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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숫자 뒤의 인간 - 3

평가의 덫을 부수는 4가지 철학 처방전

by life barista

숫자 뒤의 심리학

: 평가의 덫을 부수는 4가지 철학 처방전


우리는 지금까지 성과 평가 시스템 뒤에 숨어 있는 과학적 경영관리법과 공리주의 그리고 능력주의를 찾아냈고, 이들을 작동하는 권력을 푸코의 규율사회와 한병철의 성과 사회로 분석했습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 기업의 인사 평가에 담긴 논리적, 권력적 문제점을 이해했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평가 시스템'이 만든 불안과 자기 착취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철학은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4가지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줍니다. 철학적 해결책은 하나마나한 헛소리가 아니라, 평가 시스템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인식, 감정, 행동, 그리고 '멈춤'의 방식을 주체적으로 재설계하기 위한 실천적 도구입니다. 그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식의 전환입니다. 스토아학파의 '통제 분리'는 우리에게 내적 평정심(Ataraxia)을 되찾아 줍니다.

둘째, 감정의 변화입니다. 오캄의 '명목론'은 우리에게 존재적 안정감을 줍니다.

셋째, 행동의 재설계입니다. 푸코의 '자기 배려'는 우리를 규율 시스템에서 벗어나도록 돕습니다.

넷째, 관성적 삶의 멈춤입니다. 한병철의 '하지 않음'으로 성과 사회의 폭력을 멈춥니다.


이제 이 네 가지 철학적 도구를 통해 우리의 '평가받는 영혼'을 해방하는 구체적인 과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인식의 전환: 통제 영역 분리와 '평정심'의 주도권 회복


인식 변화의 핵심은 통제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입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는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리하라"고 가르칩니다. 인사 등급, 회사 평균, 팀장의 평가, 최종 성과 등은 모두 외부에 있으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외부 평가에 대한 '나의 해석과 반응' 그리고 '내가 노력한 과정'입니다. 이것들이 내가 나의 의지와 힘을 집중해 바꿀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평가 등급이라는 외부의 결과가 아니라, '평가에 대응하는 나의 태도'에 모든 에너지를 투자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마음에 평정심(Ataraxia)이 깃드는 첫 순간입니다. 평가라는 외부 조건이 나에게 영향을 주려면 나의 허락이 필요한 것입니다.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죠.


감정의 변화: '존재적 개별성'으로 불안을 해소하다


평가 불안은 남과의 비교에서 나옵니다. 남들보다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은 오랜 기간 같은 일이 반복될수록 분노, 우울, 절망 등 최악의 감정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이때 오캄의 명목론은 평가가 만든 상처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오캄의 명목론은 '보편적인 개념(예: 인간, C등급)'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편의상 만든 이름(명목)일 뿐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개별적인 존재'뿐이라고 주장합니다. 한 대리는 'C등급 인간'이 아니라, 이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개별자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존재적 안정감을 줍니다. 등급은 누군가가 만든 가상 게임일 뿐입니다. 가상의 언어는 현존하는 나를 이렇다 저렇다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규율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푸코적 '자기 배려’


푸코는 규율 권력에 대한 해법으로 '자기 배려'를 제시합니다. 이것은 규율 권력과 정면으로 대결하거나 이를 전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배려는 자신을 관리하고 배려하는 자기만의 삶의 양식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조직과 시스템의 논리에 흡수당하지 않고 나만의 영역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를 푸코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치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회사가 정한 KPI와 전혀 무관한 활동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는 겁니다. 독서, 걷기, 사유의 시간 등이 대표적입니다. 평가와 이익이 개입되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순수한 관계와 대화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입니다.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은 공리주의적 계산과 규율 권력의 개별화 전략에서 벗어나도록 돕습니다.


이런 활동과 시간의 특징은, 회사가 금전적으로 보상하는 활동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에게 삶의 주도권을 줄 수 있는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내 몸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갈아 넣던 몸은 이런 활동을 통해 자기 배려와 돌봄의 대상으로 바뀝니다.



성과 사회의 폭력을 멈추는 한병철의 '행동하지 않음’


푸코의 규율 사회가 '규율'이라는 족쇄를 채운다면, 한병철의 성과 사회는 '무한한 성과 달성'이라는 폭력적인 긍정을 요구합니다. 한병철은 "할 수 있다"는 폭력에 맞서기 위해 '행동하지 않음(Nicht-Handeln)'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성과 사회의 주체는 늘 '더 많이, 더 빨리' 행동하도록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피로와 번아웃에 시달립니다. 한병철에게 진정한 저항은 활동 과잉을 멈추고 사색적인 삶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는 '활동 과잉'을 멈추는 것입니다. 모든 활동을 성과나 효율로 연결 짓는 습관을 멈춥니다. '의미 없는' 행동을 허용하고, 목적 없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는 성과 주체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자기 착취'의 회로를 끊어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나아가 내가 느끼는 깊은 피로를 긍정하는 것입니다. 깊은 피로는 소진하는 피로와는 다릅니다. 깊은 피로는 우리를 사색으로 이끄는 멈춤과 숙고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을 재평가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 당신을 숫자 너머의 주체로 호명하다


우리는 2장에서 성과 평가 시스템이 단순히 경영 효율을 넘어, 테일러주의의 분할 통제, 공리주의의 집단 효용 극대화, 그리고 능력주의의 경쟁 논리가 결합된 ‘숫자의 폭정’ 임을 분석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푸코가 말한 규율 권력을 내면화하여 개인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하게 만들며, 한병철의 지적대로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폭력 속에서 자기 착취를 극대화합니다. 이로 인해 한 대리의 사례처럼 구성원들은 존재적 불안, 소외감, 우울증이라는 병리적 현상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스템으로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때 철학은 우리에게 좋은 전략을 줍니다. 스토아 철학의 '통제 분리'로 외부 평가에 대한 심리적 평정심을 되찾고, 오캄의 '명목론'으로 등급이라는 허상이 아닌 고유한 개별성에 뿌리내린 존재적 안정감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푸코의 '자기 배려'를 통해 시스템과 무관한 나만의 영역을 창조하고, 한병철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끝없는 활동 과잉과 자기 착취의 고리를 끊는 것도 좋은 해결책입니다.


요컨대 수치와 등급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가치와 내적 의미를 회복하는 것은 성과 사회의 불안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할 수 있는 훌륭한 처방전입니다.


[부록: 평가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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