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키우기의 시작은 오래된 블로그 이웃께서 모종을 엄청, 그저, 선물로 보내주시면서 시작됐다. 살아남은 고마운 아이들도 있고, 실수와 관심 부족으로 사라진 아이들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도전하면서 저번 주도 또 꽃을 사러 갔다. 베란다에서 바깥공기를 쐬며 쑥쑥 자라는 식물들이 아이 보듯 예쁘다. 꽃이나 나무를 키우는 방법도 잘 모르는 초보가 흙을 만지고 꽃이 피고 새로운 잎사귀가 나는 것이 신기하고 좋아서 자꾸 화분, 과소비가 계속되고 있다.
비가 온다. 베란다에서 아기자기 꽃들을 보며 동네 새로 생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게다가, 19도의 공기와 약간의 바람이 곁든 커피는 맛있다. 꽃을 만지고 들여다보고 말을 건넨다.
목이 마른 지, 아니면 흙이 너무 축축한지, 혹시 화분이 작아 갑갑하진 않니?
그리고 세상에, 제라늄 꽃이 떨어진 자리에 씨앗 같은 게 생겼다."아고, 수고했어, 잘했어."
분명 혼잣말인데 이 아이들과 대화가 되는 듯한 기분, 난생 첫 경험에 들뜬다.
탕후루 가게 옆 꽃집에서 산 꽃들
2주에 한 번은 꽃집에 가서 꽃을 샀는데, 알고도 샀지만 너무 빨리 시든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부천역에 나가 떡볶이를 먹고 오락실에 갔다가 꽃집에 들린다. 꽃이 좋아서, 매일 꽃을 보고 싶어서 발걸음은 꽃집으로 향하는데,
"엄마, 꽃을 꼭 사야 해요? 탕후루 3개가 더 낫겠어요."
아이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으로 꽃집 옆 탕후루 가게를 아련하게 바라본다. 그래도 꽃은 포기할 수 없어. 나에게는 탕후루와 맞먹는다고.
그러다가 이번 주말에 튤립을 잔뜩 샀다.
그것도 열 개나!
남편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베란다로 나가 튤립을 심어준다. 베이지와 핫핑크로 색깔을 교차해서 심었다. 나란히 심을까, 지그재그로 심을까 많이도 고민했다. 신기했다. 뭘 먹을까, 뭘 입을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꽃을 어떻게 심을까,를 고심하는 우리. 결정장애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큰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툭, 말한다.
"그냥 교대로 심어요. 그게 더 나아요."
"오, 그런 거 같아. 너의 말이 맞는 것 같아."
튤립을 심었더니, 비로소 완전한 봄이 찾아왔다. 이 기분은 뭐지? 매일매일 너를 바라보면서 봄 내내, 생각지도 않은 이 기쁨을 누릴 수 있겠다. 살아보니, 튤립 너처럼 세상엔 예쁘고 아름다운 게 참 많은데 왜 이제껏 모르고 살아왔을까.
쉬는 날이면 베란다에 몇 번씩 왔다 갔다 한다. 꽃 때문이다. 왜 이렇게 나를 궁금하게 하는지 자꾸 보게 하는 꽃들. 아니면, 정말 말을 거는 건가. 주의해야 할 점은 방충망을 열고 베란다를 오고 갔더니 세상에나, 집에 말벌이 들어왔다. 들어온 줄도 몰랐는데 빨래 속으로 들어가 벌이 잉잉거리고 있었던 것. 아이가 내복 입을 때 진짜 큰일 날뻔한 웃지 못할 일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항상 문단속을 잘한다.
빨란 튤립이 너무 빨리 핀다고 투덜거리는 사이, 노랑이가 벌써 올라오고 있다. 튤립은 참 이리도 빠르구나. 연한 노랑, 혹은 베이지색으로 알고 샀는데 피는 걸 보니 샛노랑이다. 빨강도 핑크인 줄 알았는데 새빨강이고, 어느새 베란다가 봄이 됐다. 예상하지 못한 천연의 색깔들은 인스턴트와는 전혀 다르다.
사랑스러워. 새빨강과 샛노랑의 너희들.
'누이가 아름다워 가을이 왔다'는 시 구절을 예전에 읽고, 참 오버다. 싶었는데 꽃이 여기저기 베란다에서 피는 걸 눈으로 목격하고 나니 꽃 때문이 봄이 왔다는 걸 알겠다. 아침저녁 찬바람을 맞고, 오후 내내 햇빛을 받으면서 키가 자라고 잎이 나고, 자신의 꽃색을 찾아간다. 삼한사온은 신의 섭리였어. 나는 지금 '삼한'을 지나 '사온'의 시작에 있는 걸까. 10년 여의 나의 '삼한'은 참 모질고 시렸다. 그래도 좋다. 지금은 글을 쓸 수 있어서.
키우면서 제일 만족스러운 건 유칼립투스다. 꽃다발에 한 줄기씩 넣어 팔던 유칼립투스를 직접 키워보니 여간 예쁜 것이 아니다. 쌀알만 한 잎사귀가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한참 말을 건다. 내 모습을 보더니 아이들이 "엄마는 우리보다 꽃이 더 좋은가 봐."하고 토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