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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받아들이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연습

by 레마일 Jan 22. 2025

1년 2개월 남산을 오르다 보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았다. 폭설로 인하여 버스 운행이 중단되었던 적도 있고, 지난여름의 러브버그 출몰과 주말에 수많은 인파로 인한 버스 탑승의 어려움 등, 번거로움과 변수로 인하여 남산을 오르지 싫었던 적도 있다고 고백하고 싶다. 참 신기한 건, 그러한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마음은 그러한 변수에 잘 받아들이며 '그러려니'하는 이해심이 생겼다. 그 후, 어떠한 변수가 생겨도 이젠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덤덤히 넘기며 내가 올라야 할 길로 향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정해진 계획과 변수

즉흥적인 걸 좋아하던 나는 군복무와 사회생활을 통해 180도 바뀌었다. 먼저, 철두철미하게 시간 약속이 유독 중요했던 곳에서 군복무는 지금까지 늘 약속 시간 15분 전에 항상 도착하는 습관을 가지게 해 주었다. 또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너무나 많이 겪었던 터라 늘 계획을 세운다. 정해진 틀 안에서 계획을 따라가는 것이 익숙해졌고, 그 길만이 행복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인생은 절대 100%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게 인생의 묘미임과 동시에 진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획을 따르는 내 방식을 고수했다.

계획이 틀어지는 걸 유독 남들보다 싫어하고 틀어짐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한 성향으로 변수에 대해 더 당황하는 나였고 대처가 늘 미흡했다. 변수 자체를 싫어하다 보니 정해진 계획이 잘 실행될 수 있는 길로만 왔던 것도 이제야 고백한다. 어쩌면, 내 뜻대로 삶을 조종하려던 나의 오만함과 안정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나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수년간 내가 몸 담아왔던 분야를 떠나고 내려놓으면서 그러한 계획에 대한 강박은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남산을 오르면서 경험한 것들을 통해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틀어지는 상황에 받아들이는 자세

남산을 오르기 시작한 초반에는 늘 시작과 동시에 동선과 시간을 확인하여 대략적으로 머릿속에 예상 시나리오를 늘 그렸다. 정상을 오르면 약 몇 분이 소요되고,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집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이미 머릿속에는 남산을 오르는 철저한 계획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와 있고, 그걸 실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게 2가지 사건을 통해 철저한 계획 속 틀어짐을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난여름, 손을 휘저으며 벌레를 이리저리 피해 오르던 남산의 여름은 유독 오르기 쉽지 않았다. 러브버그의 출몰은 사람들의 혐오감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앞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벌레가 많아 남산을 당분간 오르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만, 결국 일정 시기를 지나가면 더 이상 출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묵묵히 오르기를 반복하였다. 늘 그렇게 계획이 틀어지지 않게 남산을 오르는 와중 늘 주말에는 새로운 변수와 마주할 수 있었다. 주말에는 관광객들의 수많은 인파로 내려가는 버스를 거의 탈 수 없었다. 내려가는 건 더 오래 걸리고 허리에도 부담이 가기에 늘 버스를 선호하지만, 주말에는 기다림에 지쳐 역까지 걸어 내려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예전의 나였다면, 다른 시간대를 피해서 남산을 오르거나 버스를 타지 못하는 날에는 아예 남산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해하기 시작했고, 변수에 대한 너그러움이 생겼다. 벌레가 출몰해도 잠시 지나면 또 사라지리라 믿으면서 그저 내 길을 간다. 주말에 수많은 버스 대기라인을 보며 미련 없이 내리막길로 향한다. 그 어떤 돌발 상황에도 더 이상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생각지 못한 상황을 예전과는 다르게 편하게 받아들이면서 사회생활에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조금 가질 수 있었다.

주말이면 남산에 수많은 인파로 버스를 타지 못하는 돌발상황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러려니'하기

물론, 아직까지도 모든 변수를 완전히 너그럽게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고, 아직까지도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도 예기치 못한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현저히 줄었다. 계획에는 늘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하기 따름이고, 그 변수를 어떻게 대처하고 나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고 현명함이 아닐까 싶다.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다 보니 인생의 시간도 예전만큼 빠르게 흐르는 것 같지는 않다. 너그러움에 시간까지 느려지니 요즘은 보지 못했던 인생의 풍경을 보고 즐기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의 차이가 나 자신을 유하게 해주는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고, 새로운 상황에도 잘 대응하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받아들이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받아들임으로써 이제 너그럽게 상황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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