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외면한 지 두 주가 지나고 나는 위태위태해졌다. 여행과 감기, 그리고 폭염 주간이라고 또 달리기는 뒷전으로 밀렸다. 평소 같으면 망했다고 여기고, 늘 그랬듯이 운동을 저 구석에 처박고 살았을 텐데, 이놈의 연재글이 뭔지 나를 압박한다. 연재글은 매주 꼬박이 쓰라고 날아오고, 나는 왠지 그것에 쫄렸다. 어제는 그 어떤 핑계조차 댈 수 없는 시간 낭낭한 저녁이기에 결국 연재글을 쓰기 위해 나는 40분을 채우러 나갔다.
어색한 운동장, 후텁지근한 공기, 깜깜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트랙, 그 무엇도 나를 달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감이 떨어져서 저녁까지 든든히 먹고 나오니, 배가 불러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나기에 도무지 달릴 결단은 내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걷기라도 하자. 여전히 달리고 있는 군단들 사이에 슬쩍 들어가서 나는 런데이를 켜고 걷기 시작했다. 어플은 어느새 7주 차가 넘어가서 나는 20분을 꼬박 달리는 코스를 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난 다시 원점으로 회귀해버려서, 도저히 20분을 꼬박 달릴 수가 없다.
아.. 달리기. 내가 널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루 40분은 걷기라도 하자, 그래서 연재글이라도 연명하자 싶어서 나는 40분을 꼬박 걸었다. 끝까지 달리지 않았다. 아니 달리지 못했다. 너무 더웠다. 걷기만 했는데도 십 분이 지나니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눅눅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전한 운동삼매경 사람들뿐이다. 아이들과 열심히 축구하는 아빠, 웃통 벗어던지고 농구하느라 정신없는 청소년들, 나와 다른 날씨에 살고 있는 듯한 열쩡파 러너 아저씨들, 휴대폰을 보며 열심히 경보를 하는 아줌마들. 체육관에서 들리는 배드민턴의 열기. 나는 점점 더 작아지는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달리기와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초심은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한 연애 프로그램에서 자기소개 멘트가 인상적이어서 기억이 난다. "전 감정기복이 없는 게 장점이에요." 그래. 감정 기복 없어서 좋겠다. 나는 감정 기복도 크고 운동 기복도 큰 사람이라 그런지 저런 멘트를 저리 당당하게 어필한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직장에서 온갖 고초를 겪어도, 집안에서 온갖 고초를 겪어도, 저녁에는 변함없이 달기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꾸준함이고, 감정기복을 잦아들게 하는 요소라면 과연 운동을 건너뛸 수 있을까? 나에게 운동이 그런 존재가 되어 줬으면 좋겠다. 난 틈만 나면 너에게 자꾸 도망치지만, 아직도 너에 대한 환상이 크고,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싶은가 보다.
난 너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