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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댓국 주세요, 순대는 빼고요.

by 이연숙 Jan 24. 2025



뭔 말인가 했었다.

그럴거면 차라리 돼지국밥을 먹지 굳이 순댓국을 시키면서 순대를 빼라는건지 알 수 없었다.


밥하기는 귀찮고 딱히 떠오르는 메뉴는 없을 때 K와 나의 생각이 일치하는 메뉴는 순댓국이다. 

그런데 순댓국집엘 갔어도 주문하는 메뉴는 또 각각 다르다.

순댓국집이니 순댓국을 주문하는 나와는 달리 K는 그 집에 내장탕이 있으면 내장탕을

소머리국밥이 있으면 그걸 주문한다.

뜨거운 국물에서 건더기를 먼저 건져 새우젓에 찍어 먹는데 순댓국을 잘한다는 집일수록

순대보다 고기가 너무 많아 그걸 먹는 것이 영 괴로웠다.

순댓국이니 순대만 주면 좋을텐데.

가끔은 K도 순댓국을 주문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서로 분주하게 젓가락질이 바빠진다.

나는 귀찮은 고기등 부산물을 K에게, K는 순대를 내 그릇에 놓아준다.

고기보다 순대의 양이 서운할 만큼 적지만 그래도 내게는 매우 흡족한 거래였다.

이 후로 식당에 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소심하게 K도 순댓국을 주문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대만’ 이라고 메뉴판에는 없는 주문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 얘기다.


집 근처 대형 건물에 순댓국집이 들어왔을 때 몇 번인가 그 곳에 갔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종업원들은 적당하게 친절했고 새로 생겼으니 당연하겠지만 청결상태도 양호했는데 무엇보다 순대가 식용비닐이 아닌 토종순대였다.

주인이 알아보든 아니든 우리는 나름 단골이 된 기분이 들어 어느 날엔가 주문을 하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혹시 하나는 순대만 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봤자 되거나 안 되거나 둘 중 하나지 뭐,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혹여,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면박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각오까지 했는데 직원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토종하나, 순대만 하나라는 거죠?”


뭐 이렇게 쉽냐 싶어 다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순대만 줄 수도 있어요?”

“순대만, 으로 하면 고기는 안 들어가고 순대가 열 개 들어가는 거예요.”

“아.. 네에..”


메뉴판에 표시가 되지 않았을 뿐 ‘순대만’이라는 음식은 이미 널리 이용되고 있었던 거다.

그 이후로는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하는 소리가 속속 들렸다.


“순대만 둘, 토종 하나요.”

“순댓국 네 개 주시는데 하나는 순대만요.”


브런치 글 이미지 1


오늘 점심에는 갈비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었다. K는 해장국을 먹고 싶다고 했다.

막 직장인들 점심시간이 시작돼서인지 해장국집에 벌써 대기줄이 길었다.

탕이든 국이든 국물이 있는 음식은 어차피 내 선택이 아니니 K에게 다음은 어디로 갈까? 물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결국 순댓국집으로 가기로 했다.

입주한 지 이제 2년차로 접어드는 건물 안에 그 사이 폐업한 식당들도 몇 곳 되는 와중에

그래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당은 주로 밥집들 이었다.

2인 테이블에 앉았다. 뜨거운 순대를 꺼내 식히면서 먹고 있는데 옆테이블 여성 손님 둘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무심코 그들이 앉았던 테이블을 보니 밥그릇 뚜껑에 건져놓은 부속고기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그도 아마 나처럼 고기가 싫었나보다.


“에이, 그러면 순대만으로 시키지.”


K가 웃었다.

그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순댓국 짬밥좀 되는 것 같다.

진작 물어볼 걸 그랬다.

고기에 붙은 비계도 싫고 오독뼈가 씹히는 것도, 잘 안 씹어지는 내장도 싫은데 그걸 그렇게 오래 참고 그냥 먹었던 거다.

순댓국집에 가면 순댓국집 법만 따라야하는 줄 았았다.

뭐 어떤가, 스테이크 집에서 짜장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이탈리아 식당에서 떡볶이 달라는 것도 아닌데.

눈치를 보기전에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먼저 알면 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언젠가 들었던 이상한 주문이 떠올랐던 거다.


“순댓국 주세요, 순대는 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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