이지 않을까요? 어떻게든 먼저 해야 하는 일로 운동에 시간을 떼어보세요." 이렇게 설득하면 잘 하는 분들도 꽤 있었다.
직장인의 경우에 점심시간에 산책하기, 조금 먼 데 주차하고 걸어오기등이 실천율이 높았다. "무슨 운동을 하면 좋을까요?" 물어보시는 분들에겐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걸로,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좋은 운동이에요."하고 답한다. 용두사미나 작심삼일이 안되려면 필수다. 대개 의사들은 "걷기, 자전거타기, 수영"을 권해왔다. 안전한 운동이어서다. 하지만 자전거도 요새는 실외에서 부상의 위험이 있고, 오래 타면 허리에 부담이 간다는 논란이 있다. 길에 굴곡이 있으면 아무래도 진동이 허리에 전해질 것 같은데, 정형외과 의사들도 이 부분은 의견이 엇갈린다고 들었다. 수영은 요새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를 쓸 수 없으므로 제외하면, 결국 걷기만 남는다. 뭔가 내가 대단한 운동을 제안해 줄 걸로 기대하던 환자들은 실망한 눈치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분들은 비교적 이것저것 잘 한다. 댄스, 등산, 홈트, 조깅...
실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집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분들이다. 쉽지 않은 걸 알기에.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안 하게 되기 일쑤다. 실내자전거는 빨래걸이, 비싼 홈트 기구는 애물단지.. 한두번 들어본 말이여야지 말이다. 잘 하는 분들은 스텝퍼, 훌라우프 같은 간단한 것도 꾸준히 하면서 좋은 경과를 보인다. 그 분들의 혈당수치나 콜레스테롤 수치 개선을 내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터에서 관리자 위치에 있는 분들이 바쁘기는 하지만,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운동이 꼭 필요하다. 정말 시간이 없다는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 경영자) 한 분에게 "운동화 한 켤레 사시고 계단 오르기 하세요" 조언을 드린 적이 있다. 다행히 이 분이 진지하게 실천을 바로 하셔서 몹시 뿌듯했다. 안 떨어지던 당화혈색소(당뇨 환자의 혈당 정밀검사 수치)가 안전 지대로 내려올 때의 그 보람이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 그 분께서 직장은 사무실이 15층이라 힘들지만, 집은 7층이라 딱 좋다고 하실 때, 체력이 늘으셨구나 싶었다.
여담인데 내가 일본 고베에서 열린 완화의학회에 초청받아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오사카 지진으로 여파가 고베까지 미쳤었다. 지진이 나니 엘레베이터부터 멈췄다. 호텔 14층인가 묵었었는데 난감했다. 하필 출국날이라 지체할 수가 없던 것. 계단을 오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놀란 건 나이에 상관없이 숨을 헐떡이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는 것. 그걸 보면서, 그나마 내가 필라테스라도 계속 했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재난이나 사고가 닥치면 개인의 체력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나 역시 원래 운동을 꾸준히 했던 건 아니었다. 아이들 둘 키우면서 병원 일에 학회일, 연구까지 늘 시간이 모자랐다. 전임의때는 스포츠의학을 심도있게 공부했어서, 이론은 잘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지를 못하고 있었다. 헬스클럽, 스쿼시, 수영 여러 곳에 등록하고도 못 나간 적도 부지기수.
하지만 수년전에 학생연구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현듯 운동을 하고 싶어졌다. 의전원생인데,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학생이었다. 행복 심리학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월급이나 사회적 대우가 똑같다면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고. "작가, 요리사, 유치원 선생님.. 해양구조원!” 내가 생각해도 의외인 ‘해양구조원’이야길 하니 왜 그게 하고 싶냐고... “멋있어 보이지 않아? 나 초등학생땐 수영선수도 하고 싶었는데.. 아 정말 운동해야 하는데..." 그때 그 학생이 "그럼 그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인 거에요."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 뭐 그런 뜻이었다. 그래서 응원을 받으면서 핫요가를 시작했었다.
