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게 선물한 두 달의 시간은 나를 알게 한 시간이었다. 깊어가는 가을, 나의 마음도 사랑도 깊어만 가길...
두 달 전, 내가 헤어지기를 원한다면 감수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기다림을 못 견디는 나를 배려한 처사였다. 만약 그때 그와 갈라선다면, 우리가 만든 세상이 산산조각 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까, 나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와 함께 할 세상이 다시 올 수도 있을 테니까.
드디어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토록 기다렸건만… 재회가 아닌, 한, 중, 일 국제 아트페어 기획전에 함께 하자는 제의였다. 나는 예전부터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다. 만약 그가 이기적으로 생각했다면, 불가능한 초대였다. 불편할 수 있는 사적인 연고를 떠나 나의 마음을 존중했기에 고심 끝에 연락했다는 걸 나는 알았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의 명확함 없이 다른 일로 마주한다는 것이 나는 온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 주가 또 지나갔다. 두 달만큼이나 길고 예민한 일주일을 보냈다. 우리가 정말 끝인지 알고 싶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의 관계를 그동안 고민해 봤는지 궁금해.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알고 싶어.”
“아직 명확하지 않아.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아.”
“사랑이 느껴지지 않다면, 더 이상 없는 거 아냐? 애쓰지 마.
헤어진다 해도 난 괜찮아. 받아들일 수 있어.”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 말고도 함께 늙어가는 동반자로서 좀 더 깊게 생각하고 싶다고 했다. 본인도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얘기라며 말을 아꼈다. 마지막 여자로서 나만 사랑하면서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는 말로 더 이상 대화는 멈췄다.
그는 늘 그랬듯이 침착하고 별 감정 없이 말했지만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나는 연인보다는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고 싶어.
첫 결혼을 성급하게 결정해서인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네.
실패를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있거든.
그래서 많은 조건을 고려하게 되나 봐.
사랑 외에 그 사람과 내가 얼마나 서로에게 힘이 되는지,
대화할 때 내 마음이 편안한지,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도 상대방의 마음이 변치 않을지.
너무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엉켜있어서 두 달이란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어.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아직 고심한다는 말에, 난 기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뭐 어쩌겠는가? 내게 이토록 사랑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사랑하는 그에게 강요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지 않은가. 육 개월의 시간이 더 늘어난 것을 받아들이며, 그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자신과의 싸움, 나의 진실과의 줄다리기 끝에 버퍼링에 걸렸다. 내 머릿속에는 이 문장만이 맴돌았다.
'상황과 모든 염려, 조건을 뛰어넘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사랑인지 아닌 지 정말 알고 싶다면 최소한의 장애물은 넘어야 하지 않나? 끝내 사랑이 아니었다고 할망정 말이다.'
누군가는 그에게서 고집스러운 태만을 보라고 했다. 그는 물러남으로써 나와의 연결을 끊었다. 내면의 갈등, 혼란을 느끼지 않기 위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사회적 본능의 실현의 방해를 막기 위해- 사랑을 접었다고. 바쁜 일정이 나보다 더 중요한 걸 보면, 얼마나 내가 가치가 없으면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냐며 한심해했다. 나 스스로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어, 돌아가는 상황을 인식조차 못한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말했다. 두 달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을 텐데. 연애는 함께 하는 것인데, 상대의 감정과 시간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고. 사랑은 더구나 감정과 욕구의 본능인데, 아직도 마음을 모르겠다는 것은 이미 그는 몸도 마음도 떠난 지 오래라며. 상대가 하루하루 애타게 기다리는 걸 뻔히 알면서, 이기적이고 잔인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타인의 조언이나 위로는 또 다른 상처를 낳는다. 적당히 그들의 위로를 경계했어야 했다. 하지만 난 이미 침식되었다. 성난 파도처럼 나의 마음은 거칠게 무너져 내렸다.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서로의 기준으로 주장만 하다, 이해불가로 통화는 끝이 났고, 나의 세상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두 달 동안 난 뭘 한 거지? 깨달았다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고… 우주와 하나가 되고, 고요와 자유를 얻었다고… 그렇게 말한 나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아, 이보다 완전한 좌절이 또 있을까? 허망함에 눈물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구름 안에 물을 잔뜩 머금고는 비를 뿌리지 못한 밀운불우와 같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가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는 이유와 증거를 찾기 위해 쏟는 에너지는, 그에게도 나에게도 사실 무의미했다. 선택의 평가는 훗날의 몫이다. 그로 인한 결과의 책임 또한 우리가 감당할 일이다.
지금, 결정적인 순간이 나에게 왔다고 생각했다. 그의 결정은 그의 것이고, 나는 나의 결정을 원했다. 지금이라도 나를 덮칠 것만 같은 벼랑 끝에 서있는 나를 본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Earn this!”
희생이 헛되지 않게 값진 인생을 살아라!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나의 직감을 따르기로 했다. 내가 잃은 것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그와의 친밀감, 연결감, 그것뿐이다. 모든 것을 다 고려해보고, 확신이 들은 후에 선택하겠다는, 그를 인정하기로 하였다. 그의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다시 사랑을 얻었다. 어떤 형태로든 사랑할 수 있으면 되었다.
시간을 공간의 관점으로 넓고 깊게 볼 수만 있다면, 지금 내가 말한 그 말이 변화를 만든다. 지금 이 순간에 갇혀 나는 보지 못한 것이다. 만약 내게 혜안과 통찰이 있다면, 육 개월 후, 아니 그 이후의 삶도 그릴 수 있겠지. 분명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건, 나의 온전한 뜻이다. 그 누구의 의견에도 흔들림 없는 일관된 행동이다.
그와 내가 서로를 향한 헌신으로 온전히 함께 할 때,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순간 우리는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그와 나 사이 사랑은 늘 그곳에 있었다. 진정하지 않던 우리가 사랑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
별 일도 아닌 것에 요동치는 시대는 끝났다. 예전의 나는 그를 통해 나의 정체성-가치 있고 매력적인-이 유지가 되는 줄 알았다. 그가 떠난다는 것은 내가 무가치하다는, 자아가 흔들리는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집착과 에고는 살기 위해 그렇게 붙들고 싶었나 보다.) 그런 사랑을 구하고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나는 사랑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늘 조마조마하고 애달파하는 거라 생각했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온 것일 뿐.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만큼이나 온유하고 관대하다. 그래서 참을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그립다. 그러나 그리워서 힘들지는 않다. 그와 말하고 싶다. 하지만 말하지 못해서 답답하지는 않다. 지금이라도, 성내지 아니하고, 모든 걸 감싸주고, 믿고 참아내고 변함없는 것. 이것이 사랑이란 걸 알게 되어 감사하다.
그가 내게 선물한 두 달의 시간은 나를 알게 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육 개월의 시간은 사랑을 진정하게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