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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Sep 24. 2024

허송세월

의정부 투하츠 베이커리


주말을 맞아 아이들과 의정부에 있는 미래과학관에 들렀다.

천체 투영실을 예약 접수하고 다른 전시관도 둘러보기로 했다. 

(경기도교육청미래과학관 북부)


좀 더 어릴 때 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중1 아이가 접하기엔 너무 커버렸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있다면 추천. 


의정부에서 괜찮은 카페를 찾아봐달라고 아이에게 부탁했다. 

메뉴와 리뷰를 찾아보더니 내게 링크를 보내왔다. 

범위를 두 곳으로 좁혔는데 이곳 <투하츠 베이커리>와 <아나키아>를 추천했다.

이미 <아나키아>는 지난번에 갔으므로 <투하츠 베이커리>로 정했다.  

https://brunch.co.kr/@noana/177


과학관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 주차장에 자리가 있어 주차를 하면서 본 카페의 외관이 참 예쁘고 멋져 보였다. 



큰 창으로 둘러 쌓인 벽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한 표면을 갖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의 문 역시 빈티지 느낌이 강했는데 옆에 갈라진 벽은 인테리어인지 풍파를 겪은 흔적인지 독특했다. 







천장은 높고 환했다. 

유명한 카페는 늘 그렇듯 사람들이 가득했다. 

자리가 없어 중앙에 있는 테이블을 붙여서 앉아 있다가 직원이 창가 자리로 안내해 줘서 기분 좋게 옮겼다. 

자리가 없어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았던 건 다 이 직원분 덕분인 듯하다. 

어찌나 친절한지 테이블을 닦는 동안 서서 기다리는 게 재촉하는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빵을 만드는 곳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직접 이곳에서 만드는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벽돌 그대로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창처럼 만든 게 독특했다. 


중앙에 있는 포토존

들어가자마자 포토존이 보인다. 

우리가 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며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권하니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아쉽지만 포토존만 찍었다. 




포토존을 지나 밖으로 나가는 길을 따라면 이런 작은 분수대와 야외 테이블이 있다.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으나, 동전도 보이는 걸 보면 이벤트 장소가 아닐까 싶다. 


아이가 찍은 사진. 엄마보다 낫다. 





이번에 읽을 책은 김훈 작가의 [허송세월]이다 

지난번 교보문고에 들렀을 때 눈에 띄어 산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허송세월을 보낸 것 같다. 


시그니처 라테를 주문해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찍으니 빨간 테이블의 강렬함이 하얀 표지를 더 드러나 보이게 한다.



워낙 대작가의 산문집이다 보니 글쓰기에 대한 내용들도 꽤 많이 나온다. 


주어와 술어를 논리적으로 말쑥하게 연결해 놓았다고 해서 문장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주어와 술어 사이의 거리는 불화로 긴장되어 있다. 이 아득한 거리가 보이면, 늙은 것이다. 이 사이를 삶의 전압으로 채워 넣지 말고 말을 징검다리 삼아 다른 말로 건너가려다가는 허당에 빠진다. - 말년, p39


요즘 밤에 책을 읽으면 노안 때문인지 글씨가 흐릿하게 보일 때가 있다. 

정말 주어와 술어 사이의 거리가 아득해 보인다. 늙었나 보다. 


작가는 일산이 거주지인지 호수공원에 대한 언급은 종종 나온다. 

호수공원에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나도 저녁에 한 번 그곳에 가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빛이 사라지면 색은 보이지 않는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색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색은 빛을 따라서 사라졌다가 빛이 돌아오면 다시 깨어나는 것인지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내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까닭은, 내가 눈으로 사물을 볼 수밖에 없고 이미 본 것에 의지해서 보는 중생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 허송세월, p47


 책 속에 끼워져 있는 엽서를 보고 따라 그려 보았다.


작가는 꽤나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걷기만큼 건강에 도움을 주는 운동은 없을 것이다.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운동 중 하나라 하면 좋으련만 귀찮음이 지배하는 정신을 가진 자라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하면서도 아직 자리에 앉아 있다. 


돈이나 수고가 드는 것도 아니지만, 이 직접성의 행복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일상성(속도, 능률) 속에 매몰되어 있다. 
개를 데리고 새벽 공원을 달릴 때 나는 때때로 그 직접성의 행복을 느낀다. -걷기 예찬, p130


정약용, 정약전, 이승훈 등 조선 천주교 신앙의 선구자들에 대한 내용도 잠깐 언급이 된다. 이들이 배 위에서 읽은 '한 권의 책'이 궁금했다. 검색을 해도 정확한 명칭이 나오지 않는다. 이벽의 유작 '성교요지'를 뜻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유배를 와서 물고기들을 관찰해 <자산어보>라는 작품을 쓴 정약전은 섬의 주민과 어울리며 어부의 자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지난 여름 방학에 방문한 실학박물관에 '자산어보'에 관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가보시길.

https://silhak.ggcf.kr/exhibitions/49

 

1인칭과 3인칭 사이에 '너'가 있음으로써 인간은 복되다. 3인칭을 2인칭 '너'로 변화시켜서 끌어당기는 몸과 마음의 작용을, 쑥스럽지만 '사랑'이라고 말해도 좋다. 잘 드러난 3인칭은 대상으로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너'가 되어서 나에게로 다가온다. - 박경리, 신경림, 백낙청 그리고 강운구 -, p259


이미 작고한 작가의 사진도 실려 있다. 어디서 잘 보지 못한 사진들이다. 거대해 보이던 작가의 죽음은 일반독자에게도 슬프게 다가온다. 작가가 떠난 후 남긴 <토지>를 읽으며 다시 그 세계로 빠져들기도 한다. 

김훈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글이 전시회에 걸린 사진 전체에 미치지 못한다고. 겸손의 미덕을 어디까지 펼칠 셈일까?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의 겸손함 아래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내 욕망을 잠재워야겠다. 


나는 말에서 태어난 말을 버리고 사람과 사물에게서 얻은 말을 따라가기에 힘썼다. 나는 나의 언어가 개념에서 인공 부화된 또 다른 개념들의 이어달리기에서 벗어나서 통속을 수행하기를 바랐다. - 새와 철모, p330



평생을 글을 업으로 쓰고, 취미로 쓰고, 쉬면서도 쓰는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정치, 사회적 관념을 떠나 인간으로서의 작가의 신념을 알 수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많은 작품들이 쌓이고 그 높이만큼 세월도 흐를 테지. 

책표지에 그려진 그림처럼 먼 산을 바라보며 정자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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