처음 운동을 마치고 따뜻한 바닥에 누워서 호흡명상을 하는데, '이 좋은 걸 왜 이제 왔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날씨가 더워지면서 그만 두었지만. 요가하는 사람들이 필라테스도 많이 한다고 해서, 동네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갔다. 요가보다 근력운동이 더 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자세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해주어서 좋았다. 필라테스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만성적이던 어깨통증이 좋아졌다. 필라테스는 코어근육이라고 해서 복부와 허리근육을 강화하는 데 촛점을 둔다. 이 부분은 신체를 지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파워하우스라고 불린다. 처음엔 물론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피할까 궁리하며 일부러 15분씩 늦게 가기도 했었다. 지금은 즐겁게 하고 있으니, 반복과 지속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맞다.
최근엔 걷기를 즐겨한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 걷다보면 바람결에 스트레스도 날려가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논문이 풀리지 않을 때, 병원 주위 캠퍼스를 한 바퀴 걷고 다시 연구실로 들어와 앉았더니, 막히던 문장이 다른 각도로 생각되어, 매끄럽게 씌여진 경험도 있다. 캠퍼스 조경 덕에 철마다 바뀌는 형형색색 꽃과 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건 덤이다. 굳이 캠퍼스가 아니더라도, 근린 공원도 요새는 잘 꾸며놓은 곳이 많다.
밖에서 걸으면 햇빛을 쬐는 이점이 있다. 햇빛은 피부와 눈을 통해 직접 닿으면 뇌의 세로토닌 수치를 높여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말 그대로 마음까지 밝아지는 셈이다. 낙천적인 남유럽인들과 어딘지 음울한 북유럽인들을 비교하면 일조량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얼마 전 만난 임상심리상담사에게 의하면, 걷기가 일종의 마음챙김(mindfullness)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것은 '현재 그리고 여기에 머무는 마음상태'를 말한다. 걷기가 좌 우 밸런스를 맟추기 때문인지, 스트레스 관리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쯤되면 걷자생존(적자생존의 패러디)이 아닐 수 없다. 걷기에도 핑계는 있다. 비가 와서... "우산 쓰고 편한 신 신고 걸으세요, 우비와 장화는 어떠세요?” 이렇게 말하면 대개 할 말이 없어 웃는다. 미세 먼지가 한참일 때에, 실외 걷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호흡기 내과 전문의들은 그것 때문에 운동량이 적어지는 게 더 문제라고 우려했었다. 결론은 "마스크 쓰고 운동하라"였다.
걸으면서 좋아하는 음악이나, 유익한 유튜브 강좌를 들어도 좋다. 물론 주위의 자연이 내는 소리에 귀기울여도 좋다. 나뭇잎이 바람에 바스락대는 소리, 새나 매미소리... 모두 마음을 무척 평화롭게 해준다. 주위를 유심히 관찰해 보자. 매일이 매일같지만, 실은 그게 아님을 깨닫고 놀랄 지 모른다. 풀과 나뭇잎은 조금씩 자라서 연두색의 끝이 나오고 있다.
걷는 시간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그날의 날씨에 따라 주위 환경의 채도와 명도는 다르다. 걸으면서 내 위치에 따라 주위 경관이 조금씩 각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껴보라. 입체시는 대부분의 사람이 타고 나지는 않지만, 이것도 훈련에 따라 발달한다. 같은 공원, 같은 거리가 내 움직임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구도를 보여주는 걸 감지하면, 고감도 카메라의 파노라믹 뷰가 부럽지 않을 수도 있다.
(사진은 free wallpaper site에서 캡춰)
최근 책 소개하는 유튜브에서 듣고, 기억에 남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두가 내 선택의 결과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습관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길들여진 것으로 금방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서가 취미가 아니고 지식인에게 필수이듯, 운동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수이다. 하지만 운동을 못한다는 경우, 그것 역시 본인이 "안 하기"를 선택한 것임을 떠올리면 어떨까. 안 했던 습관이 오래되었을 수록, 관성의 저항은 클 것이다. 그래도 정성을 들여 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뗀다면, 몸과 더불어 마음이 건강해지는 보답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