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보내는 열 다섯 번째 답장
아빠의 편지를 읽고 가만히 생각해봤어. 최근에 내가 만난 '친절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 아! 얼마 전에 남편이랑 같이 저녁을 먹으러 돈까스와 우동을 파는 식당에 갔었을 때가 생각난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는 야외 테라스 쪽에 앉게 됐어. 안 쪽에서는 잘 안 보이는 자리라 주문을 하거나 필요한 게 있을 때 불편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주인 아저씨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달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야.
돈까스 소스가 부족하면 불러주세요
식당이니까 당연한 서비스겠지만 주인 아저씨의 다정한 말투 덕분에 돈까스는 더 바삭바삭 맛있게 느껴졌고, 우동은 그날따라 더 감칠맛 나게 느껴졌던 것 같아. (정말 별 거 아닌 일인데 말이야)
아빠! 나는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다들 아무 표정없이,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는 표정으로 핸드폰만 바라보며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하나 생각한 게 있어.
남이 친절하길 바라기 전에 내가 친절한 사람이 되자
내가 지난번 편지에서 했던 이야기 기억나? 대학교 입학 후, 친구랑 처음 광화문역에 갔다가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겁에 질렸던 일. 그 많던 사람들 하나같이 무표정했고, 도시는 차갑기만 했어. ‘이렇게 차가운 곳에서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기숙사로 돌아와 오열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해. 하지만 어쩌겠어. 내가 선택한 학교였고, 내가 가야 할 길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차가운 도시 속에서도 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지.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부 녹여줄 순 없어도, 내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친절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작은 행복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 그래서 시내버스를 탈 때도 “안녕하세요”, 내릴 때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고, 택시를 탈 때도 꼭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안전 운전 하세요”라고 말했어. 길을 몰라 헤맸던 경험이 많아서, 누군가 길을 물어보면 핸드폰을 꺼내 최대한 쉽게 알려주려 했고. 정말 사소한 행동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하루 중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
예전에 같이 일했던 후배가 회사를 떠나면서 나에게 편지를 남겼어. “택시를 타고 내릴 때 기사님께 인사하시던 선배의 모습,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고 매사에 진심을 다하시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이 바뀌었어요.” 내가 당연하게 했던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그 편지를 받고는 정말 놀랐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누군가에게는 큰 울림이 될 수도 있구나 싶었어.
아빠가 말했던 것처럼, 작은 친절이 쌓이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고, 우리 스스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내가 베푼 친절이 당장 나에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더 크게 돌아올 거라고 믿어. 그리고 이 모든 건 아빠를 보며 배운 거라는 거, 알지?
앞으로도 내 든든한 등대가 되어줘.
아빠, 사랑해.
----브런치북은 연재가 끝나 이어지는 아빠와 딸의 편지는 '전태영작가'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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