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밝은 애인아_ 14
아무도 모르게 키우는 나무
아무도 모르게 키우는 나무
나는 아무도 모르는 나무를 한 그루 키우고 있습니다. 처음 나뭇잎이 팔랑팔랑 내게 날아들었을 때 나는 아름답게 물든 이 갈색잎을 두꺼운 책속에 끼워두었습니다. 잘 펼쳐보지는 않는 책이었죠.
시간이 구름처럼 흐른 어느날, 문득 펼쳐본 책 속에서 나는 그 나뭇잎을 다시 보았습니다. 색은 좀 죽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갈색잎입니다. 나는 그 잎을 내가 아끼는 수반 위에 띄워놓았습니다.
바싹 마른 잎에 물기가 스며들더니 잎맥이 되살아나고 붉그스레 색도 살아납니다. 생생해진 나뭇잎은 잎자루 끝에 가는 털실 같은 뿌리를 내렸습니다.
뿌리가 소담하게 무성해졌을 때 나는 그 잎을 촉촉하고 부드런 흙속에 심었습니다. 잎이 숨을 쉬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고른 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나는 매일 나뭇잎이 자라는 것을 들여다봅니다. 나뭇잎은 쑥쑥 팔을 뻗고 새 싹을 밀어올려 작은 나무가 되었습니다. 가끔은 종알종알 말도 합니다. 어제는 거미와 개미가 다녀갔다고. 오늘은 가는비가 내렸다고.
말라가던 내 마음에 촉촉한 수액이 스며듭니다.
초겨울 들판같던 얼굴에도 윤기가 돌아오고
천천히 몸이 따스해집니다.
나도 가만가만 숨을 쉽니다. 내 몸의 세포들이 하나둘 잠에서 깨어나 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무 하나, 여기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