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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멀리 보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몰아치거나 무리하지 않는 삶

by 레마일

고요한 주말 새벽, 지하철 역에 내려 남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무수한 생각에 잠긴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주로 미래 계획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20년 치의 인생 계획표를 지니고 다니면서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앞에 놓아져 있는 작은 돌부리 하나 보지 못해 넘어졌고, 돌이켜 본 계획표는 모두 엉망이 되었다. 미래를 위한 세밀한 계획이 있기에 멀리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갈매기의 꿈

한 분야에 준전문가적 지식을 쌓았다고 생각했다. 20대 중반, 정말 바닥부터 시작하여 진심으로 배우고 도움이 될만한 것은 빠짐없이 기록하며 공부하고 연마했다. 처음에는 관심보다는 반감이 가득한 분야였는데, 직접 생산라인에 투입되고 버리는 자재로 공부한 지 반년이 넘으니 흥미가 생겼다. 그 후, 생산, 시공, 영업, 물류, 그리고 파생되어 있는 분야까지 수년간 경력과 경험을 쌓았다. 어렸을 적 읽었던 갈매기의 꿈 주인공인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남들과는 다른 곡예비행을 연습했고, 그 기술이 곧 나만의 경쟁력임과 동시에 조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사회는 차갑고 냉정했고, 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과는 다르게 나만의 곡예비행을 내려놓아야 했다.

너무 이상적인 계획과 뜨거운 열정은 나 자신을 깎아가며 나아가게 한다. 한동안 진통제에 의지한 채 버티고 나아가고를 반복하니 더 날 수도 날고 싶지도 않았다.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은 내가 바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변심으로 돌아왔다.


멀리 보는 연습

내 계획은 원대하면서 세밀하게 짜여 있었을 수 있으나 그 계획을 행함에 있어 멀리 쳐다보기만 했지 오늘만 보고 사느라 미래를 위한 행동은 없었다. 오히려 언제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리하게 지내던 나날을 오래 버텼다. 폭주기관차 같던 나는 기존의 내가 했던 연습을 버리고 남산을 오르며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남산의 일출을 보면서 멀리 보는 걸 다시금 마음속에 새긴다.

나만의 새로운 길은 내일을 생각하며 무리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남산을 오를 때에도 정해진 스피드로 천천히 오른다. 내일이 있어 나의 행동을 미루는 것이 아닌, 인생을 멀리 내다보고 무리하지 않고 올라가는 연습을 했다. 혹여나 넘어지더라도 그에 따른 대비를 해두기로 했다. 기만 하는 것이 아닌, 미래를 위해 체력을 비축하고 실현을 위한 투자를 시작했다.

나는 새롭게 비행하는 법을 터득하고 새로운 분야에 적응 중이다. 더 이상 무리를 하지 않으니 여유가 생겼고 여유가 생기니 조급함이 사라졌다. 조급하지 않으니 전보다 더 멀리 보게 된 것 같다. 혹여나 예전의 습관이 나오려 할 때면 직관적인 성향인 나는 실제 남산 정상에서 직접 멀리 보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다시금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나만의 곡예비행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 꾸준히 연마하기 시작했다.


멀리 보며 나아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그저 무리하지 않고 미래의 방향만 크게 들어지지 않는 선에서 내 방법대로 꾸준히 연습해 보는 것이다. 오히려 세세하게 정리되어 있던 20년 계획표보다 꿈의 실현이 한 층 더 가까워졌고 뚜렷해졌다.


나는 멀리 보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무리하지 않는 나만의 곡예비행은 더 높게 날게 하며 더 멀리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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