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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펜을 잡아요

by 이지희

덥고 더웠던 어느 날, 마주하게 된 그 시간 속에서 나에겐 두 가지 꿈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나를 잃지 않아야겠다는 꿈이었고요.

또 하나는, 벅찬 감정을 감당해낼 수 있는, 그런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꿈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니,

나에 관한 절망적인 소식, 아니 진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현실적이지 못한 일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왜 엄마아빠는 눈물을 머금고 있으면서도 그 굵은 눈물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가슴으로 삼켰는지, 이제야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믿는 신은 내 마음을 다독이시는 분이셨습니다.

어그러지고 나를 구기게 했던 상처가, 이렇게 세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다시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다는 걸 나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럽게, 가슴이 저며왔던 것 같습니다.

그럴 줄 알고, 내 웃음을 먼저 찾아주시려 그토록 바라던 선물을 내 앞에 준비하셨던 것인가요?


나는 오랫동안 자고 있던 내 미소를 먼저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엔, 묵혀두었던 내 깊은 상처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았죠.

내 웃는 모습도 내 우는 모습도

그 진한 기쁨과 그 깊은 슬픔 모두

내 인생 앞에 신께서 주신 것이라는 걸요.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삐걱대는 걸음으로 펜을 잡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정신을 바로 하고,

바른 자세를 하고,

책상을 정돈한 후,

가장 진지한 모습으로, 다시 나의 책을 폅니다.


수많은 넘어짐이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집중하려 합니다.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던 그것들을 다시 용기 내어 잡아보려 합니다.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없어졌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래도록, 정말 오래도록 그리워했기에 덮어두었던 것이었습니다.

새 바람이 다시 나에게 불어오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사랑하는 것들만 보려 합니다.

사랑하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니까요.

그리고 노력하려 합니다.

이 현실 속, 작은 자리라도 좋으니 잠시라도 온전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그 자리를 만들어 보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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