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또 다이어트 주간이야?'
헉.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나는 움찔했다. 맞다. 나는 수시로 운동을 멈췄다가 시작하는 사람이다. 어찌 보면 늘 포기하는 사람 같기도 한데, 다르게 보면 늘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 패턴이 오히려 규칙적이다 보니 나 자신을 '간헐적' 운동주의자라 표현하고 싶다.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시간에 음식을 먹고, 나머지 시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나 역시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운동 주간에는 시키지 않아도 재미있게 운동을 하며 글을 썼다. 연애 초기일 때는 뭘 해도 재미있는 것처럼, 운동 초기에는 달리기 전후의 모든 마음가짐과 내 변화를 느끼고 기록하는 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시간이 지나며 운동을 하기 싫은 주간이 오게 되었다.
그나마 주 1회 연재를 빌미로 이번에는 운태기 (운태기라고 하기에도 부끄럽지만)의 마음까지 적어가며 완전히 끈을 놓지는 못했다.(이거 좀 진일보해서 나름 자랑스럽다.) 그러다가 드디어 운동 주간에 스스로 다시 들어왔다. 참 나란 인간은 신기하다. 싫을 땐 쳐다보기도 싫다가도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 발로 걸어 돌아온다. 그래서 오늘은 달리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되었던 여전한 삼복더위지만, 왠일로 운동화 끈을 묶고 정말 오랜만에 달리러 나갔다.
스스로 걸어 들어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그 루틴 속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행복함이 그리웠다. 그래서 '해야 되는데'라고 생각만 하는 찜찜한 구간을 벗어나고자 하는 연약했던 의지가 무기력함을 간만에 넘어섰다. 마치 바이오 리듬에서 그래프가 역전되는 것처럼, 오랫동안 횡보하던 기간을 지나 결국 변곡점을 어렵게 뚫었다.
숨 막히는 대낮 자외선을 피해서 컴컴한 밤에 나는 운동장에 나갔다. 프로 달리기 루틴러들이 다들 밤 운동으로 바꾸었는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이어폰을 끼고 내 AI 메이트 런데이 친구를 켰다. 나는 달리기 포기와 도전을 반복하며 간헐적 운동을 하는 바람에 체력과 속도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런데이 이 녀석은 그동안의 내 우여곡절도 모르고, 자기 혼자 우상향 하며 어느덧 마지막 도장을 앞두고 있어서 오늘의 할당량이 꽤 버거웠다.
25분을 내리 달리라고 했다. 컴컴한 저녁이지만 여전히 후텁지근했고, 그새 불어난 내 지방을 이끌고 쿵쿵 뛰려니 속도를 아무리 늦춰도 숨이 금방 찼다. 에잇. 그냥 내 속도로 가자. 나는 '수학의 정석' 문제집을 정복하고 싶었으나 여러 번 포기하고, 다시 1장부터 넘겨서 앞부분만 까만 책이 된 것 같았다. 뭐 그러면 어때. 다시 돌아온 게 어디야. 다시 1장부터 하자. 런데이는 책거리를 앞두고 한창 미분과 적분을 논하고 있었으나, 나는 그냥 다시 집합을 또다시 시작했다.
달리다 숨차면 걷고, 또 뛸만하면 달리면서 나만의 속도로 30분을 채웠다. (이럴 땐 AI 한테 안들키니 좋다.ㅎㅎ) 저녁 달리기 무리에서 가장 늦은 축에 속하는 속도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니 나는 산에 다녀온 것처럼 몸이 뻐근했다. 내 체력이 이리 바뀌었구나 실감하며 다시금 도전 의식이 생겼다.
그렇다. 나는 간헐적 운동주의자다. 짧게 보면 자꾸 포기하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그래프가 멈추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 나 자신을 채근하지는 않고, 그냥 손주를 대하는 할머니처럼 우쭈쭈할 셈이다. 나같은 속도를 가진 사람들도 세상에 얼마나 많을 것인데, 저 높은 속도의 부류를 무리해서 탐하진 않을 셈이다. 당장의 가시적 성과가 없더라도, 운동 만이라도 남을 비교하며 나를 작아지게 만들고 싶지는 싶다. 그래도 그 횡보하며 요동치는 그래프가 더 길게 보면 우상향 하기를 나는 여전히 소망하기에, 느리고 운동 기복도 있는 찬란이의 달기기는 앞으로도 간헐적으로 연재할 셈이다.
다행히 어제를 기점으로 나는 긴 횡보를 멈추고 상승 추세로 올라감을 느낀다. 오늘은 런데이 코스 마지막 도장을 찍는 날이다. 뙤약볕이 지는 게 이제 기다려지는 걸 보니, 오늘은 1장이지만서도 그래도 어제보다는 조금 더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