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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Oct 12. 2023

알코올 중독자의 딸

내겐 너무 버거운 일상

우리 집은 복도식이었다. 내 방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복도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나에게는 마법 같은 능력이 있었다. 수많은 발소리 중에 정확하게 엄마 발소리를 찾아내는 능력. 오늘따라 그 소리가 좀 다르다. 현관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알림음에 혹시 하던 마음은 확신이 된다. 엄마가 술을 마신 날이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버린다. 이럴 땐 자는 척이 상책이다.


나는 술을 참 싫어한다. 정확히는 술 취한 사람을 싫어하는 게 맞겠다. 이혼 후, 엄마가 술을 찾는 날이 늘었다. 어쩌다 한 번, 그러다 종종, 어느새 술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 됐다. 병원에 데리고 가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내 눈에는 알코올 중독자임이 분명했다.


엄마는 적당히 마시는 법을 모른다. 그녀의 혀가 베베 꼬일 때쯤 내 뇌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온몸의 세포들이 비상사태임을 알린다. 이제 잔뜩 뭉개진 발음으로 똑같은 말을 수십 번 반복할 타이밍이다. 신세 한탄을 늘어놓겠지. 곧 심드렁해진 내 얼굴을 보며 "내가 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원망을 뱉어낼 것이다. 인생은 예습이 불가능하다더니 어째 복습에게는 관대하다. "아, 제발 그만 좀 해라!" 결국 언성이 높아지고 만다. 오빠는 이 상황이 지겹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컴퓨터 앞으로 가 헤드셋을 낀다. 게임이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이런 순간에 나에게는 도피처가 없다.


만취한 엄마는 종종 신발장에서 잠들었다. 부모가 돼서 저렇게 한심하게 살 수가 있나. 바닥에 꼬꾸라진 그녀를 보며 나는 기필코 저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곤 했었다. "본인도 내일 아침에 눈떴을 때 여기서 잤단 걸 알아야지. 그래야 자식들한테 쪽팔려서라도 덜 마시겠지!" 내 만류에도 오빠는 꼬박꼬박 엄마의 신발과 외투를 벗겨 침대에 데려다 놓았다. 어쩐지 나만 못돼 처먹은 딸년이 된 것 같다.


어느 날은 아파트 마당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와 보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는 엄마가 보인다. 설상가상 꼭 그런 날은 오빠가 집에 없다. 잠깐의 고민 끝에 엄마에게 향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숙덕거린다. 지기 싫어 괜히 한소리 뱉어본다. "술 취한 사람 처음 보세요? 뭐 재밌는 구경 났다고 쳐다보노!" 대찬 목소리와 달리 마음속은 새까맣게 지져진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 엄마는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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